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자기 사냥감에 몰입할 때, 칸트는 거울 앞에 섰다”
도민대학 ‘『순수이성비판』읽기’ 강좌 25일 개강
‘제주에서 『순수이성비판』읽기’ 1차시 강좌가 25일 저녁, 서귀포 복합문화공간 라바르에서 열렸다.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원장 진희종)이 올해 칸트 탄생 300주년을 기념해 전남대 김상봉 교수를 초빙해 마련한 강좌다. 사전에 수강 신청한 시민 20명이 김 교수의 강의에 귀를 기울였다.
김상봉 교수는 『순수이성비판』 초판과 재판의 서문을 소재로 삼아 철학, 이성, 형의상학, 순수이성 등에 대해 설명했다.
‘인간 이성은 어떤 종류의 인식에서는, 거부할 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답할 수도 없는 물음들 때문에 시달리는 특별한 운명을 지니고 있다.’
『순수이성비판』초판 서문 첫 문장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인간은 괴로운 존재인데, 그게 생로병사 때문이 아니라 특별한 물음들 때문”이라면서 “그 물음 때문에 괴롭고 그래서 인간으로 돌아가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철학은 사서 고생하고 그 괴로움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왜냐하면 이성이 사용하는 그 원칙들이 모든 경험의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어떤 경험의 시금석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끝없는 논쟁의 싸움터가 실은 형이상학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김 교수는 아리스토 텔레스가 남긴 ‘모든 인간은 알기를 원한다.’라는 말을 소개하며, 이게 형이상학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인간의 지식이 확장되어 더 이상 나아기지 못하는 지점이 있는데, 거기에 형이상학이 작동한다고 설명했다. 그 예로, 우주 전체의 형상을 파악하려면 우주 밖에서 보야 하는데 그건 불가능하고 형이상학적 사유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형이상학은 경험이나 과학적 지식을 초월하기 때문에 늘 불안정하고 곤경에 처한다는 게 김 교수의 해설이다.
김 교수는 ‘탈레스가 아르케(근원)를 물었다.’라는 대목을 소개하며, 이것이 서양철학의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플라톤과 탈레스, 아리스토텔레스가 고전적 방식에서 인식의 틀을 형성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형이상학이 길을 잃고 각자 가기 사냥감에 몰입할 때, 칸트는 자기 인식으로 선회하고 자신 속에서 세계를 인식했다.”라며 “거울 앞에서 자기 내면을 보고 나 안에서 세계를 사유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순수이성 비판이란 자신의 인식·의지와 같은 자신의 의지 능력을 비판하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모르는 것을 모르는 것으로 지키는 것이 지혜인데, 칸트는 거기서 더 나아가 왜 모를 수밖에 없는지, 왜 모름을 지켜야 하는지 묻는다.”라고 밝혔다. 그리고 “칸트는 무지에 주목했다. 무지에 숨이 막힐 때 칸트는 위로가 되는 철학이다.”라고 말했다.
강의 말미에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김 교수는 “참된 인식의 주체는 역사의식과 세계를 품은 주체인데, 우리가 우주를 마음에 품어본 적이 있나?”라고 되물은 뒤, 미당 서정주의 시 ‘자화상’을 인용하며 “우리는 노예로 전락할 수 있는 종의 자식”이라고 진단했다. 칸트 철학자의 자기비판처럼 읽히는 진단이다.
김상봉 교수는 1960년 생으로 연세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독일 마인츠 대학에서 서양고전문헌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칸트 철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학벌 문제 등 사회 비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며 ‘거리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5년부터 전남대 철학과에서 학생을 가르쳤는데, 정년퇴직을 앞두고 올해 8월에 거처를 제주도 한림읍으로 옮겼다.
진희종 제주평생교육장학진흥원장은 칸트 강좌를 마련하면서 “제주시와 서귀포시 사이에 교육기회 차이가 크다.”라며 “이런 차이를 극복하려면 서귀포시에 파격적으로 좋은 강의가 필요하다. 그런 취지에서 이번 강좌를 마련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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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