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잃은 사람을 술, 소장수는 화투.. 화전촌인데 주막골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⑰] 남원읍 신흥리 물도왓화전

신흥리 물도왓화전은 물도왓은 신흥리 2327번지에서 남쪽으로 2289번지까지 이어지던 화전마을이었다. 세종대왕 1430년 쌓은 하잣담이 마을 가운데를 지나고, 동쪽에 마을 식수원인 ‘거슨내’가 흐르고 있다. 거슨내를 솔내(松川)라고도 부른다. 인근 무덤 비석에는 ‘물도왓’을 한자로 차용한 ‘수도전(水道田)’이라는 기록이 보인다.


▲ 물도왓화전에서 발견된 토기 조각(사진=한상봉)

마을의 형성 시기는 확인할 수 없고, 1914년 작성된 지적원도(地籍原圖)에서 마을에 25호가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적원도에는 고 씨 8가구, 김 씨 5가구, 양 씨 1가구, 부 씨 1가구, 백 씨 2가구, 정 씨 5가구, 신 씨 1가구, 이름 판독이 불가능한 2가구 등이 보인다. 이들은 집과 함께 주변에 밭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1948년 항공사진을 보면 6호 만이 보인다. 나머지 가구는 마을을 떠났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 제주 다른 화전지역의 이주 상황과 비슷한 양상이다.

지나던 사람 머물다간 화전마을

『제주4·3유적 2- 서귀포 편』에는 이곳에 살던 사람의 얘기를 빌어 “물도왓은 4·3이 일어나기 50여 년 전 여문영아리 앞에 거주하던 사람들이 들어와 화전을 일궈 살기 시작하면서 조성된 마을이다. (중략) 4‧3전까지만 해도 북쪽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잃어버린 우마를 찾다가 들르는 사람이 많았으며, 인근 주변 주민들이 일을 하다 비를 피하며 요기를 하던 주막골이었다. 특히, 당시 소 장수들이 모여들어 투전판을 자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라 하고 있다. 마을의 형성과 성장 과정에 다른 지역 화전민들이 이곳에 들어와 제2의 화전 생활을 한 사실이 확인된다. 여문영아리오름 앞 화전은 가시리 ‘영아동화전’을 이른다.

오〇종(1936생), 김〇영(1943)에 따르면 신 씨 집안의 부친은 여문영아리 서남쪽에 살았다고 했는데, 물도왓으로 내려와 살았다고 한다. 신 씨 집안의 사연은 이후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 1914년 지적원부에 나타난 물도왓화전 주민들

신흥리 신〇자 씨는 본인이 물도왓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부친은 신〇학, 작은 아버지는 신〇학이다. 할아버지는 신여서이고 작은 할아버지는 신〇〇이다. 본래 여문영아리 아래(영아동)에 살다가 물도왓으로 이주를 했다고 한다. 제주4·3으로 무장대에 의해 아버지가 사망해 할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어머니는 화순리로 재가를 해 떠났다. 할아버지는 물도왓에 살 때 말테(말무리)를 이끌고 토산리에서 남의 밭을 볼리기(밭을 밟아주기는 일)도 했었다고 했다. ‘영아동’에는 작은할아버지의 후손 신〇학의 땅이 1만여 평이 있는데, 지금도 후손이 이 땅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물도왓에선 주로 피, 메밀 농사와 목축을 했는데, 지금은 인척들이 제주시로 이주해 살고 있다.

“작은가지, 재산이 없으니 살기 위해 화전민”

김 씨로는 김여득 씨가 있었으며 아들이 현재 신흥리에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표선면 농협조합장을 했던 김〇선 씨가 물도왓에 있는 자신의 밭을 관리했다 했다. 김 전 조합장의 조상도 이곳에 살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위와 관련 신흥2리 ‘여우네’ 거주 김〇규(1967생)는 부친 김〇수, 조부 김〇득이며 증조부 시절 고조부와 함께 송당리에서 물도왓으로 왔다고 한다. 고조부는 회수동이고 고고조부는 신도리에 후손이 있다고 한다. 회수동→송당리→물도왓으로 이주한 것은 자신의 고조부가 큰가지 자손이 아닌 작은가지 자손이라 재산이 없어 살기 위해 옮겨 다녔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작은아들들이 재산 상속에서 뒷순위로 밀렸기에 살기 위해 화전지역으로도 들어와 살았음을 알 수 있다.

물도왓으로 이주한 증조부는 현 해비치골프장 주변에서 소를 키웠고 골프장 지역에 소유했던 땅은 골프장에 매각될 때 인근 땅 소유주와 함께 공동으로 매각했다고 한다.

<다음 편에 계속>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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