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정호수엔 볕이 들고 숨골에선 찬바람, 숨어서 더 돋보인다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①]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 (1)
두메 깊숙한 곳에 들어앉은 오름
두메 깊숙한 곳에 들어앉아 오히려 돋보이는 오름, 오름 나그네의 저자 김종철의 표현이다. 두드러진 몸매도, 가까이하기 좋은 오솔길조차도 갖춰지지 않았다. 다가갈수록 짙푸르게 숲에 싸인 웅숭깊은 몸가짐에는 외진 들녘에서 자적하는 넉넉함이 풍긴다. 그렇다. 영아리오름은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끌지는 못하지만 오름을 오르기 시작하면 색다른 매력을 만날 수 있다. 밖에서 볼 수 없어 더욱 그런 것인가. 오르기 전까지 어떤 모습인지 상상조차 쉽지가 않다.
어느덧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 가시덤불과 잡목들이 우거진 언덕배기를 오르니 마보기오름 정상이다. 동쪽으로는 어오름, 서쪽으로는 하늬오름, 북쪽은 이돈이오름이다. 이들은 저 멀리 숨어 있는 듯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영아리오름을 둘러싸고 있다. 침엽수들만이 진하고 연한 색깔을 반복한다. 단순할 것만 같은 이곳은 곧 특별한 생태계를 드러내 보인다.
한라산 정상아래 수많은 오름 중 한 곳, 마보기오름에서 바라보는 영아리오름은 정말 나그네의 말처럼 특별함은 없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 보지 않고서는 독특한 그 오름의 모습을 맞을 수 없다.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본 삼나무 숲
그곳을 가기 위해 지나는 억새길, 초록이 무성한 한여름에도, 억새까락에 빛이 부딪쳐 부서지는 눈부신 어느 가을날에도, 사람 키보다 훌쩍 커버린 억새 사이로 걷기를 바래본다. 사르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의 모습이 빠르게 열렸다 닫혔다 반복하기를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황홀하다. 직접 걸어보지 않고는 누구도 그 느낌은 상상하기 힘들 것이다. 자연이 주는 길이다. 오직 그곳을 오르는 오르미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다.
영아리오름을 마주한다. 편백과 삼나무가 무성한 숲속은 비스듬히 들어오는 빛을 받기 위해 나름의 키 높이와 쭉 뻗은 몸매를 자랑하며 어둠을 밝혀주고 있다. 어쩌면 자기의 진짜 몸매를 자랑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고 안식을 준다.
깊은 산속에 오롯이 남아 있는 생태계, 영아리오름의 분화구호
어느 순간 탁 트인 공간에 햇빛이 쏟아짐을 느낀다. 습지다. 물은 꽤 깊어 보이지만 가운데까지 풀들이 꽉 들어찬 걸 보면 아무리 깊어도 1미터를 넘지 않을 것 같다. 직경 100m 정도의 둥그런 모양이다. 초원과 숲을 지나 울창한 자연림 속에 이런 생태계가 있다니 경이로움 그 자체다.
영아리오름은 신령스럽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고대 사람들은 물 또는 바위가 있어서라고 모 학자는 이름 어원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쩌면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 붙여졌을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느껴지는 정기로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울창한 숲속을 걷다가 마주한 이곳, 쏟아지는 감탄사가 그것을 대변한다.
햇빛이 강한 여름 한나절,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진초록의 모습은 잠시 휴식을 취한 오르미의 눈길을 끌 만 하기에 충분하다. 깎아내린 듯한 커다란 바위들, 시원한 지하 공기를 내뿜는 궤, 표면에 습기를 머금고 자라나는 이끼와 덩굴식물들의 모습은 더욱 신비스럽기만 하다. 어느새 복잡한 머릿속을 맑게 정화 시켜 준다.
영아리오름
안덕면 상천리 산24번지
표고 693m, 자체높이 93m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이번 연재를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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