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 일구다 숲에 불낸 화전민, 내몰림 앞당겼다

[한상봉의 ‘제주도 화전’ ⑯] 가시리 녹산장화전

<가시리 상비지화전에서 계속>
붉은오름 남서쪽 가시리 3795번지 화전은 지금 숲이 우거졌는데, 일제강점기엔 풀밭에 접해 있었다. 이곳의 동쪽 약 50m 거리엔 돌담 집터와 묘가 자리하고 있으며 마당 흔적과 산전 울담이 주변에 남아있다. 양하가 자라고 있어 과거에 사람이 거주했던 곳임을 알려준다. 가시리 오〇현(1933생)은 과거 이곳에 한정팔이란 사람이 살았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또한, 이장한 묘 옆으로는 돌담으로 조성한 피난지가 확인되는데, 제주4·3 때 난민들이 이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단독으로 발견된 화전 집터도 있는데 두 채의 돌집 중 한 곳은 길이가 7mx4m였다. 화전터의 서쪽으로 120m 인근엔 작은 내가 있고, 냇가 서쪽으로는 산전이 형성되어 있다.


▲ 가친오름 주변 묫자리. 예전 상비지화전 북쪽에 해당한다.(사진=장태욱)


의귀리 고〇정(1938생)은 일제강점기 시기 국림담 인근에 살던 화전민이 불을 목장에 놓았는데 이 불이 국림담을 넘어 산림지대에까지 번지자 일제당국이 강제로 이 지역 화전민을 이주시켰다는 얘길 수망리 목장 화전에 살았던 양〇석(1926생)에게서 들었다고 전했다. 이로 본다면 1948년 항공사진에서 보듯 국림담 안 국유림 산간지역에 살던 화전민들이 이런 정책 때문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 전체적으로 이러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국림담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진 돌담으로 중원이켓담, 또는 영림소담라고 불린다. 필자가 걸어서 전 구간을 조사 확인해 보니 광평리 돌오름 기슭에서 교래리 천미천까지 이어져 있었다. 가시리 상비지화전민도 강제로 쫓겨나 이웃한 영아동화전이나 신흥리 ‘물도왓’ 또는, 다른 마을로 이주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총독부가 1918년 발행한 한라산 5만분의 1 지형도에 나타난 녹산동화전과 상비동화전 북쪽(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가시리 녹산장화전
여문영아리 동쪽에 위치했던 화전으로 1918년 제주지형도에 횡장동(橫墻洞)이라 표기됐다. 여문영아리 동쪽 가시리 3754에서 3764번지에 이르는 공간에 있던 화전마을이었다. 1948년 항공사진에 보이질 않는 것에서, 조선말기 녹산장이 왕실소유에서 국가 소유와 개인 소유로 바뀌는 과정에서 소멸한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에 쓰인 번역서 『제주도의 옛 기록』에는 김근시(金根蓍)란 사람이 녹산장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있는데, 녹산장은 이후 박흥식에게 팔린 것으로 보인다. 이후 1972년 녹산장이 한진목장이 되면서 화전민의 터전은 개간돼 완전히 살아졌다. 1918년 제주지형도에는 4~5채의 집이 보인다. 이 집의 주인들은 일제강점기에 화전지에서 밀려났을 것으로 추정될 뿐, 누가 들어와 살았는지는 확인이 안 되고 있다.


▲가시리 여문영아리 동쪽 화전 지적도. 집터 8곳이 나타난다.

참고로 귀도리(구두리)오름과 가문이오름 사이 동쪽에는 한천석의 후손이 살았다고 전한다. 당시 사람이 살았던 집자리가 1948년 항공사진에도 보이고 있다. 한천석과 그의 아들들은 제주4‧3 때 사망하고 아내는 여우내(신흥2리) 마을로 이주를 했다. 여우내에서 후손을 만나 확인해 보니 한천석이 사망하고 인척 한〇호를 양자로 입적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읍리의 먼 일가는 귀도리오름 인근에 살던 한천석은 마를 캐며 살았다고 했다.


양자로 간 한〇호의 아내는 필자에게 성읍리 먼 친척을 안다고 했다. 그에 따르면 시아버지인 한천석은 숲에서 숯을 구워 팔며 생활했다고 했다. 족보에는 1913년생으로 기록됐는데, 부친 한성문이 1872생인 점으로 봐 일제강점기 이전에 녹산장과 귀도리오름 사이에 터를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인근에 유명한 〇된궤라는 궤가 있었다고 해서 필자가 현장을 둘러봤으나 확인하지 못했다. 녹산장에 속해 훼손된 것으로 보이는데 귀도리오름에서 쳇망오름까지 산림녹화가 진행되던 1970년대 초반, 사람들이 궤에 들어가 잠을 자기도 했다고 한다.


오씨(吳氏) 집안 족보에는 화전밭을 의미하는 가시리 지명으로 왕굴산전(王屈山田), 태흥목장 내 당드르산전(當野山田)이 나온다.

한상봉 : 한라산 인문학 연구가
시간이 나는 대로 한라산을 찾아 화전민과 제주4.3의 흔적을 더듬는다.
그동안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제주의 잣성」,「비지정문화재100선」(공저), 「제주 4.3시기 군경주둔소」,「한라산의 지명」등을 출간했다. 학술논문으로 「법정사 항일유적지 고찰」을 발표했고, 「목축문화유산잣성보고서 (제주동부지역)」와 「2021년 신원미확인 제주4.3희생자 유해찿기 기초조사사업결과보고서」, 「한라산국립공원내 4.3유적지조사사업결과 보고서」등을 작성하는 일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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