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향 머금은 매콤 담백한 두루치기, 구수한 솥밥과는 무한회로
[동네 맛집] 남원읍 신례리 ‘산수갑산’
농장에서 일을 하는데, 비가 내렸다. 조금 젖은 몸으로 점심을 먹어야 하는데, 미안해서 아무데나 들어갈 수 없다. 이럴 땐 야외에서 노동하는 사람들이 자주 가는 식당이면 좋다.
남원읍 신례리에 있는 ‘산수갑산’, 이곳 마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식당이다. 밭에서 일을 하던 사람들, 주변 현장에서 일하던 일꾼들이 두루치기를 찾아 식당에 몰린다. 신례초등학교 테니스 선수들이 방학 때 이곳을 정해놓고 점심을 먹는 것도 봤다. 특히, 내 친구이자 신례1리 이장인 양택균이 즐겨 찾는다.

산수갑산을 찾은 시각은 오후 1시 쯤, 시간이 늦었는지 우리 말고는 손님이 한 테이블에 밖에 없었다. 손님 40명은 채울 만한 식당인데 다소 한산하게 느껴졌다.
두루치기 2인분을 주문했더니, 반찬과 함께 양념된 돼지고기가 넓고 두터운 팬에 올려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노란 달걀찜이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이건 식욕을 부르는 냄새다.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고 돼지고기를 가열했다. 고기가 노릇하게 이어갈 무렵에 파와 콩나물, 무채를 섞은 양념 채소를 얹었다. 이렇게 고기와 채소를 섞어가며 볶으면,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가 입맛을 자극한다.
고기가 다 익을 무렵이면 주인장이 밥을 내오는데, 그냥 공기밥이 아니라 솥밥이다. 솥뚜껑을 열었는데, 김이 오르면서 누룽지 향이 퍼졌다. 밥을 그릇에 덜어 넣은 후 솥에는 뜨거운 물을 부어 숭늉을 만들었다. 밥을 한 숟가락 먹었는데, 찰지고 고소한 게 솥밥 특유의 맛이다.

고기 한 점 먹으니 매콤한 양념 맛과 함께 채소 특유의 향이 배었다. 고기를 상추에 싸서 먹었는데, 맛있어서 계속 먹게 됐다. 솥밥 한 숟가락 다음 고기 한 점, 이걸 반복하다보니 몸에서 열이 났다.
이날 먹은 국은 된장 국물에 미역을 넣고 끓인 것인데, 과거 제주도에선 익숙했지만 다른 지역에선 보기 어려운 음식이다. 주인장은 제주도가 고향이 아닌 것 같은데, 이렇게 제주도 토종 국을 내놓았다.
주인장은 “내가 여기서 음식을 13년째 파는데, 제주도 음식 못하겠냐?”라면서 “미역과 된장이 궁합이 좋은 음식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이걸 내놓는다.”라고 말했다.
사실 토종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돼지고기 두루치기도 얼마 전까지 제주도에 없던 음식이다. 필자 경험으로는 두루치기라는 음식을 처음 먹은 게, 1987년이다. 그것도 제주도가 아닌 부산에서 처음 먹었는데, 돼지고기가 아닌 닭고기 두루치기였다.
아마도 2000년 무렵에 외지에서 제주도로 이주한 분이 식당에서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만들어서 판 게 시초가 되었을 것이다. 제주도 토종 음식에는 고춧가루 양념을 거의 쓰지 않는데, 돼지고기 두루치기는 고춧가루로 양념을 한다. 어쨌든 누구의 노력으로 제주도에 정착한 두루치기, 제주도에서 기른 돼지와 채소로 주민과 여행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으니 양자가 효도하는 격이랄까.
비오는 날, 고소한 솥밥과 함께 채소향 듬뿍 머금은 매콤 담백한 흑돼지두루치기로 몸과 마음을 채웠다. 초여름, 기력이 부족하거나 입맛이 없을 때 신례리 산수갑산을 찾을 일이다.
신례초등학교 남쪽에 있다. 점심과 저녁 메뉴가 다르다.
산수갑산
서귀포시 남원읍 중산간동로 7123, 064-767-2111
흑돼지두루치기 1인분 1만원(2인 이상)
순댓국·순두부 각 9,000원, 뼈해장국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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