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풍광에 열매와 꽃 품었는데 ‘썩은다리’라니?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⑫]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12) 썩은다리

 사라지는 화순의 금모래 해변, 시멘트로 메워져 물가에서 멀어진 오름

썩은다리, 이름만으로는 오름이라고 상상하기 힘들다. 알고 있는 의미의 ‘썩다’라는 의미에서 접근하면 이름의 이해도에 오해의 소지가 생긴다. 어떻게 형성되었을까라는 과학적 지식을 이해하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역사를 알았을 때 아마도 고개를 끄덕여지지 않을까 싶다.


▲ 썩은다리 남쪽에 무너진 바위들이 널려있다.(사진=김미경_

뜨거운 마그마가 물을 만나 화산재가 폭발하면서 쌓여 퇴적된 모습이다. 이곳에는 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흔적이 사라지고 있다. 화순항을 넓히면서 주변에 시멘트로 메꾸는 공사를 했기에, 물은 점점 더 멀리 밀려나 있다. 예전 화순해수욕장의 금모래의 모습 또한 점점 더 사라지고 있다. 썩은다리는 또 다른 작용으로 점점 더 깎이면서 점점 더 변화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소중함을 아는 사람만이 그 가치를 조금 더 이해하지 않을까,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새삼 이 오름을 걸으면서 떠올린다.

 사람의 발걸음이 바위 같은 퇴적층을 빠르게 깎아

계속되는 비 소식에 구름이 있지만 이곳을 찾았다. 올레길 10코스에 있어 많은 사람이 이곳을 지나간다. 낮은 오름이고 해안이라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그 어느 곳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 서쪽 바다 방향으로는 형제섬과 송악산, 그 위쪽으로는 산방산, 용머리해안, 한라산의 모습까지 조망할 수 있어 가볍게 산책하기에도 좋다. 동쪽에서 안내판이 시작되면서 나무 데크로 살짝 경사면을 오르게 된다. 노란 산국이 아직도 겨울바다바람을 견디는 모습에 그곳을 지나는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걷다 보면 퇴적층을 그대로 밟으며 오르게 된다. 바위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자연적인 침식과 우리의 발걸음이 더해져 더욱 빠르게 깎이고 있다는 사실은 명심해야 한다.


▲ 썩은다리 오르는 길에 산국이 피었다.(사진=김경미)

 종이를 만드는 재료 꾸지나무, 이제는 제지 기술 사라질 판

제주에서도 종이를 만들었다고 한다. 전통 종이를 만들 때 닥나무를 이용하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기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지만 종이를 만들어 사용했다는 서귀포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제주는 꾸지나무가 그 재료로 쓰였다고 한다. 아주 먼 옛날 고대인들은 종이를 꾸지라고 불렀다고 하는데,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이 나무는 우리나라 남쪽 지방인 제주에서 특히 서귀포지역에 자란다. 지금은 흔하게 종이를 접할 수 있어서 종이 귀한 줄 모르는 세대가 되었다. 그러나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종이가 귀하여 사서 쓴다는 건 엄두도 못 냈었다. 이렇듯 육지에서 들여온 비싼 종이를 살 수 없으니 만들어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 꾸지나무. 과거 종이를 만드는 원료였다.(사진=김미경)

마을마다 기술을 갖춘 장인이 있어 전통 제법으로 만든 종이를 썼다. 이렇게 종이를 만들었던 장인 중에 아직도 서귀포 신효마을에 살아계신다고 한다. 서둘러 이런 전통 제지 기술에 대해 기록을 남겨야 할 것이다. 이곳의 정상에 오를 즈음이면 꾸지나무군락을 만날 수 있다. 그 나무의 특징을 알면 쓰임새를 이해할 수 있다. 렌즈에 잡힌 포송포송한 털이 아마도 이곳의 바람과 온갖 풍파를 이겨내는 듯하다.


탐방로를 걷노라면 펼쳐진 풍광뿐만 아니라 자연 먹거리들도 만날 수 있다. 보리밥 나무가 얼기설기 얽힌 덩굴줄기 사이사이에 이 한겨울에도 꽃망울을 만들고 있다. 이른 봄날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에게 열매를 선사하기 위해서. 간식거리가 모자랐던 어린 시절, 들과 산에서 얻어먹었던 열매들, 그런 과거의 추억이 얼마나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지는 모를 것이다. 아직 찬바람이 다 오지도 않은 계절, 이곳에선 벌써 새콤달콤 쌉싸름한 상동 열매 또한 눈에 띈다. 물론 아는 이에게만 보일 테지만.


▲ 보리밥나무가 열매를 맺는 중이다.(사진=김미경)


▲ 상동(사진=김미경)

썩은다리는 '작은 산'이란 말, 지명 해석은 신중해야

길을 걷다 보면 이 오름을 다 벗어날 즈음 안내판들이 서 있는 걸 보게 된다. 산방산 용머리지오트레일 설명 안내문, 여기에는 사근다리(썩은다리)라 표기했다. 영문 표기로는 ‘Saguendari’다. 제주도에서 발간한 ‘제주의 오름’이라는 책에는 썩은다리라 했다. 어느 오름 책에는 썩은다릿동산이라 했다.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종잡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지명에 썩다라는 이름을 넣을 리 없을 터인데, 대체로 옛 어른들은 지명을 표기할 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에서 가급적 좋은 뜻 좋은 발음을 사용하려 했다고 한다.


▲ 썩은다리 위에서 바라본 산방산(사진=김미경)

그런데 이곳 지명에 ‘썩은’이란 부정적 의미가 들어간 해석들이 있는 것을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고어에 ‘썩은’이라는 말은 원래 ‘쇼근’에서 기원한 말이라고 1632년에 간행한 중간 두시언해에 기록되어 있다. ‘작은’의 뜻이다. 법환 앞바다의 썩은섬도 작은섬이라 한다. 썩은다리라는 말은 ‘쇼근ᄃᆞᆯ’ 즉, 작은 산의 뜻이라고 하니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작다라는 비교대상은 아마도 크게 다가온 산방산과 마주하여 불려지지 않았을까 추즉해 본다.


썩은다리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1913번지 일대
표고 42미터 자체높이 37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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