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무덤가 흰 눈처럼 설핏 다녀간 시인, “그 빈자리가 너무 크다”

오승철 시인 1주기 추모 행사 18일 열려


‘오승철 시인 1주기 추모의 날 공연’이 18일 오전 10시, 서귀포시공원에서 열렸다. 오 시인의 동료문인과 고향 친구, 형제 등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모여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오승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행사를 주관했고, 서귀포예총과 서귀포문인협회, 서귀포시조시인협회, 바람난장 등이 후원했다.


▲ 오승철 시인 1주기 추모행사가 18일 열렸다. 사진은 성악가 이마리아 씨가 추모곡을 부르는 장면(사진=장태욱)

행사는 오 시인의 ‘서귀포 바다’ 시비 주변에서 열렸다. 행사장 한켠에는 시인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사진과 시화 등이 전시됐다. 그리고  유고시를 묶은 시집 『봄날만 잘도 간다』가 비치되 참석자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나의 시는 어머니 무담가에 설핏, 다녀가는 봄눈 아닐까.

유고시집 서문으로 적힌 ‘시인의 말’이다. 차가운 겨울, 색채를 잃어가는 무덤가를 잠시 덮은 흰 눈처럼, 자신의 문학이 팍팍한 세상을 잠시나마 화사하게 채색하길 기대했을까? 그런데 흰 눈도, 작가도 모두 사라질 운명이니, 가슴 시리다.


▲ 시인의 사진과 시화 등이 전시됐다.(사진=장태욱)


양전형 제주도문인협회 회장은 추모사에서, 시인의 작품 ‘고추잠자리 22’를 인용한 뒤 “바람 같은 한 생을 두고 간 오승철 시인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엊그제 같은데 벌 써 1년”이라며 “그리운 마음이야 여기 모인 모든 이의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시인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곳 어느 구석에서 장끼를 그리며 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정영자 서귀포문인협회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장끼가 울어 쌓는/ 그대 무덤가에
고사리/ 고개를 못 들고/ 죄인처럼 섰구나


정영자 회장은 오 시인의 작품 ‘그리운 날’을 낭송한 뒤, 그의 시는 이 땅의 외로운 것, 슬픈 것, 모자란 것들을 품어 안고 등을 다독이는 따뜻한 손길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생전에 함께 웃고 울며 지내던 그 자리가 허전하다며, 세상에 사랑과 연민을 함께 두고 가신 오 시인이 그립다고 말했다.


▲ 박연술 무용가가 살풀이춤을 선보였다.(사진=장태욱)

바람난장이 음악과 시 낭송 공연을 펼쳤다.

이정아 시낭송가가 ‘오조리 포구’를, 장순자 시낭송가가 ‘제주버섯 마당’을 낭송했다. 그리고 김정희 시낭송가는 ‘꿩꿩꿩’, ‘장끼야 장끼야’ 등 두 편을 낭송했다.

그리고 이석봉 시민오케스트라 단장의 클라리넷 반주에 맞춰 성악가 이마리아 씨가 ‘하늘빛 너의 향기’를 불렀다. 서난영 팬플릇 연주가는 ‘시인과 나’, ‘초혼’ 등을 선보였다.

시낭송과 음악 연주가 끝난 후 무용가 박연술 씨가 살풀이 공연으로 무대를 마무리했다.


▲ 오승철 시비 앞에 묵념하는 참석자들(사진=장태욱)

시공원에서 추모행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을 위미리로 이동해 점심을 함께 먹었다. 오 시인의 가족이 참석자들을 위해 이날 점심상을 준비해 제공했다.

식가가 끝난 후에는 오 시인의 생가와 유년에 놀았던 동네를 함께 둘러봤다. 안정업 서귀포예총 회장은 “어릴 적에 오 시인의 집에서 얘기도 나누고 시도 배웠다”라며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 야속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 육지부 문인들도 참석했다. 이정환 한국시조시인협회 직전 이사장은 오 시인과 오래도록 교류하며 친분을 쌓았던 인연을 얘기했다.


▲ 안정업 서귀포예총 회장이 오 시인의 생가 앞에서 오래 전 추억을 얘기하는 장면(사진=장태욱)

이정환 시인은 “오승철 시인과 1976년에 만나 40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1981년 오 시인이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내가 중앙일보 신춘문예 동반 당선되어 엽서로 서로 기쁨을 나눴고, 1990년대에는 문학지 ‘열린시학’을 함께 편집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이정환 시인은 “1년 전 오 선생이 떠난 후 제주도를 보는 느낌이 달라졌다. 그의 빈자리가 너무 아쉽다.”라고 말한 후 “오 선생이 없는 제주도에 갈 일이 뭐 있겠냐는 정도로 박탈감이 생겼는데, 안정업 회장이 추모사업회를 만들겠다고 하니 함께 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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