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를 다스리는 데는 진피, 효능은 당유자"

[제주 당유자 ②] 유배객과 현지인이 모두 사랑했던 열매, 이유가 있다

당유자는 오래전부터 제주섬에 자생하는 귤 품종이다. 당유자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충암 김정의 『제주풍토록』에 나온다. 충암 김정은 중종 14년(1519)에 조광조와 함께 기묘사화에 연루돼 금산에 유배됐다가 이듬해 제주도로 이배됐다. 충암은 제주도의 풍토가 궁금하다는 조카에게 서신을 보냈는데, 편지를 모아 간행한 책이 『제주풍토록』이다. 충암은 제주도의 귤 품종은 9가지가 있는데, 당유자는 ‘열매의 크기는 모과와 같고 맛은 유자와 비슷한데, 거대한 열매가 매달려 누렇게 드리운 것은 진기할 만하다’고 했다.


▲ 충암 김정은 '제주풍토록'에 당유자에 대해 기록하기를 '거대한 열매가 매달려 누렇게 드리운 것은 진기할 만하다'고 했다.(사진=장태욱) 

18세기 중반 정운경은 아버지를 따라 제주도에 건너온 후 『탐라문견록(耽羅聞見錄)』을 발간했다. 그는 『탐라문견록』에 제주도에서 재배되는 9가지 귤에 대한 글을 별도로 모아 ‘탐라귤보’로 엮었다. 그는 당유자에 대해 ‘12월에 익는다. 빛깔은 짙은 황색이다.’라며 ‘단물이 신령스레 엉겨 뚝뚝 떨어진다.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맛이 진하고 상쾌하다.’라고 했다. 그리고 ‘옥폐(沃肺), 즉 기관지를 낫게 하는 데 가장 좋다’라고 칭송했다.




이미 품었던 바다 같은 뜻/ 거듭 바람과 서리 계절 섞고/
바로 고래를 타고 있는 나그네 같이/ 시단(詩壇)에 기백이 호연하네

1777년 정조시해 기도에 연루돼 제주에 유배됐던 정헌 조정철이 『정헌영해처감록』에 당유자를 칭송하며 남긴 시다. 그는 당유자는 흡사 남자의 모습이어서 비교하자면 호걸스런 인사나 시와 술을 좋아하는 나그네라고 했다. 그리고 겨울이 지나도 열매가 내는 상큼한 맛을 사랑해 ‘갈증이 날 때 한두 알을 먹으면 통쾌하기가 말을 할 수 없다.’고 극찬했다.

이처럼 겨울에 바람과 서리를 견딘 후 당유자가 내놓은 상큼한 맛은 선비들에게 특별한 느낌을 줬다. 게다가 큼직한 과일이 겨울에 나무에 매달려 익어가는 풍경은 시심(詩心)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 당유자는 이방 선비는 물론이고 제주 섬사람들의 사랑을 받은 과일이다.(사진=장태욱)

그런데 제주사람들은 이방 선비들과는 다른 이유로 당유자를 사랑했다. 과거 약이 없을 때 섬사람들에게 당유자는 영양제이자 치료제였다. 아프거나 기력이 부족한 사람이 있으면, 마늘과 생강, 배를 당유자와 섞어 몇 시간을 달였다. 그렇게 달이는 동안 집안은 알싸한 냄새로 가득 차 마치 한약방을 방불케 했다.

그런데 당유자는 단순한 민간의학의 소재에 그치는 게 아니라, 한방에서도 약재로 주목을 받는다. 고려한의원 강동원 원장은 “과거에 한약재로는 동정귤을 진상했는데 최근에는 온주귤 껍질을 쓴다. 한방에서는 주로 알맹이에 단맛이 나는 귤의 껍질을 말려 진피로 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진피의 효능은 기를 내리는 데 있다. 체하거나 소화가 안 되거나 기침을 할 때 기운이 통하게 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당유자는 껍질이 두껍고 향이 강하고 맛이 쓰다. 진피 작용이 온주귤보다 더 강할 것으로 보인다. 온주귤 대신에 당유자를 써도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 서귀포일터나눔자활센터 부설 제주마음청 사업단이 당유자를 이용해 프리미엄 수제청을 만드는 장면이다.(사진=장태욱)

한편, 당유자를 소득 작물로 발굴해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가 있다. 서귀포일터나눔자활센터(센터장 안정윤)는 부설기관으로 제주마음청 사업단은 운영하는데, 기관은 최근 제주 당유자를 원료로 프리미엄 수제 과일청을 생산한다. 제주 토종자원을 소재로 제품을 생산해 6차 산업 기반을 조성하는 데에 기여하고, 취약계층을 위해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취지다. 제주마음청 사업단은 해썹(HACCP) 인증 시설을 갖추고 여러 차례에 걸친 실험을 통해 자체 레시피를 개발했다. 지난해부터 제품을 생산해 유통업체에 납품하며 제주 농업에 새로운 길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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