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물통)에 진심인 마을 공동체에 습지를 부탁해 !

[특별기고] 람사르습지도시 지역관리위원회 전문위원 고제량

   마을주민들이 애정하는 물통

“ 느네들 물통 소지 콜콜이 안허문 또리켜이 ”
‘너희들 모두 물통 청소 깨끗이 안하면 때리겠다.’는 뜻이다. 몇 년 전 선흘1리마을 삼촌이 우리일행을 보며 하신말씀이시다. 선흘1리는 람사르습지 동백동산이 위치한 마을이다. 동백동산 주변과 마을에는 많은 습지(물통)들이 있고, 그 습지들은 대부분 마을 사람들이 사용했던 곳들이다. 그날도 마을 습지조사단 우리는 동백동산 먼물깍 생태조사를 다녀오던 길이었다. 10여년째 이어오고 있는 습지조사라 마을 어르신들은 우리들이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아신다. 그래서 삼촌은 우리에게 청소도 부탁하시는 것 같았다. 우리가 조사하는 습지들은 이미 어른들이 잘 알고 있는 습지들이고 당신들이 마을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일을 함)으로 자주 청소를 했던 곳들이라 우리에게도 당연히 청소부터 하라는 부탁이기도 하고 협박이기도 했다. 벌써 몇 년 전 기억이다.


▲ 오조리 연안습지. 이곳엔 과거 마을주민이 양식장을 만들어 운영하던 흔적이 남아있다.(사진=장태욱)


며칠 전 나는 마을 삼촌에게 또 같은 부탁을 들었다. 반못습지에서 만난 고병문(90) 삼촌이 반못이 자꾸 수위가 얕아지고 주변 나무들이 너무 자라서 예전 습지 같지 않다며 정비와 청소를 부탁했다. 병문이 삼촌은 청년 시절 소를 몰고 반못으로 가서 물을 먹이던 시절 이야기와 반못에 살던 선애라는 물고기가 약으로 쓰이던 이야기도 이어가셨다. 마꾸라지 비슷하고 미꾸라지보다는 크고 통통한 물고기가 반못에 살았었는데 선애라고 이름했단다. 몸에 궂은 허물(피부병)이 나면 선애 피를 바르면 깨끗이 나았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반못은 비교적 넓은 물통이었고 여러 개로 나뉘어져 있어 먹는 물과 목욕하는 물, 소와 말에게 먹이던 물로 구분했었다고 기억을 떠올리셨다. 습지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신 마음이 전해져왔다..

  습지의 공간과 문화를 공유한 주민들이 습지 보전에 진심


이렇게 마을주민들의 기억에 있는 물통이 지금 우리가 보전하고자 애쓰는 습지이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그분들의 마음에는 흡족하지 못한 것 같다. 그분들은 정말 물통 보전에 진심이었다는 걸 위 두 삼촌의 부탁인지 협박인지 모를 말에 충분히 녹아 있다. 물이 귀한 화산섬에서 물이 고이는 곳이면 어디든 사람들이 돌을 둘러쌓고 물을 보호하며 생활에 이용하였다. 얼마나 귀한 장소였을까? 없이는 살 수 없는 물, 그 물을 저장해주는 물통,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전체가 협동으로 청소하며 관리했을법하다. 그리 오래전 이야기가 아니다. 50여년 전만해도 선흘1리 마을주민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물통 청소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1971년 초에 마을에 공동수도 4개가 설치되면서 더 이상 동백동산 물통에 물을 길러 가지는 않았으나 그 후로도 소 말을 먹이는데 활용되었고, 지금도 목장에는 소나 말들이 습지 물을 먹기도 하고 농장 주변에 습지는 농작물을 키우는데 활용되기도 한다.


▲ 하논분화구. 수성화산활동의 결과 만들어진 거대한 미르형 분화구다. 이곳에서 연중 지하수가 솟아나는데, 이 물을 이용해 조선시대에는 제주도에서 드물게 논농사가 행해졌다.(사진=장태욱)

예전 제주지역 사람들에겐 물통(습지)은 삶의 기반이었다. 절실한 관계이다. 그래서 어른들은 진심으로 습지를 청소해달라고 하는 것이다. 어쩌면 습지 보전의 중요한 키는 ‘습지와 우리가 어떻게 절실함을 회복할 것이냐?’ 일 것이다. 생활과 멀어지면서, 나와는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여기면서 관계의 절실함은 희미해졌을 것이다. 이제 지역 주민들의 습지(물통)에 대한 기억과 문화를 통해 습지와의 절실한 관계를 회복하는 습지 보전 정책을 발굴해야할 때이다. 선흘삼촌들에게서 배어나오는 그 습지(물통)과의 절실함 말이다.

제주 습지


제주는 화산섬이다. 180만년전부터 약 5천년 전까지 수 없는 화산활동에 의하여 섬이 하나 우뚝 쌓였다. 초기에는 수성화산활동에 의하여 가늘고 세밀한 화산재가 쌓이기 시작했고, 중기 이후에는 육상 화산활동으로 까만 현무암에서부터 화산 송이(스코리아)까지 다양한 화산쇄설물로 다채로운 제주 자연환경이 형성되었다. 한라산, 오름, 곶자왈, 습지, 용암동굴, 해변, 하천, 뱅듸 등으로 제주 자연생태를 구분하여 그 특성과 가치들을 살펴보면 한반도와는 많이 다르다. 화산활동으로 이루어진 지질적 특성에 생물들이 바람과 더불어 정착한 모습은 기기묘묘하다. 그 기기묘묘한 가치들은 유네스코가 인증한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세계자연유산(2007년), 세계지질공원(2010년), 람사르협약이 인증한 람사르습지 5곳과 람사르습지도시가 2개 지역으로 인증되게 했다. 이 정도면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보편 탁월한 가치를 가졌다고 누구나 인정하지 않을까? 이름부터 특별한 제주 생태계는 작지만 신비롭다. 오름은 제주도 전반에 걸쳐 올록볼록 형성된 화산체를 이루며 타지역에서는 동산이라고 표현함직한 곳이다. 곶자왈이란 용암이 흐르며 굳어 깨진 돌무더기 위에 형성된 숲과 주변의 가시덤불과 초지대, 억새로 어지러운 지질지대를 말한다. 뱅듸란 너른 들판을 의미하는 제주 말이다.


제주 자연생태적 구분에서 습지는 화산활동의 흔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람사르협약에 등재된 5곳의 람사르습지 형성 특징을 살펴보면 오름 분화구에 습지가 형성된다거나 점도가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이 흐른 들판에 용암 판이 물그릇 역할을 하며 습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리고 용암이 굳어 깨진 돌무더기 위에 형성된 곶자왈에도 점도가 낮은 파호이호이 용암이 흐른 곳에는 용암판이 곶자왈의 기저에 깔리면서 습지를 만들었다. 공식화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오름습지, 곶자왈습지, 뱅듸습지라고 제주만의 습지를 달리 이름 지어주고 싶다. 제주특별자치도 공식 관리 습지 리스트 중 총322개의 내륙습지는 한라산 정상에 백록담이라는 습지로 시작하여 한라산 중턱에 오름습지들과 중산간 들판에 형성된 뱅듸 습지, 곶자왈 숲에 형성된 곶자왈 습지등을 포함하고, 연안습지는 약21개소의 해변에 형성된다. 이런 내륙습지와 연안습지가 발달한 덕분에 제주에는 지하수가 많이 함양되고 있다. 생수 중에 최고라는 삼다수가 전국에 시판되면서 국민 다수가 제주의 물을 마시고 있다. 제주 습지의 공급서비스를 전 국민이 누리고 있는 것이다. 제주 습지 보전을 걱정하는 사람으로서는 섬의 물이 대륙에 팔리는 것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섬은 물이 생명인데 지하수 저장량보다 뽑아 올리는 양이 더 많아 지하수 수위가 낮아지고 있다는 진단은 오래전부터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다.

제주도에는 내륙습지 322개 연안습지 21개 뿐일까?

제주특별자치도는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5개의 습지 외에 322개의 내륙습지와 21개의 연안습지를 공식 제주습지리스트로 보전관리하고 있으나, 보호지역이 아니면 법적 규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습지 숫자 역시 10년전 조사기록이고 아마도 많이 매립되고 사라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 숫자에 기록되지 않은 습지도 많다. 현 시점에서 다시 조사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중산간마을인 의귀리 사람들은 과거 하천에 고인 물을 생활용수로 사용했다. 최근 주민들은 생태계서비스 직불제 사업에 참여해 하천 물웅덩이를 가꾸는 일을 한다.(사진=장태욱)

21개의 제주도 연안습지 리스트 중 현재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아직 없다. 그 중 철새들이 중요한 서식처인 하도리~종달리~오조리~성산읍으로 이어지는 곳은 수차례 연안습지보호지역 지정을 시도했으나 무산되기도 했다. 2021년 오조리 마을회가 해양수산부 담당자, 지역 환경단체와 오조리 철새도래지 보전방안에 대해 토론회를 열기도 하면서 다시 오조리를 중심으로 성산, 고성, 종달리 연안습지보호지역 지정 노력이 진행되고있다.
이때 우리가 명심하고 추진해야할 일이 주민참여 습지 보전의 기회 마련과 혜택을 지역 공동체에 갈 수 있도록 정책을 발굴해야할 때이다.

  다시 습지와 절실한 관계 회복을 위해 주민참여 정책과 협력방안을 발굴해야

한때는 직접적인 먹는 물과 생활용수이기 때문에 지역 공동체가 습지보전에 노력을 보이던 역사가 있기도 했고, 목축문화가 큰 지역의 특성상 곳곳에 형성된 습지를 슬기롭게 활용하면서 마을 전체가 관리를 하기도 했었다.
2011년 3월 동백동산습지가 람사르습지로 등재되면서 환경부 국립습지센터 정책인 ‘습지보호지역 주민역량강화사업’으로 인하여 제주도에서는 동백동산습지 주변 선흘1리 마을에서부터 마을 공동체의 습지 보전 활동이 시작되었다. 주민 스스로 습지를 모니터링하고 생태계 조사를 통해 변화를 기록해 나가는가 하면, 생태관광이나 생태교육 또는 체험을 통해 문화서비스를 발굴하여 주민참여 보전과 현명한 이용을 실천해 왔다. 비슷한 시기에 물영아리오름 습지가 있는 수망리도 같은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 제주도에서는 두 지역 습지가 지역 공동체에 의하여 보전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민 소득으로 이어지는 현명한 이용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로 제주시 조천읍이 2018년 6월 두바이에서 열린 제13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되었으며, 서귀포시 남원읍이 2022년 11월 제14차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람사르습지도시로 인증되었다.
람사르습지도시란 람사르습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주민참여를 통해 습지를 보전하고 현명하게 활용하는 도시에 협약이 인증하는 제도로 2018년 첫 7개국 18개 도시가 인증되었고, 올해 14차 총회에서 추가 인증되어 현재 18개국 43개 도시가 람사르습지도시가 되었다. 이 도시들은 주민 주도로 습지 교육과 교류를 통해 국가경계를 넘어서서 협력을 통해 습지를 보전해 나갈 것이다.


물영아리습지, 동백동산습지와 주변 공동체는 과거에 생활과 밀접하게 습지를 활용하여 생활을 이어왔었고, 현재는 휴양과 치유, 생태관광, 생태교육 등 문화서비스를 통해 보전에 참여하고 현명한 이용으로 지역 경제 향상과 공동체 활성화를 이루어 가고 있다. 또한 다양한 생태관광 프로그램과 생태교육을 준비하여 대안 관광과 생태교육을 이루어 가는 한편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 선생님이 되기도 하고 해설가가 되어 습지 보전을 생활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례들이 습지와 멀어졌던 관계를 다시 절실한 관계로 이어놓는 계기가 될수 있다고 본다. 법적 규제를 통한 보전만은 개인의 피해를 동반하며 보전에 있어 주민들의 반발을 많이 받았다. 이제 주민이 참여를 통한 습지와 지역 공동체가 선순환 고리로 엮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발굴해야할 때다.


그 정책의 하나로 람사르습지도시라는 람사르협약의 정책은 긍정적 효과를 내고 있다. 자본의 사회에서 이해관계가 얽히고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지역 공동체를 습지 보전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 만만치 않은 일이나 다수가 민주적 의사결정을 통해 논의가 자주 이루어진다면 안 될 일도 아니다. 물론 정보가 정확히 전달되고 공정한 의사결정의 과정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람사르습지도시 정책이 만들어지는데 참여한 한사람으로서 그동안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상처도 많지만 보람도 많아 앞으로도 꿋꿋한 뚝심으로 잘 참여해볼 생각이다.


또 주민참여 습지 보전에 중요한 정책 하나를 찾으면 제주형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정책 또한 주민참여 습지보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현재 제주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덕천리는 공동목장에 있는 습지를 주민 스스로 습지 생물다양성을 복원하며 다양한 문화서비스를 만들어나가려 하고 있다.


▲ 순천만습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습지인데, 순천은 습지를 복원하고 보전해 대한민국 생태수도가 됐다.(사진=장태욱)


람사르습지도시나 습지보호지역 주민역량강화사업, 생태계서비스지불제, 생태관광지역지정과 같이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 목적에 맞게 운영되도록 노력과 함께 세대별, 역량별, 지역별 다양한 방법으로 지역 주민이 습지보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방안을 더 많이 찾아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지역주민들이 이미 경험한 습지와의 절실한 관계를 회복시키고 습지와 인간이 함께 살아갈 미래를 이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시민과학의 시대이다. 행정과 전문가만이 아니라 시민과 지역주민들의 협력으로 습지를 조사해내고 기록하고 보전의 기회를 만들가야할 때다. 물론 주민참여를 위해서는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이 중요하기 때문에 행정과 전문 중간지원조직의 협력 구조 또한 잊지말아야할 중요한 과제이다.

습지와 절실한 관계회복의 시간


제주의 습지는 작고 앙증맞다. 한반도의 넓고 깊은 습지에 비하면 소규모로 볼품없어 보일지 몰라도 화산섬의 특별한 습지로서 다양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섬사람들의 생명수였던 물통에서부터 용천수, 지하수까지 다양한 물 이용 역사와 마을마다 문화적 기억과 흔적이 있는 한 미래까지 돈독한 습지와의 인연을 이으며 물과 공동체의 공존을 약속할 수 있을 것 같다.


▲ 우포늪.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내륙습지인데,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계의 보고로 그 가치를 인정받는다.(사진=장태욱)


2023년 습지의 날 슬로건은 ‘지금은 습지를 복원할 시간’이다. 더이상 습지 훼손을 막고 그동안 훼손된 습지를 복원시켜야 할 시간이다. 더 늦기 전에 말이다. 1970년대 이후 지구 습지 35% 이상이 소실되었다고 한다. 개발과 도시팽창 그리고 기후위기로 육화 속도가 빨라져 많은 내륙습지와 연안습지들이 사라지고 있다. 이제 회복의 시간이다. 지구 면적의 6%가 습지이고 지구 생명 40% 이상이 그 습지에 기대어 살고 있다. 우리 인간 역시 습지에서 물과 식량을 얻고, 습지가 조절해주는 안전한 환경에 살고 있으며, 수많은 생물다양성 안에서 문화적 서비스를 받으며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습지와 우리는 생명이 연결되어 있다.


여러 번 반복되는 문장이지만, 이제 훼손의 행동을 멈추고 습지의 회복탄력성을 지키고 습지와 절실한 관계 회복을 이뤄가야 할 시간이다. 그것을 가장 잘 해낼 수 있는 주체가 주민이다.

(위 원고는 2024년 2월2일 세계습지의 날을 기념하여 정리한 글이며 2023, 제주환경운동연합, <제주의 환경을 말한다>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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