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향기를 품은 하얀 꽃인데, 아이 머리만한 열매 품었다

[주말엔 꽃] 평호문단 꽃

보목마을을 걷고 있는데, 뉘 집 정원수 가운데 돋보이는 나무가 있다. 짙은 초록잎이 무성한데, 거기에 꽃이 포도처럼 덩어리로 피었다. 푸른 하늘 아래서 나무와 꽃이 선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꽃으로는 나무 종류를 확인할 수 없는데, 더 가까이 가보니 아직 수확하지 않은 열매 두 개가 나무에 매달려 있다. 열매 색으로나 모양이나 크기로나, 평호문단(平戶文旦)이다. 어린이 머리만큼 큼직한 게 초여름까지 나무에 달려 있는 게 신기하다.


▲ 꽃잎이 벌어지기 시작한 평호문단(사진=장태욱)

▲ 사람 손가락보다 큰 꽃들이 포도처럼 뭉처셔 핀다.(사진=장태욱)

꽃잎 네 장을 펼치는데, 꽃망울끼리 빼곡하게 붙어있어 꽃잎 펼치기도 수월치가 않다. 송이버섯처럼 머리가 큰 암술이 꽃 가운데 묵직하게 버티고 있고, 그 주변을 가늘고 짧은 수술이 둘러싸고 있다.

암술과 수술의 키를 비교하면, 암술이 조금 크다. 그렇다고 수술의 꽃가루가 암술에 닿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귤처럼 문단 꽃도 자가수분이 가능하지만, 타가수분으로 맺은 열매가 품질이 좋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질 좋은 문단을 얻기 위해 다른 귤나무와 섞어서 재배한다.

문단의 꽃은 귤 꽃처럼 은은한 향을 내는데, 꽃이 만개할 때 짙은 향을 낸다. 아직 꽃잎이 다 벌어지지 않아서 향기는 제대로 맡지 못했다. 며칠 지나 꽃잎을 펼치면, 그 향을 좇아 벌이 날아들 것이다.


▲ 짙은 초록빛을 내는 나무에 흰 꽃이 군데군데 뭉쳐서 피었다.(사진=장태욱)

문단은 귤보다는 자몽에 가까운 맛을 낸다. 쓴맛이 있고, 단만이 약하기 때문에 아직 제주도에서는 상업용으로는 재배하지 않는다. 큼지막한 열매를 탐해 조경수로 마당에 키우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웃 일본에선 이걸 귤이나 한라봉처럼 상업용으로 재배한다. 국내 시장에선 감귤의 가격이 대체로 당도에 의해 결정되는데, 일본은 약간 다르다. 하귤이나 문단처럼 쓴맛을 내는 것도 그것대로 찾는 사람이 있다.


문단은 말레이 반도에서 인도차이나에 걸친 아시아 남부 지역이 원산이다.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 일본에 유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도가 높지는 않지만 향기가 있고 자몽처럼 특유의 쓴맛이 있는데, 이걸 좋아하는 소비가가 있다.

문단은 자연교잡에 의해 성질이 다른 품종이 여럿 발생했다. 고치현의 ‘도사문단(土佐文旦)’ 가고시마현의 ‘아쿠네문단(阿久根文旦)’, 나가사키현의 ‘히라도문단(平戶文旦)’이 대표적이다.


▲ 아직 나무에 매달려 있는 열매가 있다. 일반적으로 12월에 수확해서 봄까지 저장해두고 먹으면 좋다. 

▲ 아들 어릴 적에 문단을 들고 찍은 사진(사진=장태욱)

히라도는 일본 나가사키현 북서부 히라도섬 주변을 행정구역으로 하는 도시이름인데, 한자 이름(平戶)을 우리식으로 읽으면 ‘평호’다. 히라도는 규슈 본토에서는 가장 서쪽에 있다. 성산포에서 부산까지가 약 275킬로미터인데, 히라도까지는 약 225킬로미터다. 위도로도 제주도와 비슷하니 히라도에 적합한 나무라면 제주도에도 잘 자랄 것이다.

평호문단은 껍질이 두껍고 과일 무게가 800g~1kg에 이른다. 이건 모든 문단류의 공통점이다. 결실성도 좋고 병에도 강한데, 12월에 수확하고 3월까지 저장해서 먹는다. 과육은 두껍고 단맛과 신맛의 균형이 있고 식감도 좋다.

말이 나온 김에 평호문단 몇 그루를 구해서 심어봐야 겠다. 종묘상에게 연락했는데, 어린 묘목을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농장에 가족이 또 늘어나겠구나. 크지도 않은 농장에 나무만 여러 가지로 심는 게, 어찌 빼곡하게 뭉쳐서 피어난 문단 꽃을 닮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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