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화력으로 번성한 인류, 풍부한 다정함이 민주주의의 열쇠

[북 리뷰]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 공저 『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디플롯, 2021)

자연의 힘은 지구가 생겨난 이후 46억년 동안 무의식적으로 작용하며 지구의 변화를 만들었다. 즉, 순수한 자연의 힘인 화산활동, 운석충돌, 지각의 이동, 풍화, 태양의 활동 같은 물리적 힘이 변화의 동력이었다. 하지만 지구 역사상 가장 번성한 단일생물종인 호모 사피엔스는 자연의 힘과는 전혀 다른 ‘의지’라는 힘을 통해 스스로 지구환경 변화의 원인이 되었다. 21세기 과학계는 현재를 지질시대의 새로운 시기인 ‘인류세’로 정의하고 있다. ‘인류세’는 인류가 지구의 지층에 직접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는 지질학적 용어로 인류의 활동이 소행성 충돌, 지각판 운동에 맞먹음을 의미한다. 인간은 어쩌다가 지구의 지층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가장 번성한 종이 되었을까?


▲ 책의 표지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진화인류학자인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 부부가 함께 썼다. 원서의 부제는 ‘인류 기원의 이해와 보편적 인간성의 재발견’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살아남은 인류의 기원과 양면성을 지닌 보편적 인간성에 대해 진화인류학, 신경과학, 사회심리학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인류는 동서양을 아울러 성선설과 성악설이라는 잣대로 보편적 인간성을 규정해 왔다.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사악한 인간의 본성이라 했다. 반면, 장 자크 루소는 <인간 불평등 기원론>에서 인간은 본래 선하며 그가 사악해지는 것은 오로지 사유재산의 발명 이후에 만들어진 사회제도 탓이라고 했다. 사회적 유대가 유일한 보험이었던 수렵채집인 시대의 평등성을 예로 들고 있는 이 책의 논조는 루소의 주장에 가깝다. 인간은 본래 타인에게 다정한 존재로 진화했고 그 이유로 번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책은 다윈과 근대 생물학자들이 주장한 ‘적자생존(살아남아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 ‘자기가축화(스스로 동물적 본성을 억제하고 사회화되는 과정), ‘마음이론(타인의 마음을 읽는 능력) 같은 이론과 가설을 근거로 협력적 의사소통 능력인 ’친화력‘이 호모 사피엔스를 번성케 한 초강력 인지능력이었음을 밝힌다.

다윈은 철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영향을 받아 1869년 발행된 <종의 기원> 제5판에서 ‘적자생존’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 허버트 스펜서는 <종의 기원>을 읽고 적자생존 개념을 인간사회에 적용하여 ‘사회 다윈주의(Social Darwinism)'이라는 정치이념을 창안했는데 이는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철학적 근거가 되었다. 지난 150년 동안 이 잘못된 적자생존의 해석은 제국주의, 파시즘, 나치즘, 군국주의에 명분을 제공했으며 약육강식, 승자독식, 능력주의 같은 무한경쟁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쓰였다. 다윈이 적자생존의 부적절한 쓰임을 알았다면 통탄했을 일이다.

물론 다윈과 근대 생물학자들에게 적자생존이란 살아남아 생존 가능한 후손을 남기는 것, 그 이상으로 확대될 개념은 아니었다.(p.19) 다윈은 자연에서 친절과 협력을 끊임없이 관찰하며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자상한 구성원들이 가장 많은 공동체가 가장 번성하여 가장 많은 수의 후손을 남겼다.”고 썼다.(p.20) 이 책의 메시지 전체를 관통하는 근원적 통찰이다. 다윈의 뒤를 이은 많은 생물학자들도 협력을 꽃피울 수 있게 하는 친화력의 극대화가 진화의 열쇠라고 기록하였다. 협력과 친화력이 배제된, 힘에 의한 적자생존은 최악의 생존전략이라는 것이다.


▲ 식물은 아름다운 꽃으로 곤충을 유인해 생식과 종의 확산에 성공했다.(사진=장태욱)

친화력은 자기가축화를 통해서 진화했다. 자기가축화는 야생 동물이나 인간이 동물적 본성을 억제하고 사회화하는 과정이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자연선택이 다정하게 행동하는 개체들에게 우호적으로 작용하여 우리가 유연하게 협력하고 의사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켰을 것이라고 가정한다. (p.122)

자기가축화를 통해 집중적 친화력 선택이 진행된 사람 종에게는 집단 내 타인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범주가 만들어졌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사람도 우리 집단으로 인식하는 능력이다. 같은 스포츠팀 유니폼을 입었거나, 같은 동호회 사람이면 우리 집단이 되며 십자가 목걸이 하나로 우리 편으로 여기기도 한다. 우리는 집단 내 타인을 위해서 기꺼이 돌봄을 제공하고 유대를 맺으며 심지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한다.(p.159)

이것은 타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인 마음이론으로 설명된다. 인간은 아기 때 이미 집단 내 타인을 알아보기 시작하는데 부모와 아기의 눈맞춤은 옥시토신 순환회로를 만들어 부모와 아기 모두 사랑을 느끼고 사랑받는 느낌을 주고받게 한다. 이런 능력이 착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가능한 배경이기도 할 것이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 종이 지닌 최고의 미덕과 강점을 잘 설명해준다.


▲ 보노보 수컷(좌)과 침팬지 수컷(우). 보노보는 서로 공격하지 않고 협력하는 성향이 있는 반면, 침팬지는 협력에 서툴고 공격하는 성향이 있다. 저자는 보노보를 자기가축화된 동물이라 판단한다.(사진=책의 삽화)

하지만 그 친화력의 이면에 내재된 폭력성과 잔인성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내집단이 아닌 위협적 외부집단에 대해 드러내는 공격성이 동전의 양면처럼 상존해 온 것이 인류역사이다.

사람 자기가축화 가설은 우리가 진화과정에서 마음이론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신경망의 활동을 둔화시키는 능력도 얻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p.182)

이 가설에 의하면 우리 집단을 위협하는 외부 집단은 비인간화 된다. 즉, 사람이 아닌 존재, 동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외부 집단에 부정적 특성을 부여하는 경향은 차별에서 제노사이드(인종, 이데올로기, 종교 등의 대립을 이유로 그 구성원을 대량 살해하는 행위)까지 사람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충돌의 동기로 작용하게 된다. 사회과학자들은 이 경향을 ‘편견’이라 불러왔는데, 편견의 일반적 정의는 한 집단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다. 실제로 이 편견은 어떤 규모의 집단에서든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학연, 지연, 인종, 성별, 종교, 지지하는 정당, 응원하는 스포츠팀 등등 약간의 차이만 있어도 대립하는 경향은 분명해 보인다. 더불어 우리가 위협받는다고 느낄 때 우리 집단 소속이 아닌 사람들의 기본 인권에는 눈을 감는 ‘맹목성’은 편견보다 훨씬 어두운 힘이다.

우리의 가설은 모든 사람의 뇌에는 타인을 비인간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본다.(p.183)

인간은 집단정체성을 토대로 타인을 판단한다. 비인간화의 증거는 사실 모든 문화권에서 나타났다. 사회심리학자 누어 크테일리는 2500만 년 동안 진행된 사람의 진화과정을 보여주는 <인류진화도>를 이용해 비인간화를 연구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외집단에 대한 비인간화에 가장 크게 기여한 요소는 ‘그들이 먼저 우리를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인식이었다. 이것을 보복성 비인간화라고 한다.(p.194)

편견, 맹목성, 보복성 비인간화가 유발하는 끔찍한 인간성 역시 부정할 수 없는 보편적 인간성으로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 사회심리학은 무엇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끔찍한 행동을 하게 만드는지 연구해왔다. 사회심리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세 가지 중심요인을 도출했는데, 바로 편견, 순응욕구, 권위에 대한 복종이다.(p.212) 홀로코스트의 주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해 한나 아렌트가 제시한 개념 ‘악의 평범성’을 구성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모든 인간에게는 비인간화와 끔찍한 잔혹함에 대한 잠재력이 있다. 그렇다면 다른 동물과 인간의 차이점, 친화력을 바탕으로 우리는 어떻게 다정한 미래를 향해 갈 수 있을까?

저자는 민주주의가 해법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가 더욱 풍부한 다정함이라고 말한다. 민주주의에서는 특정집단이 힘을 잃어도 여전히 어느 정도의 힘을 갖고 있으며 권력을 가진 자들과 동일한 인권을 지닌다. 안전하고 평화로운 권력이양이 서로에게 용인되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민주주의는 비인간화를 막는 점잖은 해법일 수 있을 것이다.

인류는 역사 속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위협받는 무수한 경험을 했다. 젠더갈등, 빈부갈등, 인종갈등, 이념갈등, 국가 간 갈등과 같은 다양한 정체성이 충돌하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이러한 ‘집단 간 관계 개선의 주된 해법은 교육과 접촉’이라고 보았다.(p.291) 접촉과 교류, 교육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고 각 집단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며 진심어린 우정이 서로를 인간의 최악의 천성으로부터 보호해준다는 것이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직면한 많은 과제 중 하나로 극우 이데올로기 추종자 집단인 대안우파의 출현에 우려의 시선을 보낸다. 이들은 사회지배 성향과 우파 권위주의 성향이 높은 사람들로 자신들의 집단 동질성에 위협으로 느껴지는 외부자들에 대해 극도의 불관용을 보인다.

사회지배 성향이 높은 사람들은 ‘적자생존’이라는 통념을 신봉한다. 그들은 “사회에는 다른 집단들보다 열등한 집단이 있다.”고 믿으며 ”이상적인 사회라면 일부 집단이 상위를 차지하고 나머지 집단들이 아래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p.245)

미국의 트럼프나 한국의 현재 권력집단의 행태가 오버랩 되는 대목이었다. 저자는 정치적 신념에 따른 집단을 세 가지로 분류했다. 온건한 중도, 이데올로기 신봉자, 타인을 비인간화 하는 사람들이다. 정치적 신념은 유동적이다. 온건한 중도에 속한 사람들이거나 이데올로기 신봉자들 역시 자신들의 집단 정체성이 위협받는 상황이 되면 극단주의로 밀려날 수 있다.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현실적 대안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민주주의란 권력의 집중이 아닌 분산을 추진하고, 유사함이 아닌 다름을 찬양하며, 만인의 평등한 권리를 추구하기 때문이다.(p.251)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모습이다. 책을 읽는 내내 과연 현실에서 평화롭게(!) 실현 가능할까? 라는 의문이 계속되어 마음이 불편했다. 영화 내부자들의 대사도 스쳐지나갔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 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기득권을 가진 권력집단이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비인간화의 전형을 신랄하게 보여주는 대사였다.

저자는 책의 말미 감사의 글에서 “미국 대선이 끝난 후 초고를 절반 넘게 잘라내야 했다. 경고가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느꼈다..... 우리 종이 가진 비범한 친화력을 소개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골치 아픈 문제의 근본 원인을 생각하고 해법을 찾아내는 데 도움이 될 책을 쓰고 싶었다."고 했다. (p.302)

트럼프가 대통령이었을 시기에 저자들이 이 책을 쓰며 어떤 심정으로 해법을 찾고자 했을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대한민국은 지금 온갖 매체를 통해 감당할 수 없이 쏟아져 나오는 극단적 증오언설과 혐오, 편견의 독설들이 용광로처럼 들끓고 있는 듯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과연 ‘다정함’을 통해 승리할 수 있을까? 


정병욱
가톨릭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SBS에서 방송작가로 활동하다 제주MBC에서 음악방송을 제작 진행했다. 지금은 제주농산물을 가공하는 중소기업을 운영 중이며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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