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나이드는 법 알려준 건, 내 친구 '제주 할망'

[제주 사는 키라씨 : 제주에서 7년을 살아보니 ⑥] 친구이자 ‘키라의 제주어멍’에게서 배운 것

▲ 주인 삼춘과 점심을 먹던 날의 풍경입니다.(사진=키라)

저도 모르는 사이 사십 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저는 안 늙을 줄 알았습니다. 제 나이 40을 그려본 적이 없었는데 당연히 60세의 저를 그려본 적은 더더욱 없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겠다고 스페인에 갔을 때, 우연히 만난 50대 골드미스 한국인 언니가 제게 얘기했습니다. “너, 재수 없으면 백 살까지 살지도 모른다”라고요, 그러면서 “너는 노후를 위해 무슨 준비를 해놓았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때 제가 30대 중반이었습니다.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현재를 살아야지, 미래는 무슨?’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그때 떠난 여행은 ‘노후’, 즉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 여행이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만난 이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었고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저와 인연이 되어 가족처럼 지냈던 이들 또한 할머니와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들을 통해 나도 ‘저렇게 나이 들고 싶다. 나도 나이 들어서 여행 다니려면 몸이 건강해야겠다. 돈도 있어야겠다. 소울메이트 같은 사람도 있어야겠다.’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 삼춘과 점심에 배추꽃으로 쌈을 싸서 먹었습니다.(사진=키라)

어떻게 나이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숙제를 안고 한국에 돌아와 우연히 제주도에 오게 됐습니다. 삶의 터전이 바뀌니 함께 어울리는 주변 사람들도 함께 바뀌게 됩니다. 지금 제가 사는 제주의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저보다 나이가 많습니다. 육지에 살 때는 대부분 제 또래와만 어울렸고, 저보다 나이 많은 이들과 어울릴 기회는 없었습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제 주변 90%가 50대 이상입니다. 50대, 60대, 70대, 80대 다양합니다.


참 신기한 것은 저보다 나이 많으신 이분들이 저의 친구입니다. 심지어 말이 아주 잘 통하기까지 합니다. 제가 붙임성이 좋아 어른들하고 잘 지낼 수 있는 그런 서글서글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닙니다. 주변에 어르신들이 많다 보니 지금 이들의 고민이 무엇이고, 그 나이에 불편한 것들이 무엇인지 직접 제 눈으로 보게 됩니다. 그들보다 젊은 저에게 당연한 것이라 여겨지는 것들이 나이가 들면서 아쉬워지는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나이가 들면 혼자서 두 발로 서서 걷는 것조차 힘들어진다거나, 치아가 불편해서 틀니를 해야 한다거나 임플란트를 해야 하는 일 등이 대표적입니다. ‘아, 조금이라도 젊을 때 치아 관리를 잘해야겠다.’라거나 ‘나이 들어서도 혼자 스스로 걸을 수 있어야 하니, 운동을 꾸준히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이 들어 혼자 살아도 주변에 마음에 맞는 이들이 가까운 곳에 살면 좋겠다’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주변에 혼자 사는 할머니들이 많은데 다들 집에서 혼자 밥 먹는 모습이 그렇게 싫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주인 삼춘이 밭에 일하러 오시면 꼭 점심을 함께 먹곤 합니다. 혼자 귤 창고에 앉아서 쪼그리고 밥 먹는 모습에 제 마음이 불편했거든요. 제가 제주에 살면서 우리 엄마보다도 더 많이 얘기하고 함께 밥 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집주인 삼춘입니다. 처음 삼춘을 만났을 때 60대 중반이었는데 이제 70대가 되어버린 제주 할망. 제가 ‘키라네 제주 어멍’이라고 부르는 사람. 사실 할머니라고 부르기 참 애매합니다. 할머니라 부르기엔 젊은 것 같고, 젊다고 하기에는 할머니 같은 그 어중간한 지점. 그래서 저는 이모라고 부릅니다. 가끔 정숙 씨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주인 삼춘은 어릴 적 가난했던 시절의 물질하러 갔던 이야기뿐 아니라 제주 사람들의 지혜 같은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시곤 합니다. 마치 어릴 적 할머니가 “옛날 옛적에 말이야”라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저는 그런 이야기가 무척이나 재밌습니다.


▲ 화창한 봄에 삼춘과 함께 고사리를 꺾고 남긴 사진입니다.(사진=키라)

“왜 제주 제사상에는 고사리 올리는 줄 알아?
고사리는 끊으면 또 자라고 또 자라잖아.
즉 자손이 번성하라고 제사상에 고사리 올리는 거야.”

“왜 보리콩이라고 하는지 아나?
보리 심을 때 심고, 보리 거둘 때 먹는다고 해서 보리콩이라고 해.”


주인 삼춘한테 ‘어떻게 늙고 싶냐’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삼춘의 어머니가 꽤 오래 육지 요양원에 계셨는데, 움직이지도 못하고 병원 침대에서 호스를 꽂아 죽을 섭취하며 지내셨습니다. ‘살아있어도 사는 게 아니야.’ 자신은 저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스스로 두 발로 서서 걷겠다고 말입니다.

나이 들어서도 다른 이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이, 내 두 발로 내가 원하는 곳에 걸어갈 수 있는 것이야말로 나이 들어가면서 중요하다는 것을 저는 제주 할망을 통해 또 배웁니다. 나이가 들어도 내 손으로 내 밥 한 끼 정도는 차릴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노후에 관한 아젠다가 제게 주어졌다면 그것들을 실제 어떻게 준비하며 실행하며 살아야 할지는 제주에 살게 되면서 오늘도 배우고 있습니다.

<계속>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2023년 11월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제주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 그 경계에 이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 사장으로,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책 『키라네 책부엌』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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