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탐내던 이들은 대포포구로 행했다

[서귀포시 미래문화자산] ⑥ 풍광이 으뜸인 대포마을

한라산 남쪽. 포근하게 자리 잡은 마을이 있다. 아늑하게 둥지를 튼 대포마을이다. ‘대포(大浦)’라는 지명은 일찍이 사용되어왔다. 예전엔 이만한 포구를 가지는 게 쉽지 않았다. ‘큰개’로도 불리는 대포는 지금의 시각에서 바라보면 작게 보일 테지만, 마을 이름에서 보듯 해상의 요충지 역할을 했음을 짐작하게 만든다.


▲ 대포포구

대포 포구는 법화사와의 인연도 있고, 일제강점기 때도 중요하게 쓰였다. 일본을 오가는 연락선이 대포 앞바다에 정박,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지금은 관광객들이 포구를 자주 찾는다. 포구에서 출발한 관광보트는 사람들을 싣고, 낭만의 환호성을 지르게 한다. 그들은 바다에서 대포마을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웃음 짓는다. 거기에 감탄도 곁들여 있다. 그럴만한 이유는 충분하다. 바다에서 바라보는 뭍의 풍광이 이처럼 매력적일 수 있을까.


▲ 주상절리

▲ 주상절리

‘비경(祕境)’은 여러 뜻을 갖는다. 비밀을 간직한 신비스러운 곳이라는 뜻도 있고,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도 있다. 지삿개는 후자에 가깝지만, 자신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비밀을 간직한 신비스러운 곳’이었다.


지삿개는 화산섬 제주도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산물이다. 마그마가 식으면서 수축하다가 틈이 생기고, 그 틈에서 다양한 패턴을 만든다. 어떤 건 6각기둥으로, 어떤 건 5각기둥으로, 혹은 4각형도 있다. 그걸 우리는 주상절리라고 부른다. 주상절리는 제주 도내 여러 곳에 있으나, 대포마을의 주상절리는 다르다. 규칙적이면서도 매우 넓은 규모를 자랑한다.
대포에 있는 주상절리는 돌챙이를 비웃는다. 자연이 만들었는데, 돌을 다루는 돌챙이의 솜씨를 뛰어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멋진 풍광’이 어떤 때는 아픔이 된다. 풍광이 너무 멋진 탓에 대포마을 사람들은 중문관광단지 개발로 인해 그들의 땅을 내주고 말았다.


▲ 돌염전

주상절리는 지삿개에만 있지 않다. 지삿개가 대포마을의 서쪽을 차지한 광범위한 주상절리라면, 동쪽에는 배튼개에 작은 규모의 주상절리를 볼 수 있다.


배튼개 이야기가 나왔으니, 여기 바다와 관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살짝 더 해보자. 제주도는 돌염전을 둔 지역이 몇몇 있다. 대포마을도 그런 마을 중 하나였다. 배튼개에 평평한 바위가 있는데, 거북의 등처럼 갈라져 있다. 대포마을 사람들은 바위에 바닷물을 끼얹어 소금을 얻었다. 바닷물이 어느 정도 증발되면 그 물을 다시 솥에 넣고 끓인다. 1960년대까지 그런 방식으로 돌소금을 만들어냈다.

▲ 포구 주변의 이야깃거리

법화사는 의문을 던지는 절이다. 이 터에서 나온 대표적인 유물 가운데 용무늬 암막새와 봉황무늬 수막새가 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인 사찰 건물에서 이같은 유물이 발견된 예가 없다. 고려 도읍지인 개성 만월대에서 법화사의 막새와 비슷한 유형의 것들이 발견된 예가 있고, 몽골의 콩두미궁전에서도 비슷한 유형의 막새가 나왔다. 이렇게 본다면 법화사는 보통 절은 아니었다.


▲ 대포포구에 있는 법화사 주춧돌 

법화사는 노비를 280명을 거느릴 정도로 제주에서 가장 큰 절이었지만 조선시대에 들면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 그런 와중에 법화사에 있던 ‘아미타불3존’을 명나라에서 탈취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조선 태종 때 명나라 사신 황엄이 황제의 명령이라면서 제주도에 와서 아미타불3존을 가져가려고 하자, 태종이 김도생 등을 시켜 법화사에 있던 아미타불3존을 황엄에게 헌납(?)한 사건이다. 아미타불3존은 대포포구를 통해 뭍으로 실려 갔을 텐데, 지금은 법화사의 주춧돌만 그걸 기억하고 있다.


포구에 있는 법화사 주춧돌은 법화사 터에서 나온 주춧돌과 크기는 물론, 모양이나 재질이 같다. 포구의 선박 계류장 축대를 고칠 때 바다 밑 모래에서 주춧돌 3개가 나왔다고 한다. 포구에서 만날 수 있는 주춧돌은 발견된 3개의 주춧돌 가운데 하나이다.


▲ 대포포구 도대불

근대식 등대를 도입하기 이전, 뱃사람들은 어떻게 포구를 오갔을까? 포구에서 붉을 밝힌 ‘도대불’이 있다. 도대불은 ‘등명대’라고도 불리는데, 일본의 영향을 받은 유산이다. 도대불은 1915년 다이쇼 일왕의 즉위를 계기로 제주에 세워지기 시작했다. 도대불은 전기가 도입되면서 사라지는데, 1970년대 초까지 작은 포구를 밝혔다. 대포포구에 있는 도대불은 제주돌을 사다리꼴 모양으로 쌓아올렸으며, 정상부에 붉을 밝히는 장치를 뒀다. 붉을 지폈던 정상부는 현재는 사라지고 없다.

▲ 대포코지 일대

곶을 제주어로는 ‘코지’라고 부른다. 바다를 향해 가장 멀리 뻗은 땅이다. 그런 땅은 군사적으로도 무척 중요했다. 대포코지 일대에 조선시대에 세워진 연대가 있다. 대포연대는 동쪽으로는 마희천연대, 서쪽은 별로천연대와 교신했다고 한다.


▲ 대포연대

▲ 전투경찰대 건물에서 바라본 코짓개 해안

▲ 돌로 만든 초소

코지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점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건축물이 대포코지를 차지하고 있다. 다름 아닌 전투경찰대 건물이다. 중문단지축구장에서 해안으로 향하면 2층으로 된 낡은 건물이 나온다. 1960년대부터 제주의 해안 경비를 맡은 곳이었고, 2021년을 끝으로 더 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건물 내부는 전경들이 활동하는 내무반과 상황실을 두고 있다. 2층으로 오르면 멋진 바깥 풍경이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건물 바깥에 돌로 두른 작은 초소가 곳곳에 있다. 전경 한 두 명이 경계근무를 했던 장소로, 보존 가치가 높다.


대포코지 주변을 ‘코짓개해안’이라고도 부른다. 바다를 향해 길게 뻗은 곳이어서 ‘코짓개’라고 이름을 붙였으며,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대포포구가 포구로서 제 역할을 하게 도와주는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여기에 김순이 시인의 시비가 있다. 시는 “찾아가 보라/그 소름 끼치는 아름다움!”으로 끝맺음한다. 시 그대로다. 아름다움에 숨이 멎는다. 여기를 지키던 전경들도 그러했으리라.

▲ 더 남은 이야기

커다란 절 약천사 부근에 맑은 물이 흐른다. 바다에 취해 숨이 멎었다면, 맑은 물에 자신을 비춰보는 건 어떨까. 바위 사이로 흘러내린 물이 작은 폭포를 이루는데, 여기 사람들은 ‘선궷내’라고 부른다. 나무로 된 데크를 따라 걷다 보면 선궷내에 이른다. 발을 담그고 싶은 욕망이 차오른다.


▲ 선궷내

▲ 선원들이 안전항해를 기원했던 개당

제주도 사람들은 마음을 달래려고 신당을 만들고, 서로의 안녕을 기원했다. 대포마을은 여러 당을 두고 있다. 대포포구에 어부들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한 ‘개당’이 있고, 자장코지에 해녀들의 마음을 달래준 ‘좀녀당’도 있다. 마을 안쪽에도 본향당과 토산당, 요드랫당 등이 있다. 그래도 마음에 차지 않는다면? 모든 걸 비우러 산사에 가보자. 가깝게는 약천사와 법화사가 있고, 멀리는 한라산 1200고지의 존자암도 있다.

** ‘서귀포시문화도시센터’와 ‘서귀포사람들’이 지역 파트너쉽 사업으로 작성한 기획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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