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안 맞았던 발리, 제주도 괸당을 알고 나서 발리가 보인다

[발리와 제주사이 ①] 에필로그 : 내가 살고 싶은 곳을 내가 정하고 싶은 사람

저는 나이가 들면 우리나라가 아닌 외국에 가서 살고 싶었습니다. 아니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 전, 그 당시 도시에 사는 30대 직장인 여성인 제 눈에 비친 한국사회의 모습은 그리 희망적이지 못 해서였을까요? 제가 여행으로 동남아를 자주 오가는 편이었는데, 동남아와 한국의 모습이 제겐 대조적이었거든요. 특히 왜 한국의 마트나 병원, 지하철역의 청소하고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이든 분들일까? 동남아는 젊은 친구들이 일하는데, 왜 우리나라는 나이드신 분들이 힘든 일들을 하는걸까? 당시 나이든 어른들이 지하철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거나 화장실 모퉁이 어딘가 쪼그리고 앉아 쉬고 있는 그 모습이 제겐 참 많이도 불편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저들에게 뭔가 빚지고 있는 듯한 미안한 마음과 저도 나이 들면 저렇게 살면 어쩌지 하는 불안한 마음 두 개가 부딪히고 있었습니다.


▲ 발리의 힌두교 사원(사진=키라 이금영)

그리고 또 하나, 제가 외국에서 살고 싶었던 이유는 앞으로 살 곳은 제가 정하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태어나는 곳을 정해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이유로 어떤 나라에 어떤 장소에 어떤 가족의 일원으로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집니다. 그렇게 그 곳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어른이 되어서는 학교나 직장을 따라 사는 장소가 정해집니다. 나의 의지보다는 운명적인 요인과 외부적인 요소에 의해서 정해진 장소에 살아왔으니 이제는 제가 좋아하고 살고 싶은 곳을 제가 선택해서 살아보고 싶어졌습니다.


▲ 제주도에서 삼춘들과 같이 생활했기에 발리에서 어른들과 지내는 일이 이젠 어렵지 않습니다.(사진=키라 이금영)

2014년, 6월 저는 그렇게 발리로 떠났습니다. 나이 들어서 살아볼 곳을 찾기 위해서. 나이 들어서 내 남은 생을 이 나라에서 살아야지 하고 왔는데, 어? 여긴 아닌데? 나랑 안 맞는데 하면 곤란하니까요.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미리 살아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단지 그 마음 하나만 가지고 발리에 왔었지요. 지난번 발리여행 왔는데 여기 참 좋더라. 한 번 살아볼까? 하는 그 마음 하나 만으로요.

하지만 여행자와 생활자는 다른 거였습니다. 여행으로 왔을 때는 평화롭고 마냥 좋았던 발리였는데, 생활자 모드로 3개월을 지내니 너무 지루하고 재미없는 겁니다. 아, 여긴 나랑 안 맞나봐. 여긴 안 되겠다. 그렇게 3개월의 발리 생활을 마치고 저는 치앙마이에서 마법 같은 한 달을 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습니다.


▲ 발리의 논(사진=키라 이금영)

그러다 우연히 2017년 봄, 제주에 불시착하게 되었습니다. 유럽 여행가는 지인들의 제주집을 지키러 3개월 머물고자 했던 게, 1년이 되고, 7년이 지났습니다.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발리에 적응하지 못하고 3개월 만에 한국에 돌아온 이유를. 제가 지난 7년 동안 제주에서 살았던 것처럼 발리에서도 그렇게 살았어야 했었습니다. 제주 삼춘들과 귤 따러 다니면서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그들의 음식을 배우고, 그들의 문화를 배웠던 것 처럼요. 하지만 전 그러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말로는 나 여기 살아, 라고 하면서 저는 인도네시아어가 아닌 영어를 썼고, 그들의 언어, 음식, 문화를 배우려하지 않았던 거였습니다.

2022년 봄, 개인적인 일로 우연히 발리에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제가 다시 발리에 올 거라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난 7년 동안 제주에서 나름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다시 발리와 제주를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그전에 발리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이제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발리가 제주와 참 많이 닮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둘 다 화산섬, 그들만의 독특한 문화와 언어가 있는 곳, 제주가 대한민국의 특별자치도인 것처럼 발리 역시 인도네시아의 특별자치도입니다. 제주의 괸당문화처럼 발리의 공동체 문화가 있고, 수많은 신들을 모시는 신들의 섬 발리와 제주.

이제 이 아름답고 놀라운 두 섬의 비슷하고도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제주와 발리로부터 배우게 된 것들을요.




발리
인도네시아의 열대 섬
제주도의 3배
인구수 약 380만 명
관광객 연간 500만 명 이상 방문
종교 힌두교
화산섬, 인도네시아어+발리어, 관광업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2022년 봄부터 2024년 3월 현재 발리에서
제주와 발리를 오가며,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
그 경계에서 하우스노마드로 살고 있습니다.
2023년까지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운영,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블로그<하우스노마드 키라>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을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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