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청룡호·신성호 있던 월평마을, 빼앗긴 바다 되찾을까?

[아카이브 월평마을과 바다 ①]어촌계 설립에 소홀했던 대가 혹독

시인 곽재구는 「포구기행」(열린원, 2002)에서 제주도 해안도로에 접한 여러 마을 가운데 특별히 월평동과 강정동을 좋아한다고 했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검은 돌담길에 들어서면 잠시 길을 잃기 마련인데, 그게 여행자에겐 최고의 행운이라고 했다.

그런데 곽 시인이 그토록 극찬한 두 마을이 바다를 놓고 분쟁에 놓였다. 월평마을 주민들이 강정동어촌계가 장악한 월평 바다를 되찾기 위해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주민들은 소송에서 패하면 마을의 오랜 숙원인 바다 되찾기가 오래도록 어려워질 수도 있다며 비상한 각오를 보인다.


▲ 월평어촌계가 바다를 되찾기 위해 서귀포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했다. 지난 4월 9일, 1차 변론기일이 열려 월평어촌계와 서귀포시가 각자의 입장을 설명했다.(사진=장태욱) 

월평마을 주민들은 지난 2016년 행정소송을 거처 어촌계를 설립했다. 그리고 빼앗긴 어업권을 되찾기 위해 지난해 9월 서귀포시청을 상대로 두 건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변론기일이 진행되면서, 주민들은 50년 숙원을 풀 수 있을지 기대를 모은다.

월평어촌계(계장 윤재근)는 지난해 9월에 서귀포시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두 건이다. 시청이 월평어촌계에 내린 어업면허 불허가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소송과 강정어촌계가 월평해안에서 어업활동을 하도록 허가한 어업면허의 연장을 금지해야 한다는 가처분 신청이다.

서귀포시는 지난 2013년 6월에 강정동어촌계가 제출한 어장이용개발계획을 승인하고, 2014년에 강정어촌계에 어업면허를 허가했다. 면허 기간은 2014년 5월 30일부터 2024년 5월 9일까지 10년이다. 강정동어촌계 입장에선 기존에 취득한 면허를 연장하는 절차적 과정이었다. 어업면허는 추가로 10년 연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번에 받은 면허로 길게는 2034년까지 월평 해안에서 어업활동을 할 수도 있다.


▲ 월평포구. 작은 배들이 있다.(사진=장태욱)

서귀포시가 2014년에 강정동어촌계에 어업면허를 발급할 즈음에 월평동 주민들은 그동안 빼앗겼던 바다를 되찾기 위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다. 2013년 10월, 서귀포시에 어촌계 설립 인가를 신청했는데 서귀포시가 이를 반려하자 ‘반려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2014년 11월 4일, 제주지방법원은 서귀포시가 월평마을 어촌계 설립인가 신청을 반려한 것은 위법하다고 판결해, 월평마을은 어촌계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월평마을이 어촌계 설립을 할 때 이미 어업면허는 강정동어촌계의 것이었다. 월평어촌계는 도내 유일의 어업면허 없는 어촌계가 됐다.

서귀포시가 2013년 어촌계 설립 인가 신청을 부당하게 반려하지 않았다면, 어촌계 설립과 어업면허 신청 등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월평어촌계가 제기한 이번 소송의 취지다. 서귀포시와 행정소송을 벌이는 과정에서 귀중한 기회를 놓쳐버렸다는 주장이다.

반면, 서귀포시는 강정동어촌계가 어장이용개발계획을 제출한 게 2013년 6월이고 월평마을이 어촌계설립 인가 신청서를 낸 게 그해 10월이라며, 서귀포시가 설립인가를 반려하지 않았더라고 우선권은 강정동어촌계에 돌아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월평동어촌계 관계자는 지난 4월 9일, 1차 준비기일에서 자신들은 그 훨씬 이전부터 대천동과 서귀포시청을 오가며 어촌계 설립을 모색했다고 주장했다. 시청이 문서만 제때 접수해줬다면 순위에서 자신들이 앞섰을 것이라고 항변했다. 월평마을이 바다를 되찾기 위한 법정 다툼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월평마을은 주변 대포마을과 더불어 제주도에서 해안절벽이 매우 발달한 마을이다. 그 때문에 바다에 대한 접근이 다른 마을에 비해 어려웠고, 어업은 상대적으로 뒤쳐졌다. 주민은 대체로 농업으로 생업을 유지했다.


▲ 월평해안은 대포마을과 더불어 제주도에서 해안절벽이 잘 발달한 지역이다. 바위 두 군데에 큰 해식동굴이 있는데, 주민들은 '쇠코'라고 부른다.(사진=장태욱) 

그렇다고 어업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이 마을에 최초로 거주한 사람이 해안 동물개에 거주했다거나, 주민들이 소형 어선으로 가파도나 마라도 주변에서 고기를 잡은 기록이 있다. 또, 1961년에는 지역사회개발계가 설립됐는데, 지역사회개발계는 청룡호, 신성호 등 어선 두 척을 구입해 고기를 잡기도 했다. 청룡호와 신성호는 배 길이 8~9미터에 이르는 것으로, 당시 어선으로선 꽤 큰 편이었다. 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소수지만 해녀들이 꾸준히 물질을 한다.

이렇게 마을에 어업의 역사가 있고 지금도 어업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마을이 어업면허를 되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단 한 가지, 1971년 수산업법이 개정된 이후 어촌계 설립과 어업면허 취득과 같은 절차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1년 수산법은 시장·군수는 어장을 구획하고 지선어민(어촌계)에게 면허를 발급하도록 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어민들이 어촌계를 결성하고 어업면허를 신청했는데, 월평 어민들은 그걸 등한시했다.

마을에 감귤농업이 도입되면서 관심이 밀감농사에 집중됐기 때문인데, 그때 바다에 대한 관심을 놓은 대가를 후손들이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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