겨울딸기와 100년 된 근대수원지, 신선의 풍경까지 품었다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⑬]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13) 각시바위오름

 호근마을의 특별함을 알게 하는 20여 개의 샘물들

각시바위오름을 찾아가다 보니 호근마을 역사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호근마을은 시오름보다 조금 위인 표고 700미터이상에서부터 외돌개까지,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호근마을을 지나는 하천은 시오름 서쪽에서 내려와 빌레내를 지나 엉또폭포로 이어지는 하천과 시오름 동쪽에서 내려와 각시바위 서쪽을 돌아 호근천으로 이어지는 하천, 각시바위 동북쪽 절곡지에서 발원하여 원주왓에서 진진내와 합류하는 하천 등 지류들을 볼 수 있다. 그곳에서부터 내려오는 지형의 모습을 보면 특이하고 거대한 바위의 특별함과 그곳을 품은 많은 물을 만나게 된다. 물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설촌 이야기가 생겨나는 법, 20개가 넘는 호근마을의 샘물들의 특별함을 이번 걸음으로 얇게나마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가까이 살면서도 가장 낯선 곳들, 발걸음이 특별해진다.


▲ 마을에서 바라본 각시바위(사진=김미경)


▲ 궁산천다리에서 바라본 각시바위(사진=김미경)

 한겨울에 눈 속에서도 초록색 잎과 붉은 빛깔의 열매를 선사하는 겨울딸기

영산사 초입은 범상치 않은 바위들의 기운이 여기저기서 느껴진다. 쪼개진 바위 조각들 사이에 과수원(감귤나무)이 조성되어 있고 그 안에 산(무덤)은 거무튀튀한 현무암이 아닌 회색빛을 띤 조면암질 안산암의 조각 바위들로 둘러쳐졌다. 다른 지역보다 서귀포 지역에서 유별나게 나타날 수 있는 화산암의 모습이다.

바위틈들 사이로 나 있는 탐방로의 흙을 밟으며 경사진 오름을 걷다 보면 또 다른 특별함을 만난다. 잘 정비된 탐방로는 아니지만 그곳에서 베어낸 통나무로 불편한 길에 다리를 내어 주는 모습이다. 이 나무들이 삭으면 다시 나무를 교체해 줘야 하는 수고스러움은 이곳을 소중하게 여기며 자주 왕래하는 이들의 몫이란 걸 알기에 감사한 맘을 전하고 싶다.


▲ 겨울딸기(사진=김미경)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대부분 봄에 꽃이 피어 여름이면 열매를 맺는 딸기 종류 중 여름에 꽃이 피고 10~12월에 열매가 익는 겨울딸기의 군락을 만날 수 있다. 산딸기 종류를 제주에서는 ‘산탈’이라고 부른다. 제주에서도 북쪽보단 2-3도 정도 높은 기온을 보이는 서귀포시에서 자생하고 있는 특별한 식물인 겨울딸기, 한겨울 눈 속에도 초록색 잎을 드러내며 붉은 빛깔의 열매를 선사한다. 지나가는 오르미들뿐만 아니라 야생동물들에게 귀한 먹거리를 제공해준다.

 불규칙한 큰 바위들로 아슬아슬한 정상

각시바우오름이라고도 학수바위라고도 불린다. 어떤 뜻에서 불리는 지 감이 오지 않는다. 여러 설이 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들, 서귀포 방향으로 바라다 보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그 독특한 형상으로 인해 각시바위오름임을 알 수 있다. 두 봉우리의 모습이 유난히 볼록해서 도드라진 모습, 남쪽 바닷가에서 바라보면 삼각형의 형태로 보이고, 산록도로 궁산천다리에서는 울창한 수풀 너머로 아스라이 산꼭대기 바위들만이 드러나 보인다. 그 웅장함은 아마 정상에 올랐을 때 더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 바위 위에 자생하는 석위(사진=김미경)

큰 바위들이 불규칙하게 놓여 진 아슬아슬한 정상, 바위를 덮고 자라고 있는 ‘석위’의 모습은 더 귀하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제주에서 자생하는 참꽃나무도 볼 수 있다. 잠시 바위에 앉아 따뜻한 봄날 이곳을 찾는 이에게 귀한 꽃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상상해 본다. 저 너머로 눈 덮인 한라산의 모습, 바다 멀리 지귀도 섶섬 문섬 범섬 등이 그림같이 펼쳐지고, 고근산 하논분화구 삼매봉 솔오름 등 서귀포 전경을 감싸는 대표적 오름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주변의 좋은 경치로 옛 선인들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말이 실감 난다.

각시바위오름을 탐방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절곡지라는 수원지다. 이 수원지는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중요한 유산이다. 제주도의 상수도는 1926년 5월 준공한 정방폭포 상류 ‘정모시’라는 용천수를 서귀항으로 끌어간 게 최초다. 이 공사는 일본인 사이고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360여 가구는 물론 서귀항에 정박한 배에 공급했다고 한다.


▲ 각시바위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사진=김미경)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할만한 제주도 최초 자주적 상수도

절곡지수원지는 그 이듬해인 1927년 7월 일본에 거주하는 제주 출신 청년들이 성금을 모아 건설했다는 데 의미가 크다. 이 공사는 호근리와 서호리가 공동 추진하다가 결국에는 서호리 단독으로 준공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마을까지 연결하는 수도관은 장장 3,454m에 이르렀는데 당시로서는 대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 상수도는 용천수를 그대로 마시거나 빗물이 고인 봉천수, 나무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ᄎᆞᆷ항물, 지붕에서 내려오는 지새항물, 계곡에 흐르거나 고인물을 허벅으로 져 날라다 먹던 제주도에 일대 물 혁명의 출발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 않을까.


▲ 절곡지수원지(사진=김미경)

이 역사의 현장은 다 지워져 가는 수원지 안내간판과 표지석만 남겨 놓은 채 쓸려 내려온 토사로 메워졌고, 파이프는 녹슬어 있었다. 이렇게 절곡지를 찾은 발걸음은 안타까움만 남긴다.


각시바우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호근동 2112일대
표고 395미터 자체높이 140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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