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거사의 행동대장 화전민 형제, 대가는 혹독했다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59) 도순동 화전민(3)

도순동 동케 600 ∼ 610m 고지 능선을 따라 국림담이 있는데, 그 주변에 또 다른 화전촌이 있었다. 왕하리화전이다. 왕하리화전은 법정사무장항일운동 발상지와 영남동 ‘서치모르’ 중간에 있었으며, 국림담 아래위로 그 터가 남아있다. 이 화전지의 동쪽 궁상천의 상류 지역을 ‘왕하리내’(『한라산의 지명 : 2022』)라 부르는데, 그 이름이 왕화리화전에서 따온 것이다.


▲ 1918년 10월 7일 새벽 법정사항일운동에 참여했던 주민들이 거사를 위해 걸었던 산길(사진=장태욱)

1918년 법정사무장항일운동이 일어나자 선두에서 항일운동에 참여한 문 씨 형제가 왕하리화전에 살았다. 문남은은 도순동 1339번지에 거주하며 1337, 1338번지에 밭을 소유했고, 문남규는 도순동 1340번지에 살며 1341번지 밭을 소유했다. 1918년 당시, 문남규는 당시 49세였고 문남은은 44세였였다.

1918년 10월 7일, 거사에 참여한 승려와 주민은 새벽에 법정사를 출발해 왕하리 문 씨 형제 집터와 이 씨 집터 → 코뻬기화전 → 서치모르인 영남동 → 서호동·호근동 → 강정동 → 도순동 → 하원 동→ 중문동으로 이동했다.


▲ 거사가 실패로 돌아가고 불에 타버린 법정사의 터(사진=장태욱)

현재 도순동 목장 중원이케 끝자락에 문남은, 문남규가 살았던 집터가 있었다. 그런데 1933년 전라남도 산업과 훈령에 따라 국림담이 만들어질 때, 인부들이 집터 돌담을 가져다 사용하는 바람에 집터는 흔적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로 본다면 문 씨 형제는 국림담을 쌓던 시기에 강제적으로 또는 1933년 이전에 영남동으로 이주했음을 알 수 있다.

제주불교사회연구소가 펴낸 『불교계의 3.1운동과 항일운동 자료집4』에 따르면, 문남은, 문남규 형제는 감산리에 살다가 왕하리화전으로 이주했다. 그 집안 후손들은 도순동으로 이주했다.

문 씨 형제가 자리했던 집터는 북쪽에 언덕이, 서쪽에 암반이 길게 분포한다. 북서풍을 막기에 유리한 지형이다. 국림담이 만들어진 남쪽에 산전이 있는데 속칭 ‘선도체비밭’(도순동 산 2번지 일원)이라 불리는 지역이다.

문남은와 문남규는 무장항일운동에서 행동대장을 맡아 일본인 고이즈미 키미오를 쿠타했다. 거사는 진압됐고, 형제는 각각 3년형과 1년형을 선고받아 투옥됐다. 문남은이 살았던 집터자리는 현재 철탑이 들어서있다.

도순동 1355번지엔 이종○이 살았는데, 1356번지 밭을 소유했고, 1354번지엔 이종관이 살며 1353번지 밭을 소유했다. 국림담 아래 1352번지에는 이종화가 살면서 1351번지 땅을 소유했다. 거주인 이종○, 이종화, 이종관, 이종창은 형제다. 1350번지에는 나재추가 살며 1349번지 밭을 소유했다. 조금 아래 1347번지엔 항일애국지사 이종창이 살며 1348번지의 밭을 소유했다. 이종창은 검찰에 송치돼 재판을 받고 징역 1년 형을 받았다. 지금은 이곳이 훼철되어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 법정사항일운동에 참여했다가 재판에서 유죄형을 확정받은 66명 가운데 왕하리화전 주민이 있다.(사진=장태욱)

1914년도 지적원도에는 강대홍이 1346번지 밭을 소유한 사실이 확인된다. 강대홍은 거주하는 집터가 없어 토지조사사업에 땅만 등기하고 타지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순동 이○○을 통해 집안의 족보를 확인했다. 부친 이○효 → 조부 이종성 → 증조부 이군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증조부 이군식은 종관, 종창, 종성을 낳았다. 차남이 애국지사 이종창(1880~1966)이다. 이종창은 선봉좌익장(先鋒左翊將)을 맡아 거사에서 선봉에 섰다. 이종관은 사계리로 이주했고, 종창과 이종성은 해방 전까지 왕하리에 거주하다 도순리로 이주했다. 이종성은 담배집하르방으로 불린 사람이다.

후손의 구술에 의하면 선조는 본래 경기도로 이후 충정도, 전라도 절이도(고흥군 거금도 추정)를 거쳐 제주에 입도를 했다. 구술자의 6대조가 제주도로 이주했는데, 모친이 삼 남매를 데리고 입도했다고 전했다. 모친은 다시 육지로 가버리고 아들들이 남아 제주에 정착을 하게 되며 제주시에 거주를 하다 도순동 왕하리로 이주를 했다고 한다. 입도한 이 씨 일파 중 한 사람이 이승택 전 도지사(1971 ∼ 1976 재임)이다. 이 씨 집안의 입도조는 이윤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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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 「남원읍 화전민 이야기」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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