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의 기억과 시민의 지성, 낡은 분교장을 지켰다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③]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추진단의 활동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센터장 이광준, 이하 ‘센터’)는 2021년부터 서귀포시민의 삶과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고, 공감을 불러올 만한 대상으로 미래문화자산을 선정하는 일에 나섰다. 시민의 힘으로 도시의 가치를 찾고 확산하는 일인데, 그 원조는 서울시가 추진한 서울미래유산에서 찾을 수 있다.


▲ 천상병 시인이 생전에 살았던 집이 귀천 카페로 변했다. 카페는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사진=장태욱)

서울시는 지난 2013년 서울사람에게 가치가 있는 자산을 발굴해 보전하는 사업으로 서울미래유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울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온 공통의 기억 또는 감성을 간직한 보물을 발굴해 미래세대에게 전한다는 게 프로젝트의 취지다.

시민·서울시·자치구·전문가 등이 홈페이지와 사회관계망(SNS)를 통해 미래유산 후보를 신청하면 서울시가 사실 검증과 자료 수집을 위해 조사에 나섰다. 이후 미래유산보존위원회가 후보 대상을 심사하고, 소유자 동의 과정을 거쳐 선정 여부를 결정했다. 선정되면 유산 소유자는 인증서와 동판 형태의 표식을 받게 된다.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도 서울시와 유사한 과정을 거쳐 선정된다. 구체적으로는 ①미래문화자산 시민공모 ②미래문화자산 발굴 및 기초조사 ③심의 및 동의 ④미래문화자산 서정 ⑤콘텐츠화(아카이빙 및 목록화) 등의 과정을 밟는다.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추진단이 남원읍 하례리 망장포를 방문해 마을 이장으로부터 포구에 대해 설명을 듣는 장면이다. 미래문화유산 추진단은 현장조사와 평가 과정을 거쳐 미래문화자산을 최종 선정하는 역할을 맡았다.(사진=장태욱) 

이 가운데 기초조사와 심의 과정이 중요한데, 미래문화자산 추진단이 그 역할을 맞는다. 센터는 미래문화자산 사업을 위해 문화 전문가와 전·현직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 10명으로 추진단을 결성했다.

추진단은 우선 회의와 워크샵 등으로 미래문화자산 사업의 취지를 이해하고, 사업을 위한 공감대를 형성했다. 미래문화자산 선정에 내실을 기하기 위해 서울과 전주 등 앞서 사업을 펼쳤던 도시를 방문해 전문가들과 의견을 교환했다. 그리고 내부 회의를 통해 미래문화자산에 어떤 항목을 선정할 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했다.


▲전주미래유산에 선정된 한가네서점.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추진단은 다른 시도를 방문해 담당자와 의견을 나누는 등 선정 작업의 내실을 다지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사진=장태욱)

시민과 발굴단이 미래문화자산 선정을 제안하면, 현장을 방문해 대상을 확인하고 회의를 통해 선정이 적합한 지 결정했다. 추진단은 미래문화자산 선정에 객관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나름대로 엄격한 절차를 밟았다. 우선 자연과 의식주, 무형민속 등 3개 분과를 구성하고, 분과는 제안된 안건을 판단하기 위해 현장을 방문한 후 사전 검토안을 작성했다.

추진단은 전체회의를 열고 분과가 작성한 검토안을 바탕으로 개별 미래문화자산 후보를 최종 평가했다. 개별 자산마다 ▲보존 필요성 ▲시급성 ▲지역성 ▲공유성 ▲콘텐츠성 등 5개 요소를 평가하고, 요소별 20점 만점으로 점수를 매겼다. 그리고 요소별 점수를 합산한 후, 종합의견을 작성해 선정 여부를 결정했다.

발굴단은 2021년에는 시민 제안으로 올라온 16건·46개를 심사해 하례리 망장포를 포함 5건·15개를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으로 선정했다. 2022년에도 16건·34개를 심사해 서호 수도기념비를 포함 5건·24개를 미래문화자산으로 선정했고, 2023년에는 전문가와 발굴단이 제안한 82건을 심사해 동일리 감저공장을 포함 30건을 선정했다.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추진단장을 맡은 김찬수 박사는 “서울은 미래유산 사업의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오래된 음식점에 미래유산 동판을 달았는데, 그거 하나로 주인이 자부심을 느끼고 찾는 손님도 자신이 의미 있는 공간에서 음식을 먹는다는 걸 알게 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서울에서 미래유산 선정에 참여했던 전문가들을 만났는데, 사업에 대한 의지가 확고하고 미래유산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하더라. 서귀포시도 서울시처럼 확신을 가지고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김찬수 단장은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선정 사업에 참여하면서 서귀포시에 문화자산이 많다는 데 놀랐다. 특히, 상천분교가 기억에 남는다.”라며 “제주4·3으로 마을과 학교가 불타고 이후 재건되는 역사가 학교에 남아 있다. 그리고 미국의 원조로 교실을 갖췄다는 현판이 있어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고 봤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학교가 폐교되고 건물이 낡아 안전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왔는데, 이런 경우 미래문화자산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딜레마에 놓인다고 말했다.


▲ 폐교된 상천분교. 2022년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에 선정됐는데, 안전진단에서 D 등급이 나와 제주도교육청이 철거를 결정했다. 하지만 주민 반대에 부딪쳐 지붕만 철거하고 건물 내부로 출입을 통제하는 상태로 남겼다.(사진=장태욱)

이광준 센터장은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을 선정하면서, 주민들이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다는 걸 알았다. 구체적으로는 예전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공간에 대한 제안이 많았고, 그 과정에서 마을마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상천분교의 사례로 미래문화자산에 대해 의미를 부여했다. 상천분교가 이미 폐교되고 낡은 건물로 남아 있었는데, 미래문화자산에 선정되면서 주민들이 옛 분교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 건 주목할 만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는 지난 2022년 상천분교를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으로 선정했다. 그런데 제주도교육청은 분교 건물이 안전진단 결과 D등급을 받았다며 철거를 시도했다. 이에 마을 청년들이 철거에 강하게 반발했고, 교육청은 주민의 의견을 일부 수용해 완전 철거를 보류하고 지붕만 해체한 상태다. 미래문화자산 선정이 공동의 기억 공간을 지키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될 만한 사례다.


**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와 ‘서귀포사람들’이 지역 파트너쉽 사업으로 작성한 기획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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