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읽어주는 사람, 사람 업고 강 건너는 사람.. 조선에는 직업도 많았다

[북 리뷰] 강문종 등 4인 『조서잡사』(민음사, 2020)

사촌동생이 애완견 유치원을 운영한다. 애완견 주인이 여행을 갈 때 대신 돌봐주는 일인데, 사업이 꽤나 수익성이 있다고 했다. 강아지를 돈 주고 맡기는 시대가 올 줄 누가 알았나?

세상이 다원화되면서 직업 세계가 다양해졌다. 원예치료사, 디지털 장의사, 골프공 다이버 등, 밥 소믈리에 등 예전에 없던 직업이 새롭게 생겨난다. 세상은 늘 변하고 직업 세계는 변화무쌍하다.

▲ 책의 표지
지금처럼 많지는 않았지만, 조선시대에도 이색 직업이 있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은 큰 틀에서 직종을 분류한 것이고, 공(工)과 상(商)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상천외한 직업이 많았다.

『조선잡사』는 조선시대 특이한 직업 67가지를 소개하는 책이다. 잡은 직업(Job)과 잡(雜)스러움을 의미한다. 잡(雜)사인 만큼, 관리나 농부, 의원 같이 잘 알려진 직업은 제외했다. 출신군관의 가사도우미였던 방직기, 무연고 시체를 묻어주는 매골승, 과거 시험을 대신 응시하는 거벽 등 돋보이는 직업을 소개한다. 이런 직업과 관련된 에피소드나 각종 기록도 담아서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책은 일하는 여성, 극한 직업, 예술의 세계, 기술자들, 불법과 합법 사이, 조선의 전문직, 사농공‘상’ 등 7개 부로 구성됐다. 각 장마다 소제목에 어울리는 6~10가지 직업을 소개한다.

눈에 띄는 직업 몇 개를 추려본다.

방직기는 타지역에서 온 출신군관에게 배정된 가사도우미다. 조선시대 무과에 급제한 군관은 1년 동안 최전방에서 복무해야 했는데, 방직기를 배정해 도움을 주도록 했다. 그런데 군관이 방직기와 사랑에 빠지는 사례도 있다.

월천꾼은 길손을 등에 업거나 목말을 태우고 시내를 건너 준 뒤 삯을 받는 사람이다. 사람을 업으려면 힘이 세야 하고, 내를 건너려면 키가 큰 사람이 유리했다. 건장한 사람이 했는데, 불어난 물과 싸워야 하는 만큼 위험천만한 직업이었다. 중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사신과 접반사를 업고 물을 건너다가 모두 죽는 사고가 발생했다는 기록도 했다.

매골승은 도성 주변을 다니며 버려진 시신을 수습해 매장해주는 사람이다. 원래 중이 하던 일이라는 데서 ‘승’이라는 단어가 붙었다. 활인원에 속한 관원이었다. 조선시대에는 굶어 죽거나 역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많았다. 역병이 돌아 감염 위험이 있어도 그 위험을 무릅쓰고 일을 했다. 1670∼1671년 경신대기근에 100만여 명이 희생됐는데, 매골승과 승려가 함께 끔찍했던 참상의 현장을 수습했다. 1671년 10월 『승정원일기』에는 시신 6969명을 수습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기수는 소설을 대신 읽어주고 돈을 받는 사람이었다. 18세기, 소설에 빠진 조선사회가 만들어낸 신종 직업이다. 당시는 모든 사람이 소설에 심취했는데, 너무 깊이 심취한 나머지 반지를 맡겨서 책을 빌려보는 아낙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책은 너무 비싸서 사거나 빌려보는데 부담이 있었고,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많았다. 그래서 생겨난 직접이 전기수다.

그런데 전기수가 소설을 너무 실감나게 읽은 나머지, 듣는 사람이 이야기에 심취해 전기수를 죽인 사건이 벌어졌다. 1790년의 일인데, 전기수가 『임경업전』을 너무도 실감나게 읽었다. 스토리가 간신 김자점이 누명을 씌워 임경업 장군을 죽이는 대목에 이르자,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사람이 실제로 칼을 들고 전기수를 죽였다. 종로 담배 가게 살인사건이다.

거벽은 과거시험의 답안지를 대신 작성해주는 일종의 대리시험 전문가다. 과거시험을 대신 봐준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인데, 조선의 과거시험이 그만큼 난장판이었다. 팔도의 유명한 거벽의 이름도 소개됐는데, 그 가운데 유광억이라는 자가 압권이었다. 그의 글재주가 워낙 뛰어나 그를 내세워 과거시험에 합격한 자가 많았는데, 부정이 발각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생을 마감했다.

저자4인은 고전을 연구하는 선후배 사이다. 논문 말고 흥미로운 교양서를 만들어보자고 서로 의기투합해 펴낸 책이라고 했다. 언론에 연재했던 직업군 가운데 일부를 추려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저자는 책에 대해 ‘양반 말고, 선비 말고 조선시대 보통사람들이 먹고 살았던 67가지 방법’이라고 했다. 그리고 직업의 탄생과 소멸, 그리고 벼화를 살핌으로써 미래 직업을 전망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망도 전했다.

소개된 직업 대부분이 흥미롭지만, 하나 같이 고단하거나 비루한 일이다. 직업은 늘 변하는데, 세속은 오염되고 밥벌이밥벌이가 고단하는 건 변함이 없다. 그 비루함을 무릅쓰고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민초들이 있어, 이색 신종 직업이 끊임없이 탄생하는 것이다.


저자 소개

강문종 : 제주도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제주대학교 국어국문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동건 : 영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연행록사전 편찬팀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장유승 : 성균관대학교 한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을 거쳐 서울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홍현성 : 아주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통한국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