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 폭발하고 독방에 갇혀서도 끊이지 않는 불안과 망상
[리뷰] 루신의 「광인일기』
윤석열이 12월 3일에 발표한 비상계엄은 피해망상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행위였다. 그는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다.”라거나,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망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라니, 상식을 가진 사람은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사고를 드러냈다. 일국의 대통령이 피해망상에 빠져 나라를 수렁으로 몰고 갔으니, 자신은 물론 사회의 운명도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그의 과대망상을 보면 떠올린 작품이 있다. 「광인일기』, 1918년 루신이 중국의 사회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과대망상 환자의 시각으로 쓴 짧은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피해망상에 사로잡혀 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힌다.
작품은 짧은 서문과 본문인 13절의 일기로 구성된 일인칭 소설이다. 서문은 화자인 ‘나(余)’가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는 ‘광인’이 쓴 일기를 입수한 경위를 밝힌 내용이다.
이후 13절의 일기는 피해망상증 환자로서 ‘광인’인 ‘나(我)’가 겪은 일과 내면의 사유를 서술하는 내용이다.
‘광인’인 ‘나(我)’는 늘 불안에 시달린다. 주변의 많은 사람을 먹어치우는 자들로 여긴다. 타인의 말 한 마디는 물론 웃음까지도 광인에게는 사람을 잡아먹기 위한 계책으로 들린다.
‘생각만 해도 나는 머리 꼭대기에서 발끝까지 오싹해진다. 놈들은 사람을 먹어치운다. 그러고 보면 나를 먹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그렇다. 그 여자가 “네놈을 물어 뜯겠다.”라고 말한 것과 퍼런 얼굴에 이빨을 드러낸 녀석들이 웃은 것과 얼마 전 그 소작인이 지껄인 것은 틀림없이 암호인 것이다. 알았다. 놈들이 하는 말은 전부다 독이다. 웃음 속에 칼이 있다. 놈들의 이빨은 모두 희고 번쩍번쩍한다. 그것이 사람을 먹는 연장인 것이다.’ 제 3절 일부
그의 정신세계는 보통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공기에 놓여 있다. 주변 사람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피해망상적 강박증이 그의 정신을 지배한다.
‘옛날부터 줄곧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걸 난 알고 있었지만 그리 확실하지 않다. 나는 역사를 들추어 조사해보았다. 이 역사에는 연대가 없고, 어느 면에나 ‘인의도덕’ 같은 글자들이 꾸불꾸불 적혀 있다. 나는 이왕 못 자게 되었으므로 밤중까지 열심히 조사해보았다. 그러자 글자와 글자 사이에서 겨우 그 글자를 찾아냈다. 책에는 온통 ‘식인(食人)’이란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 제 3절 일부
‘인의도덕’으로 가득 찬 ‘역사’를 뒤져 ‘식인’이라는 두 글자를 발견한 광인, 이로 인해 병증이 더욱 악화한다. 자기를 진료하러 온 ‘허(何) 선생’은 물론이고 선생을 모셔온 자기 형도 의심한다. 의심은 이웃집 개에게까지 이른다.
‘하이에나라는 동물이 있는데, 눈이나 몸 생김새가 추악하기 짝이 없다고 한다. 그리고 언제나 죽은 고기만 먹고, 아무리 굵은 뼈라도 아작아작 깨물어 삼켜 버린다고 한다. (중략) 하이에나는 늑대 족속이고, 늑대는 개의 조상이다. 요 먼저 자오의 집 개가 유심히 나를 노려본 것도 그놈 역시 한패로서 연락이 닿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제 7절 일부
광인은 자신도 잡아먹힐지도 모른다는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광기를 폭발시키고 만다. 형에게 마음을 바꿔먹고, 자신을 잡아먹을 일에 끼지 말라고 제안한다.
‘놈들이 나를 먹으려고 합니다. 그거야 형님 혼자서 어떻게 해볼 수 없겠지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패에 끼어들 건 없지 않습니까? 사람을 먹는 자들이 무슨 짓을 못하겠습니까? 나를 잡아먹은 다음 형님도 잡아먹을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패끼리 잡아먹을 겁니다. 다만 한 발만 방향을 바꿔서 지금 마음을 고치기만 하면 모두가 태평하게 됩니다.’ - 제 10절 일부
광인의 이러한 외침에 형은 노발대발 화를 냈다. 광인의 행동은 주변 사람들에게 ‘ 미치광이’의 증세로 받아들여졌다. 광인은 결국 방에 감금된다. 어두운 밤에서 해도 보이지 않고, 문도 열리지 않았다. 그 속에서 광인은 어려서 세상을 뜬 여동생을 떠올리며, 형이 동생을 잡아먹었다고 상상했다. 그런데 형이 먹은 여동생의 고기를 자신도 먹었을 것이라는 상상에 이르렀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이동생의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지금은 내가 먹힐 차례가 되었는가? 4천 년이나 사람을 먹어온 역사를 가진 우리, 처음엔 몰랐으나 이제는 알았다. 참다운 인간은 보기 어렵구나.’ - 제 12절 일부
광인은 자신이 식인의 풍습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망상이 진행되자 자신이 그 식인 풍습에 동참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면서, 참다운 인간을 찾기 어렵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결론은 ‘사람을 먹은 일이 없는 아이들이 아직 남아 있을 것이라며, 아이들을 구하라고 외친다.
루쉰은 당시 유교 원리에 꽉 막혀 희망이 차단된 중국사회를 비판파기 위해 「광인일기」를 썼다. 식인사회는 물론 허구적인 것이나, 루신은 중국사회에서 사람이 제대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광인의 시각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루신의 주제의식과 무관하게 작품을 읽으면서 광인이 보여준 피해망상증은 윤석열의 행동과 너무나 닮았다.
주인공은 늘 불안에 시달리고 급기야는 자신의 형까지 의심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자신의 피해망상을 마음에 담아두지 못하고 밖으로 발설하는 순간, 주인공은 독방에 갇히는 신세가 됐다. 소설의 주인공이 그런 것처럼 윤석열도 지금 용산의 관저에 갇힌 신세가 됐다. 물론 거기서도 피해망상은 계속된다. 마치 루신이 100년 후 한국에서 벌어질 일을 예상이라 한 것처럼 오버랩의 연속이다.
용산에서의 피해망상은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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