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창에 잠자는 용을 깨워 축제에 빠진 마을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④] 생태와 노지문화의 보고 하례리

하례리는 남원읍의 가장 서쪽에 있는 마을로 효돈천을 사이에 두고 효돈동과 인접한다. 행정구역은 한라산 백록담 동쪽 지점에서 시작해 망장포에 이르기까지 남북으로 매우 길쭉한 형태를 띤다. 그 안에 입석오름, 수악, 두수오름, 걸서악 등 오름을 포함하고 있고, 오름과 오름 사이, 또 걸서악 남쪽으로 농경지가 넓게 분포한다.하례리의 환경을 형성하는 요인은 한라산과 오름 군락, 효돈천, 신례천, 바다인데, 그 가운데 효돈천의 영향이 도드라진다.


▲ 효돈천은 하례리의  환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천연기념물과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지정됐다. (사진=장태욱)

효돈천
효돈천은 한라산에서 쇠소깍에 이르는 13km 길이의 하천이다. 한라산에 내린 많은 비를 바라로 흘려보내는 통로이자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고 이동하는 공간이다. ‘서귀포 효돈천’은 천연기념물 제182호로 지정됐다. 그리고 2002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

효돈천은 하례리를 지나며 고살리샘에서 용천수를 분출한다. 이 물이 과거 이 일대 주민의 상수원이었다. 1966년에는 이곳을 개발해 상수도 개통식을 개최했던 사진이 하례1리에 남아 있다.


▲ 고살리샘인데, 과거 하례리 주민의 상수원이기도 했다.(사진=장태욱)


효돈촌이 남쪽으로 흘러 하례1리에 이르면 ‘웃소’, ‘돗기소’, ‘개소’, ‘남내소’, ‘긴소’, ‘쇠소깍’을 거쳐 바다에 이른다. 하례리는 2014년 생태관광마을로 지정됐고, 하례리 주민들은 효돈천을 주제로 지난 2014년부터 생태관광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주민들은 해마다 효돈천을 중심으로 내창축제와 정령축제, 감귤꽃축제를 운영하며 마을의 매력을 뽐내고 있다.

고살리숲길
한라산 남쪽 첫 마을인 하례2리에 고살리라 부르는 샘이 있다. 이곳에서 출발로 생태 하천 옆을 지나는 자연 탐방로가 있다. 제주도 숲의 원형을 온전히 보여주는 고살리숲길이다. 동백나무와 구실잦밤나무가 군락을 이루는데 쾌적한 하천 주변 숲의 속살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다. 그동안 일반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초근 주민들이 자연해설도 하고 숲밧줄놀이 교육도 한다.

수악 주변 화전 터와 분수림
제1횡단도로 수악 기슭 예이츠산장 주변에 벵듸왓화전이 있었다. 1918년 제작된 「조선오만분일지형도」 제주지형도에는 화전가옥 14채가 나온다. 그런데 이곳 화전마을은 해방 이전에 모두 사라졌다.


▲ 수악 주변에 화전민이 살던 가옥의 흔적(사진=한상봉)

1900년대 초반 화전이었던 공간이 해방 이후에는 울창한 숲으로 변했다. 1960년대 정부와 주민이 협력해서 분수림을 조성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전국 대부분 산이 민둥산으로 변했는데, 정부가 숲을 조성하기 위해 꺼낸 정책 가운데 하나가 분수림이었다. 국유지에 정부가 묘목을 대고 주민이 이것을 심어서 숲을 조성하고, 이후 목재나 땔감으로 팔아서 정부와 주민이 수익을 나눈다는 구상이었다. 물론, 이 구상은 곤로나 가스렌인지가 공급되면서 무산됐다. 수악 주변 숲은 해방 전후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어캐할망당
서귀포시 농업기술센터 북쪽 사거리에 점마소 터가 있다. 조선시대 이 일대에는 영천관이 있었다. 지방관들이 정의현과 대정현을 오갈 때면 영천관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점마소는 행인들이 영천관에 들렀을 때 말을 매던 곳이다. 점마소에 큰 당산나무가 있어 주민들은 그 나무 아래서 소원을 빌었는데, 주민들은 그 당을 어캐할망당이라고 한다. 당 주변에는 과거에 여인들이 출입하던 폭 1m 남짓한 좁은 올레길이 지금도 남아있다. 당의 원형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어캐할망당 올레, 금물과원, 하례초등학교 옛터, 양희진 선생 공덕비 등(사진=장태욱) 

금물과원
서귀포농업기술센터 동쪽 경내에 있는 복원된 과원이다. 조선시대 이곳에 금물과원이 있어서 여기서 수확한 귤을 조정에 진상했는데, 조선후기에 페원됐다가 서귀포농업기술센터가 지난 2010년에 복원한 것이다. 수령이 수십 년에서 300년에 이르는 귤나무들인데, 당유자와 유자, 사두감, 병귤, 홍귤, 진귤 등 재래종 품종도 있고, 평호문단과 하귤, 금감자, 삼보감 등은 근대에 외국에서 도입된 품종도 있다.

양하진 선생 공덕비
양희진 선생은 하례1리에서 태어나 1926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이후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기업도 경영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선생은 성금을 희사해, 하례초등학교의 과학관을 건립하고 시설 및 비품을 마련하도록 하였다. 이외에도 마을복지회관 사업비, 새마을 사업비 등에도 도움을 주었다. 재일 제주인의 개척정신과 고향사랑을 보여주는 사례다. 하례1리 마을회관 마당에 있다.

하례초등학교 옛 터
하례초등학교는 1946년 개교한 뒤 1949년 제주4‧3 와중에 무장대의 기습으로 건물이 전소됐다. 이후 주민들의 노력으로 학교가 재건됐고, 1975년 현 위치인 하례리 326번지로 옮겨졌다. 하례초등학교 옛터(하례리 506번지)는 사유지가 됐지만, 오래된 관사 일부가 남아있다. 하례초등학교 초창기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다.

소귀나무 보호수
두레빌라트 서쪽에 있다. 소귀나무는 양지바른 하천 부근에서 높이 5~15m 정도로 자라는 상록 활엽수다. 번식이 매우 어려운 종이고 우리나라에선 자생지 분포가 매우 제한적인데, 효돈천과 신례천에선 자생 소귀나무가 다수 확인된다. 하례1리 마을 입구에 위치한 소귀나무 보호수는 수령 100년이 넘은 나무인데, 장마철 무렵에 가지마다 사탕만한 푸른색, 붉은색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주민들이 귀하게 여겨 보호하고 있다.


▲ 망장포. 옛 포구의 흔적이 남아 있다. 2021년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에 선정됐다.(사진=장태욱)

망장포
사람과 물자가 드나들던 전통포구이다. 포구는 1930년대에 건설된 것인데, 1984년에 주민이 협력해 보수공사를 시행했다. 포구에 남아있는 「망장포내항보수공사준공비」에는 당시 공사에 참여한 주민 수와 비용 등이 상세히 적혀있다. 주변에는 보타사 터와 불광사(조계종) 등 불교 사찰이 있고, 주민들이 심방을 불러 굿을 하던 한개명신당이 있다. 보타사는 2019년 화재로 전소해, 지금은 관리사만 남았다. 최근 포구를 이용하는 어민이 사라지면서 한개명신당을 찾는 사람도 드물다.

포구 크기가 작아서 지금은 어민들이 이곳에 배를 계류하지 않는다. 하례리 선주들은 현재 어선을 위미항이나 하효항에 계류하고 있다. 망장포는 옛 포구의 원형을 잘 보여주는 문화자산으로, 2021년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에 선정됐다.


**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와 ‘서귀포사람들’이 지역 파트너쉽 사업으로 작성한 기획기사입니다.

<저작권자 ⓒ 서귀포사람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