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순동 구머흘화전 주민들 5년 새 사라진 이유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58) 도순동 화전민(2)

1914년 4월 지적원도에는 도순동에 200호의 집이 있었다. 이 중 구머흘과 왕하리 화전은 도순동 전체 6.5%에 해당하는 13세대가 살았다. 화전은 고지천이라 잘못 알려진 ‘법정이내’를 중심으로 도순목장 ‘동케’와 ‘서케’ 국림담의 위와 아래에 있었다.

구머흘은 법정사 항일유적지 동쪽 3시 방향 400m~600m 사이, 도순동 산 1번지 내 1365, 1360, 1361, 1358번지 일원에 살던 화전촌이다. 국림담 북쪽 도순동 1357∼1367번지에 해당하는데 지금도 다섯 군데에서 옛 집터 돌담 흔적이 확인된다.


▲ 1913년 토지측량 사업을 알리는 기사(매일신보, 1913년 5월 10일자)

이에 대해 하원동 김○진, 강○흥 및 도순동 김○관은 동일한 지명과 위치에 대하여 구술했다. 실제 구머흘화전 집터와 번지가 좌표 상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으나 수십 미터 거리이고 대나무, 통시 추정지, 그릇 조각 등이 확인되고 있다.

1914년 지적원도의 등기 지번이 「1918년 조선오만분일지형도」에선 화전 집터 표시가 안 보인다. 1913년 9월 11일 자 「매일신보」 기사에 “제주의 토지측량 사업을 실시한 해이다.”란 문구가 있다. 그런데 당시 지번을 부여받았던 구머흘 거주 화전민들이 1918년 지도에 보이지 않는다. 이들은 1914~1918년 사이 어디론가 이주했음을 알 수 있다.

1918년 음력 9월 3일(양력10월 7일) 법정사 무장항일운동이 일어났고 같은 해 12월 말에 위 지도가 발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법정사 무장항일운동의 여파로 구머흘화전 사람들은 법정사무장항일운동에 참여했다가 일경(日警)의 간섭에 의해 이주했거나 화전촌이 불에 탔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1014년에 토지조사 사업이 완료된 이후 어느 시기엔가 영남동 등 ‘서치모르'로 이주했을 가능성도 있다. 영남동 판관화전 김항률 등이 1914 ∼ 1918년 기간에 서치모르로 이주한 것과 비슷한 사례다.

구머흘화전촌에서 화전민들이 자발적으로 이주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토지조사사업 이후 세금 부담이 가중됐거나, 1911년의 산림령(山林令)으로 인해 화전 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내몰렸을 수도 있다. 또는, 법정사와 불과 400m ∼ 600m거리에서 발생한 법정사무장항일운동의 영향을 받아 불에 탔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머흘화전촌과 법정사와의 거리를 감안하면 상호 왕래는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구머흘에 남아있는 화전민의 흔적(사진=한상봉)

조선총독부는 1911년 6월 20일, 제령 제10호로 「삼림령」을 공포하고 대한제국 시기에 공포된 「삼림법」을 폐지하였다. 김정아의 「일제강점기(1916∼1937)의 화전민 문제와 조선총독부의 산농 지도 정책」을 보면 산림령과 관련해 요약된 내용이 나온다.


制令(제령) 第 30號 「森林令」(산림령), 朝鮮總督府官報(조선총독부), 1911년 6월 20일, 타인의 삼림에 방화하는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함, 삼림에 방화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원 이하의 벌금, 타인의 삼림을 燒燬(소훼:불태우다)하면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함

산림령은 속칭 ‘산을 뜯어 먹고사는’ 화전민의 분노로 이어졌을 것이고, 항일운동에 참여할 동기부여가 될 사안으로는 충분했을 것이다. 이러함에도 구머흘 화전민들이 항일운동에 참여한 사실은 확인이 안 되고 있다.

지번 상 대지(垈地)로 확인되는 곳은 도순동 1357번지 김 씨, 1359 강 씨 그리고 1361, 1362, 1364번지 등을 포함해 5가구다. 다섯 채의 집이면 적어도 15명∼20여 명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중 ‘억보터’란 곳에 대나무가 남아있다. ‘억보’는 별명으로 얼굴에 털이 많았던 사람이라 도순동 마을 어른들의 구술에서 확인된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 「남원읍 화전민 이야기」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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