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맛 빠기”, 차낭사리 준비로 발리의 아침은 너무 분주해

[발리와 제주사이 ②] 발리 이웃의 아침을 엿보다

저에게 제주에 고마운 제주사람1(승진 아저씨)과 고마운 제주사람2(경훈 아저씨), 그리고 키라네 제주어멍이 있는 것처럼 발리에도 가족과 같은 발리 현지인 가족들이 있습니다. 킹뇨만 삼촌 가족, 아유 언니네 가족, 아리네 가족, 까르띠 언니네 가족 등입니다. 이 네 가족은 마치 6~70년대 우리나라 가족 모습을 보는 것처럼 15명의 가족 구성원들이 패밀리 템플을 사이에 두고 한 울타리 안에 살고 있습니다.


▲ 뇨만삼촌, 아침에 집 안팎에서 기도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사진=키라 이금영)

제가 이 가족들과 인연이 된 건 2022년부터입니다. 그 전에는 발리에 올 때마다 제가 머물던 발리 숙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숙소가 현지식당으로 업종 변경을 하면서 제가 머물 숙소가 없어졌습니다. 다행히 이 집 아들 꼬망이 제게 바로 옆집에 새로 생긴 (꼬망의 친구가 운영하는) 아리네 숙소를 소개시켜줬지요. 그렇게 저는 이들 집에 머물게 되었답니다.

아침마다 2층 제방 발코니에 앉아 이들 가족의 움직임을 살피는 것으로 제 하루가 시작합니다. 닭들이 울어대는 새벽 5시쯤 되면 1층 부엌불이 켜지고, 가족들이 한두 명 나오기 시작합니다. 까르띠 언니는 이미 부엌에서 오늘 내다 팔 빵을 굽고 있고, 아리 아빠는 마당을 쓸고 있습니다. 킹뇨만 삼촌은 밖에 내다놓은 쓰레기통을 집 안으로 들여다 놓고요. 두 번째 커피를 한잔 타 마실 때쯤 나미 언니가 마당을 가로질러 이제 막 잠에서 깬 상태로 욕실로 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이들 한명 한명에게 “슬라맛 빠기!”(좋은 아침)하고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아침인사를 건네면서 친해졌습니다.


▲ 새벽에 일어나 가족이 하루 먹을 음식을 준비하는 게 여성의 일이다.(사진=키라 이금영)

저는 이제 1층으로 내려가 좀 더 적극적으로 그들의 일상을 훔쳐보기 시작합니다. 언니네 부엌 앞에 앉아서요. 4가족이 사는 집이라 욕실도 4개, 부엌도 4개입니다. 언니들은 각자 오늘 하루 먹을 음식을 각자의 부엌에서 만들어 놓습니다. 세 가지 정도 음식을 만들어 찬장 같은 찬합에 넣어놓는데요. 고기반찬 하나, 채소반찬 하나, 과자 같은 튀김반찬 하나. 그날 먹을 음식은 매일 아침 만들어 그날 하루 안에 다 먹습니다. 하루 먹을 음식을 다 만들고 나면, 이제 진짜 그들의 하루가 시작되는 신께 기도드릴 차낭사리(chanang sari, 힌두교 공물)를 준비합니다. 힌두교를 믿는 발리 사람들에게 차낭을 준비하고 신께 기도드리는 일은 결코 타협할 수 없는 그들의 가장 중요한 일상이자 삶입니다. 사각형 작은 나뭇잎 안에 여러 가지 꽃들을 넣어 신에게 바칠 차낭사리를 만듭니다. 목욕을 하고, 가족 사원과 집 안밖 곳곳을 돌며 차낭을 놓으며 기도를 합니다.

어느 날, 밥을 먹으려고 밥통을 열었는데 밥통 위에 작은 차낭이 놓여있습니다. 가스레인지 위에도 올려져있습니다. 저는 혼자 씩 웃었지요. 이 밥통에게 뭐라고 하면서 차낭을 올려놨을까? 그러다 까르띠 언니가 차낭을 놓으며 패밀리 템플에서 기도를 하는 게 보입니다. 까르띠 언니는 뭐라고 기도했을까? 너무 궁금한 겁니다. “까르띠 언니! 아까 오퍼링(신께 바치는 제물)할 때 뭐라고 기도했어?” “뜨리마 까시(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했지. 역시!


▲ 차낭사리를 만드는 장면이다. 차낭사리는 힌두교에서 기도를 할 때 올리는 공물이다.(사진=키라 이금영)

▲ 센타르 할머니가 사원에서 기도하는 장면(사진=키라 이금영)

모든 기도의 시작과 끝은 감사함이라는 것을 이들을 통해 또 배웁니다. 착한 신에게도 나쁜 신에게도 똑같이 제물을 받치고 기도하는 이들. 누군가는 발리 사람들은 돈 벌어서 세리머니와 신께 제사를 지내는데 돈 다 쓴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종교가 곧 이들의 삶이고, 삶이 곧 종교인 이들에게 우리는 판단이란 것을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제가 제주에 살면서 기도라는 것을 처음 해봤습니다. 사실 살면서 뭔가를 바라거나 원하는 게 제게는 딱히 없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기도라는 것은 뭔가를 원하는 것을 요청하는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제주에 살면서 기도라는 것은 나를 위하고, 뭔가를 바라면서 하는 게 아니라 지금 현재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것이고, 내 주변 사람들의 안녕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여전히 저는 제주에서 그랬던 것처럼 발리에서도 매일 아침 기도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도 내가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 친구들, 이웃들이 모두 무사하고 무탈하고 평안하고 평온한 하루가 되길 바란다고요, 그리고 오늘도 내게 멋진 자연환경과 편히 머물 수 있는 집,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입니다.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2022년 봄부터 2024년 3월 현재 발리에서
제주와 발리를 오가며, 현지인과 관광객 사이
그 경계에 하우스 노마드로 살고 있습니다.

2023년까지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운영,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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