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꽃에 달라붙은 꿀벌, 가을걷이 농부와 많이 닮았다
[주말엔 꽃] 가을 들녘을 장식하는 꽃향유
11월 들어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마을 뒤에 있는 걸서악을 몇 차례 올랐다. 오름 정상 전망대까지 계단이 설치됐는데, 한발 두발 오르다보면 근육에 힘이 드는 느낌이 들어 기분이 좋다. 오름을 다 올라 전망대에 서면 남쪽 지귀도와 서남쪽 섶섬이 훤히 내다보인다.
걸서악 전망대 옆에 무덤이 한 기가 있는데, 무덤 주변으로 볕이 환하게 든다. 그리고 가을 햇살을 받고 피어난 들꽃이 주변을 환하게 수놓고 있다. 그중에도 가장 돋보이는 건 보라색 꽃향유. 보라색 꽃마다 꿀벌이 달라붙어 열심히 꿀을 채취하고 있다. 꿀을 채취하는데 너무 열심이어서 사람이 오는 것도 모르는 눈치다. 이 벌들에겐 이 꽃이 올해 자연이 주는 마지막 선물일 게다.
꽃향유는 우리나라 각지의 초원이나 길가에 흔히 자생하는 1년생 초본이다. 줄기는 네모지고, 30~60cm까지 곧게 자란다. 줄기에서는 이름처럼 강한 향기가 난다. 9-10월에 보라색 꽃이 피는데, 길쭉한 대롱에 보라색 꽃이 빽빽하게 맺힌다. 그런 꽃이 군락을 이루면 그 모습이 마치 보라색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 같다.
꽃향유는 예로부터 식용과 약용, 관상용 등 다양한 용도로 사랑을 받았다. 게다가 8월에 개화를 시작해 서리가 내릴 때까지 꽃을 매달고 있는 식물이다. 벌에게는 마지막 밀월식물이어서 양봉업자들은 그 꽃을 소중히 여긴다.
40년 전에 양봉업에 종사했던 강하규(신효동, 80) 씨는 “가을에 자연에 있는 꽃 가운데는 꿀을 채취하는 데는 꽃향유가 최고다.”라며 “벌이 꽃향유에서 꿀을 취해하면 정말 좋은 꿀을 얻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꽃향유가 산간에는 일찍 지고 해변에는 늦게 지기 때문에 초가을에 목장 지대에서 꿀을 채취하다가, 늦가을이 되면 해변 가까운 곳을 내려오곤 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꽃향유에서 꿀을 채취하는 건 양봉업자 사이에서 호불호가 갈린다. 좋은 꿀을 얻기 위해 가을에 벌을 풀어서 꿀을 채취하는 업자가 있는 반면, 가을에 벌의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비상 먹이를 주는 업자가 있다. 최근에 벌이 집단 객사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업자들 사이에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꽃향유는 햇살이 잘 드는 곳에서 자라는데, 최근 서식지가 예전에 비해 줄어들었다. 과거에는 목장에 불을 놓았기 때문에 1년생 초본이 많이 서식했는데, 지금은 덤불과 숲이 형성돼서 꽃향우 서식지가 줄었다. 이걸 아는지 가을에 꽃향유가 피는 곳이면 어김없이 꿀벌이 달라붙어 꽃을 채취한다. 꽃향유에 달라붙어 겨울을 준비하는 꿀벌이 가을 들녘에서 귤을 수확하는 농부와도 많이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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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