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없이 살려면 너를 먹어야겠어”, 막다른 청춘의 절대 사랑법

[북 리뷰]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행나무, 2015)

몇 년 전 여름, 도서관에서 『구의 증명』을 빌려 읽었다. 짧은 소설을 몇 시간 만에 주파하고 ‘아니, 이 작가는... 도대체 누구인데 이런 글을 쓰는 거지?’ 하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 후 읽을 만한 소설을 추천해 달라는 지인들에게 『구의 증명』을 추천하곤 했는데, 읽어 본 지인들의 호불호가 명확히 갈렸다. ‘환상적이다. 너무 좋았다.’ 라는 열렬한 반응도 있었 지만, ‘추천받지 않았으면 평생 읽어 볼 일이 없었을 책’ 이라는 냉담한 반응도 있었다. 개정판을 서점에서 구입한 후 이 소설을 두 번 더 읽은 나는, 누군가 읽을 만한 소설에 대해 물으면 아직도 『구의 증명』을 추천한다.

『구의 증명』은 자신들 이외에는 세상에 의지할 이가 단 한 사람도 없는 담과 구의 절대적이고 지독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설은 구와 담의 시점에서 번갈아 가며 이야기를 전개한다.

“... 어린 시절의 어느 날 자연스럽게 깨달은 거였다. 너와 나는 죽을 때 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하겠네. 어린 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우리는 같은 것을 보고 듣고 비슷한 감정을 공유했다. 나쁜 짓도 좋은 짓도 부끄러운 짓도 같이 했다. 그러는 동안 우리 마음에는 비슷한 공간이 만들어졌고, 떨어져 있을 때에도 그것은 같은 울림을 만들어냈다.”(p.87. 『구의 증명』)


▲ 책의 표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구와 담은 영혼의 단짝처럼 함께였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부모의 빚을 갚으려 발버둥치는 구에게 세상은 각박하기만 하다. 둘이 함께 해도 세상은 젊은 연인들이 소박하게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구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부모님의 빚은 줄지 않고, 사채업자들은 숨은 구를 기막히게 찾아낸다. 구와 담이 아무리 도망치고 숨어 봐야 몇 달 후에 구는 다시 사채업자들의 손아귀에 잡혀있을 뿐. 구는 결국 사채업자들에게 또 다시 붙잡히고, 그들에게서 도망치다 교통사고로 죽게 된다. 담은 길가에 널브러진 구의 사체를 이고지고 그들의 보금자리로 돌아온다.


땅에 묻기에도, 화장을 하기에도 구가 너무도 소중하기에, 사채업자들에게 구의 사체가 발견되면 그들이 구의 사체를 팔아넘길 것이기에, 담은 구의 사체를 조금씩 뜯어 먹는다. 담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구를 애도하며 장례를 치른다.

독자들의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것은 『구의 증명』이 불편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은 카니발리즘(동족포식)을 묘사한다. 너무나 사랑하기에 연인의 사체를 정성스레 씻긴 후 조금씩 먹는 연인... 현실적이지 않은 상상과 가공의 세계를 그리는 것이 소설이라 하더라고 연인의 사체를 뜯어먹는 식인 이야기가 나오니 거부감을 느끼는 독자들도 있는 듯하다.


옛이야기를 하듯이 구가 담에게 이야기해주는 스코틀랜드의 소니 빈 이야기는 식인 가족의 이야기이다. 바닷가 동굴에 살며 죄의식 없이 사람들을 죽여 인육을 먹다 일가가 모두 사형당한 가족의 이야기를 구가 담에게 이야기 해 주는 것은 이후 담이 구의 사체를 먹는 카니발리즘을 미리 예견하는 장치로 보인다.

소설은 담의 문장으로 시작한다. 담은 아주 오래 살아남기를 소망한다.(p.7, p.8) 구를 기억하기 위해서.

“천년 후에도 사람이 존재할까?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그 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p.7.)


소설은 구와 담의 내면의 소리를 번갈아 기술한다. 구는 죽은 후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시작한다. 죽는 순간, 구는 담이 있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담은 길거리에서 이미 죽어 있는 구를 발견했을 뿐이다.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던 구는 담에게 ‘내가 죽으면 어떡할래?’(p.18)하고 물었다. 매장도 화장도 돈이 드니 자신의 죽음을 수습할 돈을 마련해 놓겠다고. 하지만 구에게는 자신의 죽음을 대비할 경제적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
청솔모가 되기 위해 들어온 이곳에서 구가 말했다.
그래야 너 없이도 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거야.
나를 먹을 거라는 그 말이 전혀 끔찍하게 들리지 않았다.
(p.165)


소설의 도입부에서도 구는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p.19) 라고 말하는데, 이 문장은 소설의 후반부에서도 반복된다. 구가 담을 먹겠다 말하지만, 결국 구를 먹게 되는 것은 담이다.

담이 사랑했던 모든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다. 부모가 누구인지 모르는 담을 길러준 할아버지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비구니의 길을 포기하고 담을 길러준 이모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구가 일하던 공장에서 만난 꼬마 노마는 구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고, 구의 자전거를 타다 구와 담의 눈앞에서 트럭에 치여 즉사한다. 노마의 죽음이라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함께 겪은 구와 담은 한동안 서로를 찾지 못하지만, 몇 년 만에 재회하여 어릴 적 친구에서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구도 처참하게 세상을 떠난다.

“할아버지도 죽고, 이모도 죽고 이제 구 마저 없고, 나만 살아 있다.
나는 이 문장의 의미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p.130)


그 누구도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없다.’(p.175)고 담은 말한다. 소설은 죽은 구의 독백으로 마무리된다.

“언젠가 네가 죽는다면, 그 때가 천 년 후라면 좋겠다.
천년을 살아남아 그 시간만큼 너를 느낄 수 있다
면 좋겠다.
나는 이미 죽었으니까.
천만년 만만년도 죽지 않고 기다릴 수 있으니까.”
(p.186)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도하며 담은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오래오래 천년을 살아남기를 원한다. 구의 존재와 삶을 증명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자신 안에 구를 간직하고 기억하기 위해서.

꼬마 노마는 공장에서 일하는 부모를 기다리면서 학습지 귀퉁이에 그림을 그리곤 했는데, 그 그림 중에는 구와 담, 자신과 자전거를 그린 것이 있었다. 빠르게 넘기면 움직이는 그림이 되는 그 그림은 마지막에 구, 담, 노마, 자전거가 하늘에 떠있는 네 개의 별이 되는 그림이다. 살아남아서 오래오래 그들을 기억할 담은, 하늘에 떠 있는 세 개의 별이 된 구, 노마, 자전거를 아주 자주 바라볼 것 같다.

최진영 작가는 단편 <홈, 스위트 홈>으로 2023년 이상 문학상을 수상했다. 암에 걸려 재발한 시한부 여인이 자신의 마지막 거처가 될 시골집을 사서 고치는 이야기이다. 최근작으로 오래된 나무와 사라져 버린 사람에 대한 <단 한 사람>, 제주를 배경으로 한 단편 <오로라>가 있다. 몇 년 전 제주로 이주한 작가는 제주 서쪽에서 집필중이다.

※2015년에 『구의 증명』초판을 발행했고,  2023년에 개정 1판을 냈다.


유효숙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몇 년 전 은퇴했다. 지금은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집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노랑 고양이 달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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