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겨울 가시리에서 걸어 목안 10번 다녀오니 밭 두 필지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⑱] 남원읍 신흥리 물도왓화전 사람들

<전편 ‘남원읍 신흥리 물도왓화전’에서 이어>

‘거슨내’ 주변에 몰도왓 돌방아가 있었다고 하는데, 본격적인 마을 형성을 위한 단계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보인다. 김〇차(1932생)의 구술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마을에 회의가 있을 때면 물도왓 사람들이 신흥 2리로 와서 마을 회의에 참여했고, 해방 전에는 물도왓 사람이 구장을 맡기도 했다.


▲ 물도왓화전이 있던 지역. 대나무가 있어서 사람이 살았음을 알게 한다.(사진=한상봉)

물도왓 출신으로는 고경욱 선생이 유명하다. 그는 어릴 때 남원초등학교까지 10km 거리를 하루 왕복 8시간을 뛰고 걸으며 다녔다고 한다. 이후 교장을 거쳐 장학사를 역임했는데, 어려서부터 자신이 처한 어려운 여건을 노력으로 극복한 사례로 오래도록 회자됐다.

가시리 정〇현(1959생)의 가족은 한때 물도왓에 살았는데, 가계의 삶이 비교적 자세하게 확인된다. 화전민 가계의 삶을 이해하는 좋은 예가 된다.

정〇현 씨의 증조부가 성산읍 고성리에서 물도왓으로 이주했으며, 이름은 정응태라 한다. 1914년 지적원도를 확인해 보니 신흥리 2277번지에 살았음이 확인된다. 증조부가 물도왓에 살 때 땅을 여러 필지 가지고 있었고 어떤 이유에선지 이후 가시리 정석항공관 뒤(녹산장)에 들어가 살았다고 했다.


▲ 1948년 항공사진에 나타난 물도왓화전(출처 국토지리정보원)


증조부는 말을 많이 키웠으며, 육지로도 말을 수송했다고 한다. 녹산장이 평지라 촐(띠)이 많았는데, 증조부는 인부를 사서 이 지역의 띠풀(촐)을 다 베어낼 정도였다고 한다. 정〇현의 아내는 시부모의 증언을 인용하며, 시증조부가 말을 육지로 실어갔었고 어디선가 말을 가져오라면 가져가기도 했다 한다. 말(진공물로 추정)을 가지고 갔다 육지에서 돌아올 때는 가시리마을 사람들이 부탁한 생활 물품들을 구입해서 이문 없이 전달했다고도 했다. 가시리 80세 이상 어른들은 자신의 증조부를 정마감이라 불렀고, 지금도 자신들을 정마감 손지(손자)라 부른다고 한다. 신흥리 소재 해비치골프장을 조성하던 시기에 토지소유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증조부 땅 4필지가 확인되어 골프장에 팔았다고 말했다.


가시리 고노(古老)들은 정〇현의 모친을 ‘목안빵’이라 불었었다고 한다. 정 씨의 모친 오〇출은 장사를 하러 목안(제주시)으로 자주 다녀왔다는데 가시리 마을에서 달걀을 사들여 목안으로 가 팔았기 때문에 그리 불렀다는 것이다.

4‧3이후 1950년대와 1960년대 초만 하더라도 달걀이나 닭은 잡아먹는 용도가 아니라 시장에 내다 파는 용도였다. 당시 달걀은 잔치에 쓰는 귀중한 식재료로 결혼 시 신랑, 신부상이 들어오면 이때 먹을 수 있었고, 우시(도우미)로 온 이들이 가끔 얻어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달걀을 돈으로 생각했던 여겼던 시대라, 집에서 닭을 키우고 달걀을 시장에 내다팔아 생활할 정도였다. 돈 나올 길이 없었던 시기, 돈을 벌기위해 고군분투(孤軍奮鬪)했다는 증언이다.


▲ 녹산장이 있던 제동목장. 정 씨 조부모는 물도왓화전을 거처 이곳에 자리를 잡고 말을 키웠다.(사진=장태욱)

당시 돈이 되는 것으론 달걀 외에 미역도 있었는데, 이 두 가지 품목을 지고 가서 팔았다고 한다. 오〇출 씨가 한겨울에 목안을 열 번 가서 밭 두 필지를 샀다는 얘기도 있다. 오 씨는 걸어서 가시리-녹산장-정강모르잣-교래-다나오름톡(절물오름톡)-봉개-제주시로 이어지는 길을 오가며 장사를 물건을 팔았고, 그런 수고로움 덕에 어려운 현실을 개선할 수 있었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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