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 엄마들이 부르면 대학이 온다

[기고] 김수종 칼럼니스트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가진 관광도시 서귀포가 침체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나는 ‘대학이 없기 때문’이라는 진단에서 출발하고 싶다.

 도시는 단순한 건물과 도로의 집합체가 아니다. 그 안에는 살아 숨 쉬는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가 있어야 한다. 젊은이들이 모여 공부하고 토론하며, 낮에는 골목을 활보하고 밤에는 작은 술집에서 웃고 떠들고, 운동장에서 포효하는 그 생기야말로 도시의 진짜 에너지다. 대학이 없는 도시는 젊은이의 흐름이 끊기고, 시간이 멈춘 듯한 공허감만 남긴다. 서귀포의 고민이 바로 여기에 있다.


▲ 제주대학교가 서귀포 글로벌 캠퍼스를 설립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사진=강은실)


 나는 제주대학교 총장 자문기구인 한림원 위원으로서 지난해 처음 ‘글로벌 서귀포 캠퍼스’ 계획을 들었을 때, 이보다 서귀포에 더 어울리는 구상은 없다고 생각했다. 제주대는 매년 약 2,000명의 신입생을 선발한다. 이들을 1학년 동안 서귀포 글로벌 캠퍼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며 인문학 등 교양교육을 강화한 뒤, 2학년부터 전공 수업을 위해 제주시 캠퍼스로 옮겨가는 방식이다. 여기에 해외 청년들이 제주에서 관광·농수산 기술을 배우도록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포함돼 있다. 제주도가 ‘국제자유도시’를 표방하며 발전해온 길을 생각하면, 서귀포에는 정말 ‘딱 맞는’ 교육기관이다.

 한림원 위원들의 의견을 빌리자면, 지금 한국의 대학들은 소멸 위기에 놓여 있다. 신규 대학 설립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서귀포 캠퍼스는 기존 제주대의 1학년 과정을 떼어내 교양교육을 강화하는 실험적 모델이다. 학사 운영에 따라 발전 가능성이 높고, 한국 대학사에서 주목할 만한 관찰대상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신입생 2,000명을 서귀포로 옮겨 교육하면 독특한 대학문화가 생기고, 새로운 대학촌이 형성된다. 특히 이 중 약 700명은 육지 출신 학생들이다. 이들은 서귀포를 제2의 고향처럼 느낄 것이고, 자녀를 찾아오는 학부모들 또한 서귀포에 머물며 지역을 경험할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서귀포에 새로운 에너지가 된다. 매년 약 700명의 서귀포 홍보대사가 자연스럽게 배출되는 셈이며, 제주도 전체로도 ‘다양성을 갖춘 도시’라는 이미지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된다.


▲ 제주대학교

 과거 선진 문물은 뉴욕에서 도쿄, 서울을 거쳐 한참 지나야 제주에 도달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는 다르다. 세계 어디에서든 좋은 것은 순식간에 전파된다. 이제는 창의력이 열쇠다. 서귀포 캠퍼스에서 젊은 프레시맨들이 뿜어낼 창의력은 서귀포뿐 아니라 제주도, 나아가 한국 전체에 신선한 에너지를 불어넣을 것이다. 마치 서귀포에서 시작된 올레길 걷기가 전국을 풍미하며 한국인의 여행 문화를 바꾼 것처럼, 글로벌 캠퍼스에서 비롯될 변화는 멀리 퍼져나갈 힘이 있다.
 세계에는 대학이 도시의 얼굴을 바꾼 수많은 사례가 있다.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캐나다 앤티고니시, 미국 애임스나 찰스턴 같은 중소도시는 대학 덕분에 활력을 되찾았다. 이들은 말한다. “도시에 생동감을 주는 것은 대학이다.”
 그러나 이 일은 대학의 의지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대학을 도와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움직여야 한다. 캠퍼스를 세우려면 정치권의 힘이 필요하다. 정치인은 표가 바로 생기는 단기 사업이나 공약에 마음이 쏠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시민의 에너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시민의식이 캠페인 수준으로 달아오르면 정치인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마침 대통령 선거가 임박했고, 내년에는 지방선거도 있다. 여론을 형성하기에 절호의 기회다.
 시민들이 해야 할 일은 멀리 있지 않다. 주변에서 캠퍼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의견을 모으며, 행정과 정치권을 향해 서귀포의 미래를 위해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지역 상인들은 젊은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고민해야 하고, 지역 단체들은 이들과 연결될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구상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아이들 교육에 관심이 많은 서귀포의 엄마들이 글로벌 캠퍼스를 지지하고 목소리를 낼 때, 그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할 것이라 믿는다.
 서귀포는 이제 묻고 있다.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글로벌 캠퍼스는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 있다. 서귀포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변화의 물결은, 제주도 전체를 바꾸는 촉매가 될 것이다.


김수종
서귀포시 안덕면 출신으로 오현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를 졸업했다. 1974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일선 기자와 데스크로 일했으며, 뉴욕특파원으로 해외 취재를 맡았다. 1998년 논설위원으로 사설과 칼럼을 썼으며, 주필을 역임하고 2005년 한국일보에서 퇴사했다. 논설위원 재직 중 한국 신문방송편집인협회 이사를 지냈고, 2002년 요하네스버그 리우+10에 NGO대표로 참가했다. 현재 칼럼 집필과 저술 활동을 하고 있으며, 『0.6도』와 『지구온난화의 부메랑』 등의 저서를 통해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 올해 3월에 제주대학교로부터 명예 언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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