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는 기절시키고 꿀벌은 환장하게 하는 오월의 신부

[주말엔 꽃] 때죽나무 꽃

5월이 접어들면서 하얀 신부들이 여기저기서 눈길을 사로잡는다. 찔레꽃이 꽃을 피웠는데, 생명력과 번식력이 워낙 강한 식물이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제주도를 상징하는 산딸나무, 넙적한 꽃잎 네 장이 십자형으로 피어난 모습에서 힘과 의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때죽나무 꽃, 연두빛으로 갈아입은 나무에 빼곡하게 꽃이 피면 벌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 때죽나무 꽃(사진=장태욱)

농장 가는 길에 마당과 울타리를 예쁜 식물로 채워놓은 집이 있다. 원래 조그만 과원이었는데, 누군가 거기에 조그만 집을 짓고 주변에 나무와 꽃을 가꾸기 시작했다. 마당 울타리에는 계절별로 어여쁜 꽃이 핀다.

그 집 앞을 지나다가 꽃에 반해 구경을 하고, 그러다 사진을 찍는다. 일하러 가다 차를 세우고 작업복 차림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면 이웃 눈에는 좋게 보일 리 없다. 그리도 꽃이 피는 건 잠깐이 일인 걸 어쩌겠나?

요즘 며칠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때죽나무 꽃이다. 가지마다 하얀 꽃을 덮어쓰면 나무는 마치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처럼 보인다.

때죽나무는 우리나라 양지바른 곳이면 어디서나 자란다. 나무는 가지가 많아 면적을 넓게 차지하는데, 다 자라면 키가 10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봄에 꽃이 화사하게 피는데, 그 모습이 아름답고 향기 또한 상큼해서 오래도록 사랑을 받았다.

때죽나무는 지름 3센티미터의 작은 꽃을 피우는데, 꽃은 땅을 향해 꽃잎을 펼친다. 양성화로 꽃잎은 5갈래로 벌어진다. 많은 꽃이 한 줄기에 피어서 마치 한 송이처럼 보인다. 꽃의 중앙에 희고 가는 암술이 아래로 뻗으면 그 주변을 노랗고 도톰한 수술이 감싼다. 꽃잎이 떨어질 때 수술도 함께 떨어지는데, 그러고 나면 씨방에 탯줄처럼 붙어 있는 암술을 확인할 수 있다.


▲ 꽃은 모두 땅을 향해서 꽃잎을 펼친다. 잎은 5장인데, 가늘고 하얀 암술을 노랗고 도툼한 수술이 감싸고 있다.(사진=장태욱)

7월이면 씨방이 자라서 열매가 되는데, 그 모양이 마치 작은 종을 닮았다, 작은 열매들이 가지마다 빼곡하게 매달린 모습 또한 볼거리다.

때죽나무라는 이름은 과거 연못에서 물고기를 잡을 때 사용되던 방식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열매를 으깨어 연못에 풀어놓으면 고기들이 떼로 죽는다고 '떼죽나무'로 불리었고, 그게 '때죽나무'로 변했다는 것. 사실 물고기는 죽은 것이 아니라 기절했다고 한다. 열매껍질에 ‘에고사포닌’이라는 성분이 있는데, 이것이 노출된 물고기들이 정신줄을 놓은 것이다.

제주도사람들은 이 나무를 ‘종낭’이라고 부른다. 열매의 모양이 종을 닮았기 때문이다. 남원읍에 과거 ‘종낭골’이라는 마을이 있었는데, 이 나무가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은 안타깝게도 제주4·3 때 소개돼서 사라지고 말았다.

때죽나무의 영어 이름이 스노벨(snow bell)이다. 눈처럼 하얀 종이라는 의미다. 때죽나무 보다는 제주도식 종낭이 서양인의 인식과 비슷하다.

때죽나무에는 실상에 유익한 성분이 많이 들어 있다. 씨에는 글리세리드와 지방유, 에고놀이 들어 있어 등유나 머릿기름으로 쓰였다. 꽃은 향수원료나 인후통 또는 치통치료약으로 쓰였다.


▲ 꽃잎이 떨어져 눈처럼 쌓였다.(사진=장태욱)

때죽나무는 사람 못지않게 꿀벌의 사랑을 받는다. 5월에 꽃이 피면 꿀과 향기를 좇아 벌이 몰려든다. 떼죽나무 꿀은 귤 꿀, 메밀 꿀과 더불어 제주도 양봉업자들이 생산하는 핵심 상품이다. 양봉업에 종사하는 지인은 이제 귤꽃이 지면, 5월 20일부터 때죽나무 꽃을 좇아 사려니로 이동할 거라고 했다. 거기엔 해변보다 꽃이 열흘 정도 늦게 핀다. 사려니에서 벌들의 잔치가 시작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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