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사한 한복 입은 색시, 주변엔 개구리가 ‘빨딱'
[주말엔 꽃] 수련(睡蓮)
서귀포는 천지연폭포, 정방폭포 등 시원한 물줄기가 있어서 명품 정원도시가 됐다. 천지연폭포 주변에는 서귀포시공원과 걸매생태공원이, 정방폭포 주변에는 정모시공원이 있다.
이들 공원 가운데 특별히 즐겨 찾는 공원이 있다. 정모시공원 남쪽에 딸린 조그만 쉼터 같은 곳인데, 공식적인 이름은 ‘서복불로초공원’이다.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초를 구하러 떠났다는 진나라의 벼슬아치 서복(徐福)의 이름에서 따온 공원이다.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조성한 것인데, 공원 이름이나 조성 취지나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즐겨 찾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공원에 아담한 연못이 있고, ‘제주4·3 정방폭포 희생자 위령 조형물’이 여기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아침에 공원을 향하는데, 벼랑 아래 바다에서는 물비린내가, 벼랑 위 산책로 주변에선 풀비린내가 짙게 풍긴다. 자연과 생명이 제 끼와 색깔을 마음껏 발산하는 냄새인데, 도심에선 맡을 수 없는 것이다.
공원 가운데 100평 남짓한 연못은 절반 이상을 갈대가 점유하는데, 갈대가 치지하고 남은 수면은 수련이 차지했다. 수련은 물 위에 하트 모양의 넒은 잎을 펼쳐서 그늘을 드리웠다. 무더운 날 이 그늘에 기대에 개구리와 두꺼비 같은 놈들이 시원하게 지낼 것이다. 그 넓적한 잎 위로 화사한 수련이 꽃을 피웠다.
수련은 목련과 더불어 초기에 출현한 속씨식물에 속한다. 현재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속씨식물 화석의 연대가 1억3000만 년 전의 것으로 확인됐다. 벌을 포함하는 최초의 화석은 미얀마에서 발견된 약 1억 년 전의 호박이다. 화석으로 판단하면, 초기 속씨식물은 벌이 아닌 파리 같은 곤충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다.
초기 수련은 식물 내부의 녹말을 이용해 열과 향을 냈는데, 파리나 딱정벌레가 그 냄새를 맡고 수련에 다가와 앉았다. 곤충은 따뜻한 수련 잎에 앉으면 마치 동물의 사체에 앉았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곤충이 좋아하는 온도를 만들어 유인했고, 이들의 활동을 통해 수분을 했던 것이다.
수련은 중국과 유럽, 북미, 알래스카 등 북반구 고위도 지역에 분포하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도 오래전부터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에 자라는 수련 대부부분은 꼬마수련과 각시수련, 미국수련 등인데, 꼬마수련과 각시수련은 국내에 자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땅 위의 꽃이 빛을 바라는데, 물에 친숙한 수련은 비가 내려 오히려 더욱 화사하다. 어떤 건 꽃잎이 흰색이고 어떤 건 분홍색인데, 모두 노란 암술다발을 물고 있다. 노란 다발은 화사한 꽃잎과 대비를 이뤄 마치 한복을 잎은 색시처럼 청순한 느낌을 준다.
수련이 물에 사는 식물이어서 수련의 ‘수’가 물(水)을 뜻할 것이라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睡’라고 쓴다. 잠을 뜻하기도 하고, 꽃이 오므라드는 모양을 뜻하기도 한다. 이름이 의미하는 대로 수련은 수면운동을 한다. 이른 아침 꽃을 피우기 시작해 저녁 무렵이면 꽃잎을 오므린다. 낮이어도 날씨가 흐리면 꽃잎을 닫고 만다. 햇빛이 사라지면 눈을 감는 것처럼 꽃잎을 닫아버리는 꽃이니, ‘잠자는 연꽃’(睡蓮)으로 불릴 만하다.
수련 사진을 찍는데, 청개구리가 여기저기서 팔딱팔딱 뛰어올랐다. 한 마리가 아니고 여러 마리다. 아침 일찍 연못을 찾은 방문객에게 장난을 걸어오는 것일 게다. 물에서 솟아오른 수련 잎에서 잠시 쉬는 모습도 보였다. 수련의 넓은 잎은 개구리에게 뗏목이 되어줄 정도로 부력이 크다.
여름 시원한 물줄기가 그리운 날이면, 정방폭포 절벽 위 공원을 찾을 일이다. 거기서 색시 같이 청순한 수련이 화사한 옷을 입고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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