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터널과 비양나무, 특별한 시간을 기억하는 섬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26) 비양봉
제주의 보석, 비양도에서 만나는 자연과 시간의 이야기
제주도 한림항에서 북서쪽으로 3km, 협재리에서 불과 1.5km 떨어진 작은 섬, 비양도. 면적 0.44㎢, 둘레 3.4km의 이 작은 섬은 그 크기보다 훨씬 더 깊고 오래된 이야기를 품고 있다. 비양도는 가파도, 마라도, 우도 등과 함께 제주도의 여덟 유인도 중 하나로, ‘천년의 섬’이라는 수식어처럼 깊은 역사와 독특한 생태,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비양도는 약 27,000년 전, 마지막 빙하기 동안 화산 폭발로 형성된 섬이다. 당시 해수면이 낮아 지금보다 넓었던 제주 해안선의 육지였던 이곳은, 이후 다시 바닷물에 잠기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섬 남서쪽 해안 절벽에서는 약 5,000년 전의 토기편이 발견되었지만, 사람이 정착해 마을을 이루기 시작한 것은 불과 130여 년 전으로 추정된다.
섬의 주민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물’이 중요했다. 비양도는 대부분이 분석구(송이) 지형으로, 빗물이 땅속으로 스며들기 쉽다. 이 물은 지하에서 해수면과 같은 높이의 담수층을 형성한다. 여기에 형성된 것이 펄랑못, 섬 안의 염습지다.


1965년 본섬과의 상수도 연결 이후, 물 부족 문제도 해결되었다. 관광객이 꾸준히 늘고 있지만 섬은 안정적인 물 공급 덕분에 변함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다.
비양도의 숨은 보물, 비양봉과 비양나무
비양도의 중심에는 표고 114.1m의 비양봉이 우뚝 서 있다. 이곳을 중심으로 섬 한 바퀴를 돌며 만날 수 있는 풍경은 특별하다. 분화구 능선 위로 펼쳐진 송이 지층, 대형 화산탄, 코끼리 바위, 천연기념물 호니토(애기업은돌) 등 다양한 지질 유산이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이 모든 풍경은 제주 세계지질공원의 일부이기도 하다.

분화구 안쪽에는 ‘비양도’라는 이름을 딴 식물, 비양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인도와 동남아가 원산지인 이 나무는 한국에서는 비양도에서만 자란다. 햇볕이 잘 드는 분화구 안에서 3~5월경이면 노란 꽃을 피우며 신비로운 풍경을 만든다. 이 역시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다.

비양도는 ‘죽도(竹島)’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화살용 대나무가 많아 군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고, 대나무 숲은 지금도 섬 곳곳에 남아 있다. 특히 비양봉으로 오르는 길의 이대터널은 이 섬을 찾는 이들이 사진을 찍는 명소로도 손꼽힌다.
고대 문헌에는 비양도에 양을 기르던 목장이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조선시대 교래대렵 행사에서 생포한 사슴을 이곳에 방사한 기록도 전한다. 이처럼 비양도는 과거 군사와 생활의 중심이었던 동시에 자연의 섬으로도 기능해 왔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럽게 변하는 섬
오늘날 비양도는 관광객의 발길이 점차 늘면서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시멘트 도로가 놓이고 편의시설이 들어서면서 원래의 풍경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주민들과 방문객 모두 이곳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있기에, 변화가 너무 빠르지 않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크다.
섬에서 생활하는 젊은이들은 본섬과 오가는 이중생활을 이어간다. 생계와 보존, 편의와 자연 사이의 균형을 찾는 노력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비양봉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 산100-1
표고114.1미터 자체높이104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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