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별들을 지키는 호밀밭의 파수꾼


서귀포시 동홍동에 가정을 대신해 여성 청소년을 돌보는 중장기 여성청소년 쉼터가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정이 돌보지 못하는 청소년들은 이곳에서 선생님들의 돌봄 아래 생활을 합니다. 쉼터가 있기에 아이들은 범죄에서 벗어나 편히 먹고 잘 수 있습니다. 쉼터는 청소년을 돌보는 일 외에도 건강을 지키고 성인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지원도 합니다. 필자는 그동안 쉼터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는데, 그간의 생각을 원고로 정리했습니다. -필자 주

“아무튼 나는 꼬마들이 넓은 들판에서 뛰어노는 모습들을 상상하곤 해. 수천 명 꼬마들이 있고, 큰 사람은 주변에 없어. 나를 제외하곤 주변에 없다는 말이지. 나는 몇몇 가파른 낭떠러지의 가장자리에 서 있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은 절벽 너머를 향해 뛰기 시작할 때 그들을 붙잡아야해. 그들이 달리면서 그들이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못 봤다면 내가 어디에선가 나타나 그들을 붙잡아야 한다는 의미야. 그게 내가 하루 종일 하려는 일의 전부지. 나는 단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는 거지.”

J.D. 샐린저의 장편소설『호밀밭의 파수꾼』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서귀포시 여성중장기쉼터 운영회의에 올 때마다 소설의 이 대목을 떠올리곤 합니다.


소설은 주인공 홀든 콜필드(Holden Caulfield)가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며칠간의 일들을 내용으로 합니다.

홀든의 부모는 모두 과묵하고 과민한 분들입니다. 형은 헐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영화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형은 홀든과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콜에게 남동생 앨리(Allie)가 있었는데, 이미 죽고 세상에 없습니다. 홀든은 죽은 앨리를 사랑하고 늘 그리워합니다. 그리고 예쁘고 총명한 여동생 피비(Phoebe)가 있는데, 홀든은 피비를 무척 사랑합니다. 피비는 홀든이 집에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가족입니다.

홀든은 명문고라고 자랑하는 팬시고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도무지 적응을 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과목에서 낙제점을 받고 퇴학당했는데, 학교에서 나오는 날 룸메이트에게 두들겨 맞기까지 했습니다.

학교를 나오니 집에 들어가는 게 꺼려집니다. 갈 곳도 연락할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호텔과 클럽을 전전했지만, 학교에서 쫓겨난 청소년을 이해하거나 반기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홀든은 자신을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귀머거리 행세를 하며 살 결심을 합니다. 황량한 뉴욕을 떠나 서부로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고, 부모님 몰래 집에 들어가 여동생 피비를 만나고 자신의 소망을 얘기합니다.

그는 뉴욕을 떠나기 전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피비의 학교를 찾았는데, 동생은 오빠와 함께 떠나겠다며 가방까지 챙겨 나왔습니다. 홀든은 동생의 고집을 꺾지 못했고, 두 사람은 결국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 소개한 대목은 주인공 홀든이 동생에게 소망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아이들이 마음껏 뛰노는 호밀밭에서 이들이 안전하게 놀 수 있도록 지켜주는 파수꾼 일을 하고 싶은 게 홀든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억압됐던 경험을 통해 다른 아이들이라도 마음껏 뛰어놀 수 있게 지켜주고 싶다는 소망을 밝히는 대목이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낙오돼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자신의 손을 아무도 잡아주지 않는 현실에 대한 쓸쓸함을 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 서귀포시 중장기 여성청소년 쉼터(사진=장태욱)

작가 임철우는 소설 『그섬에 가고 싶다』에서 ‘모든 인간은 별’이라고 했습니다. 작가는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별 하나가 떨어지면, 그건 어디선가 예쁜 아이 하나가 태어났다는 표시란다. 왜냐하면, 별들은 땅 위에 내려와서 아이가 되기 때문이지.”

쉼터에 오는 청소년들도 세상이 태어날 때 모두 별이었습니다. 꿈 많은 별들이 지금 떨어질 자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 쉼터는 아직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 ‘꿈 많은 별들’을 지켜주는 ‘호밀밭의 파수군’과도 같습니다. 서귀포시에 이런 파수꾼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청소년들이 이곳에 머무는 동안 용기를 얻고 꿈과 희망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얻은 소중한 경험으로, 자신도 훗날 누군가에게 파수꾼이 되길 바랍니다.

※원고는 쉼터 사업보고서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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