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증에 낙오자 속출해도 티베트 심장 포탈라 궁엔 인파 넘쳤다

[2024 티베트 여행기 ③] 포탈라 궁, 세라 사원, 노블링카 여름궁전

라싸에 도착한 날 가이드 박 선생이 신신당부를 했다. 고산에 적응하기 위해서 며칠 동안은 불편해도 샤워를 하지 말라고. 말 안 듣고 답답하다고 샤워했다 고산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 여럿 봤다며. 다행히 한국의 여름처럼 습하지 않고 건조하며 일교차가 있는 날씨였기에 모두들 떡 진 머리로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 포탈라 궁을 관람하는 사람들. 포탈라 궁은 달라이라마가 기거하던 곳으로, 티베트의 정신적 구심이었다.(사진=유효숙) 

이번 여행은 인솔자 포함 16명이 함께 움직였는데 제일 연장자는 70대 초반, 가장 어린 사람은 부모님과 함께 온 20대의 딸이었다. 은퇴한 50대, 60대들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고산증 약 다이아막스를 하루 두 번, 반 알 씩 모두들 복용했지만, 우려했던 데로 라싸 도착 2일차인 8월 5일 아침이 오자, 여기저기에서 고산증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개개인의 증상이 다 달랐다. 감기 몸살을 앓는 것 같다는 사람, 두통이 심한 사람, 팔, 다리가 저릿저릿 하다는 사람 등등... 나에게는 고산 증세가 심하지 않았던 반면, 친구는 라싸에 도착하자 고산 증상을 심하게 겪었다. 머리도 아프고 손, 발도 저릿저릿 하다 했다.

여행 3일차인 오늘은 달라이 라마가 기거했던 포탈라 궁을 관람하는 날이었는데, 가파른 언덕을 걸어올라 수많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고 했다. 일행 중 고산증 증상이 심한 다섯 명이 포탈라 궁 관람을 포기했는데 그 중에는 고산증으로 컨디션이 떨어지고 무릎이 아픈 내 친구도 있었다. 라싸까지 와서 포탈라 궁을 못 보고 가다니... "사진 많이 찍어 올게!"하고 손을 흔들며 떠났지만, 포탈라 궁을 향해 오르는 내내 친구에게 계속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지난 여행에서 생긴 무릎 염증으로 아직도 힘들어 하는 친구에게 “내년에는 더 힘들고, 후년에는 더 힘들어 질 거야. 지금 못 가면 영영 못 갈지도 몰라.”라고 하며 이 험난한 여행을 같이 가자고 했으니...


▲포탈라궁은 백궁과 홍궁으로 구분되는데, 백궁은 정치를 관장하고 홍궁은 종교를 관장하던 구역이다.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사진=유효숙)

포탈라 궁을 오르는 길은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야 해서 헉헉거리며 힘들게 올라가야 했다. 가이드 박 선생은 “중간에 한번 쉬려 앉으면 못 일어나십니다. 그러니 쉬지 말고 죽 올라가세요.” 라고 했지만 모두들 힘들어 하며 슬쩍슬쩍 돌계단에 엉덩이를 붙이고 생수를 마시며 중간 중간 쉬지 않을 수 없었다. 포탈라 궁으로 향하는 길에는 포탈라 궁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살던 마을이 있었다. 화폐를 제조하던 곳, 음식 저장고로 사용되었던 곳, 연료로 사용하는 말린 야크 똥 쭤를 보관하는 곳 등을 구경하니 꽃들이 잘 가꾸어진 정원들이 나왔다.

티베트에서 포탈라 궁이 가진 상징성은 엄청난 듯하다. 종교, 정치의 중심지인 포탈라 궁은 티베트어로 ‘깨끗한 땅’이라는 뜻이라 한다. 성지라는 의미이다. 포탈라 궁은 티베트를 통일한 송첸 캄포가 7C 중국의 문성공주와 네팔의 브리쿠티 공주를 아내로 맞으면서 건립하였다 한다. 몽골의 침입으로 파괴되었다 5대 달라이 라마 시절인 17C 재건축되어 오늘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나무와 돌로만 이루어진 건축물이고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 포탈라 궁에서 바라본 라싸 시내. 한족이 들어와 정착하면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이런 개발 과정을 겪으며 원래 거주하던 테베트 사람들은 외곽지로 밀려난다.(사진=유효숙)

포탈라 궁은 정치를 담당했던 백궁과 종교를 담당했던 홍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3층 건물의 하단부가 백궁, 상층부가 홍궁인 특이한 구조이다. 홍궁만 관광객들에게 관람이 허용된다. 포탈라 궁은 14대 달라이 라마 텐진 가쵸가 다람살라로 망명하기 전까지 살았던 겨울 궁전이며, 불당, 거실, 침실, 도서관 등으로 구성된 2천여 개의 방이 있다고 한다.

힘겹게 언덕을 올라 포탈라 궁에 도달해도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시간은 1시간미만으로  제한적이었다. 홍궁 앞에 도달하니 관광객들의 줄이 구불구불하다. 대부분은 중국 각지에서 온 한족 여행객들이 압도적으로 많아 보였고, 티베트 사람들, 드물게 서양 관광객들도 보였다. 홍궁으로 오르는 계단은 올라가는 계단, 내려가는 계단, 그리고 그 사이의 가운데 계단,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운데 계단은 화려한 천으로 덮여있었는데, 일반인은 출입이 금지되고, 오직 달라이 라마만이 오르고 내릴 수 있다 한다.

사원에서처럼 궁내부로 들어갈 때는 모자와 선글라스 착용, 사진 촬영이 금지되었다. 죠캉사원 내부처럼 포탈라 궁의 내부는 조명을 밝혔는데도 어둡게 느껴졌다. 달라이 라마가 사용했던 방이나 거실 등도 규모가 생각보다 작았고, 화려하지 않은 단정한 느낌의 방들이었다. 관광객들에게 허용된 4개 층은 홍궁 최상층들인 10층에서 13층까지였다. 층 마다 작고 오밀조밀한 수많은 불당들이 있었다. 가파른 층계를 헉헉거리고 오르고 오르다 보면 드디어 옥상에 도달한다.

옥상에서 라싸 시내를 조망할 수 있었다. 고층 건물과 신축 아파트들이 줄줄이 늘어선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왔다. 라싸에도 대규모 개발이 이루어지고, 한족 자본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 라싸의 중심부는 한족들의 차지가 되고, 정작 이곳에 터전을 잡고 살던 티베트 장족들은 점점 라싸 주변부로 몰려나고 있다 한다.


▲ (좌)라싸 근교 세라사원에서 스님들이 일 대 일로 토론수업을 하는 장면. (우)포탈라 궁 인근 노천극장에서 가면을 쓴 배우가 공연을 펼치는 장면이다. 다양한 야외활동을 구경하는 것도 라싸 여행의 한 가지 묘미다.(사진=유효숙)

궁 근처에 용왕담 공원이 있어 호수에서 오리 배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였다. 궁에서 내려오는 길은 공원 쪽으로 나 있었는데,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이 있었다. 다가가니 노천극장에서 가면을 쓴 배우가 공연 중이었다. 티베트 사람들은 공연을 좋아하고 축제 동안에는 공연이 많이 열린다는데, 라싸에 살던 시절의 달라이 라마도 궁에서 공연이 열리면 테라스에서 함께 감상했었다 한다. 우리가 슬쩍 들여다 본 공연은 휴일을 맞아 공연되는 티베트의 전통 공연인 라모가 아닐까 싶었다.

포탈라 궁에 올라가지 않은 일행들과 합류하여 점심 식사 후, 라싸 근교의 북쪽에 위치한 세라 사원을 방문했다. 들장미, 혹은 싸락눈 이란 의미를 지닌 세라 사원은 15C에 건립되었는데 300여 명의 승려가 수행하고 있는 티베트 불교의 종파 중 가장 강력한 겔룩파의 사원이다. 세라 사원은 승려들이 경전과 깨우침에 대한 질문과 답을 하는 장면을 관객들에게 공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야외에 천막을 치고 바닥에 자갈이 깔린 토론장에서 수십 명의 승려들이 2인 1조로 묻고 답한다. 한 손을 밑에 받치고 다른 한 손을 높이 들어 내리치는 특이한 동작은 마치 손뼉 치기 같았다. 젊은 승려들은 더 커다란 동작으로 열렬하게 춤추듯 질문하는 것 같았고, 나이든 승려들이 모인 토론장에서는 같은 동작이지만 왠지 건성으로 질문하고 답하는 것같이 느껴질 정도로 기운이 없어 보였지만 여행객들에게는 신기한 장면들이었다.


▲ 보석정원이란 의미를 지닌 노블링카. 달라이 라마의 여름궁전이었는데, 소풍 나온 시민들로 가득했다.(사진=유효숙)

세라 사원을 나와 달라이 라마의 여름궁전인 노블링카로 향했다. 노블링카는 보석정원이란 뜻이라 한다. 넓은 정원을 지닌 궁전인데 휴일이라 노블링카로 들어가는 길에는 간식과 아이들의 장난감 등을 파는 수레들로 가득했다. 정원에는 돗자리를 깔고 피크닉을 나온 가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노블링카 궁에는 달라이 라마가 손님들을 접견한 응접실 등 수 백 개의 방이 있었다. 포탈라 궁을 오전에 이미 보았고, 휴일을 맞아 엄청난 인파들에 떠밀려 포탈라 궁과 비슷한 분위기의 방들을 관람하려니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와서 가이드의 설명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식사 후 호텔로 돌아오자 힘겨웠던 라싸에서의 두 번째 날 일정이 끝났다.

<계속>

유효숙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몇 년 전 은퇴했다. 지금은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집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노랑 고양이 달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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