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끌려 세든 초가집, 방에서 지네 만난 첫날 밤새 꿈에..

[제주 사는 키라씨 : 제주에서 7년을 살아보니 ⑤] 낡고 지붕 까만 초가집에 살아요

초가에 마음 끌려 세 사는데
내부 욕실 보니 실망 몰려오고,
고장난 보일러도 주인 삼춘과 협상(?)해 자비로 수리
지네를 만난 첫날 밤새 지네꿈에 시달렸고, 벌레에 기겁도 했지만
지금은 곤충과 공존하는 방법 터득

▲ 키라의 초가 처마를 이웃이 수리해주는 장면입니다.(사진=키라)

제가 처음 살았던 제주의 집은 귤밭 안에 있는 아주 오래된 지붕이 까만 초가집입니다.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흙과 돌로 지어진 전형적인 제주의 옛날집입니다. 대문도 없고 어디까지가 마당인지 경계도 없어 남들은 절대 탐내지 않을, ‘과연 저기에 사람이 살까’하는 의심이 들 만한 그런 집.

제주 살기 시작했을 무렵, 이 까만 초가집 앞을 지인들과 지나가는데 지인 언니들이 이 까만 초가집을 보고 말했습니다. “키라야, 저 초가집 엄청 좋아. 생긴 건 허름해 보여도 안에 들어가면 아늑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집이야. 이 동네에서 집을 딱 하나만 고르라면 무조건 저 집에 살고 싶을 만큼 탐나는 집이야.”
“그래? 저 집이 그렇게 좋아?”

겉으로 보이는 그 초가집은 좋게 말하면 오래된 제주 돌집, 나쁘게 얘기하면 누가 살 것 같지도 않은 아주 심하게 낡은 집. 그런데 이상하게 저도 저 집이 마음에 들기 시작합니다. 집 안이 어떻게 생긴 지도 모르면서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아, 나도 저 집에 살고 싶다. 나도 저 집에 살면 좋겠다. 저 집이 우리 집이면 좋겠다.’ 라고요. 그렇게 저는 지인 언니들이 유럽 간 3개월 동안 그 집 앞을 지날 때마다 주문처럼 중얼거렸습니다. ‘나도 저 집에 살고 싶다.’ ‘저 집이 우리집이면 좋겠다’ 라고 말입니다.


▲ 초가 마당에서 이웃과 앵두를 따는 장면입니다. 여러 불편한 일을 겪지만, 이런 생활을 거치면서 공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 생겼습니다.(사진=키라) 


언니들이 유럽 여행을 마치고 제주에 돌아올 때쯤, 저는 이미 주변 지인들을 통해 앞으로 머물 집을 구했습니다. 지인 찬스로 인해 집세는 필요 없다면서 그냥 전기요금이나 내고 살라면서 말이죠. 언니들이 유럽에서 돌아오기 전에, 이사 갈 집에 도배도 하고 장판도 깔았습니다. 그렇게 이사 갈 날만을 기다리던 어느 날, 갑자기 초가집에 살던 일가족이 이사를 간다고 합니다. 위미에 집을 사서 이사를 가게 됐다면서 혹시 이 까만 초가집에 들어와 살 생각이 있냐고 물으셨습니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저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저요, 저!!! 이사 가기로 했던 그 집은 쿨하게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도배랑 장판한 게 아깝긴 했지만, 그걸 포기할 수 있을 만큼 제겐 이 초가집이 우선이었습니다.


자신들은 새집으로 가서 초가집에 살던 물건들이 새 집과 어울리지 않는다며,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약간의 금액을 지불했더니, 가스레인지, 가스통, 냉장고, 김치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서랍장은 그대로 두고 가셨습니다. 몇 가지 물건들만 육지 집에서 가져오고 따로 구입할 게 없었답니다.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까만 초가집은 키라의 제주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건 제가 까만 초가집의 내부를 본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내부가 어떤지도 모르고 덜컥 초가집을 살겠다고 한 것이죠. 까만 초가집 문을 열고, 안을 들어가봅니다. 문을 열자마자 북쪽창이 난 거실이 있고, 거실 양옆에 방이 각각 있고, 안쪽에 부엌이 있습니다. 그리고 부엌 맞은편 욕실을 본 순간, 앗, 제가 뭔가 실수했다는 느낌이 왔습니다. 아, 이건 뭐지? 욕실 맞아? 어두침침한 시멘트 바닥의 욕실입니다. 그 전에 초가집의 욕실을 봤다면 저는 절대 이 집을 선택하지 않았음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집에 살아야 합니다.


▲ 고사리를 캐고 이웃과 함께 초가 마당에서 차를 마시는 날(사진=키라)

일단 욕실 타일 작업을 하기로 합니다. 주변 지인분이 친구네 남는 타일을 챙겨다 주셨습니다. 유튜브로 타일 붙이는 영상들을 미리 숙지하고, 지인이 타일 붙이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욕실과 화장실에 타일을 붙였더니, 전혀 다른 깨끗한 욕실이 되었습니다. 주인 삼춘은 욕실을 보시더니, 너무 잘했다며 본인이 더 좋아하십니다. 남는 타일 있으면 옆집 할머니네 욕실 바닥도 붙여달라고 합니다. (제주에서 귤을 따지 않았으면 저는 타일 붙이는 전문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ㅎㅎㅎ)


그리고 하나, 보일러. 그 전에 이 집에 사시던 분들은 보일러가 고장 났는데 고치지 않고, 전기장판 깔고 살았던 거였습니다. 겨울에도 따뜻한 집이라 그렇게 춥지 않아서 그냥 사신 듯합니다. 저는 주인 삼춘께 보일러를 새로 설치해달라고 했더니, 돈 없으니 그냥 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럼 보일러 제가 새로 교체할 테니 집 계약기간을 늘려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삼춘과 그렇게 거래(?)를 하고 보일러를 새로 교체했습니다. 제가 굳이 제 돈 들여 보일러를 교체한 이유가 있습니다. 제주는 기본적으로 습한 곳입니다. 집집마다 제습기는 필수. 조금만 방심하면 집안에 곰팡이가 생기는 건 한순간입니다. 하지만 제습기만으로는 안 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는 한여름에도 비가 오면 보일러를 틀고, 제습기를 돌립니다. 공기 중의 습기뿐 아니라, 방바닥의 습기까지도 제거해야 집이 뽀송뽀송해지니까요.

제주에 와서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공간에 대한 애정입니다. 사실 육지에 살았을 때는 공간이 주는 의미도 모르고 살았었습니다. 그냥 깨끗하고 편리하고 안전하기만 하면 됐죠. 제게 집은 그저 잠만 자고 나가는 영혼 없는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주에 살면서 자신이 사는 공간을 얼마나 애정을 갖고 관리하느냐에 따라 공간이 달라진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공간은 머무는 사람을 닮아간다는 것을요. 새것과 오래된 것의 문제가 아닌 그 사물을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대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그 공간에는 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초가집에서 첫날 밤, 자려고 누웠는데 뭔가 사각사각 소리가 납니다. 자꾸 신경이 쓰여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렇지 않아도 낯설고 무서운, 시골 밤이 어색한데 말이죠. 불을 켰는데 머리맡에 한 뼘 정도 크기의 지네가 지나갑니다. 그날 밤 너무 무서워 잠을 잘 수가 없었죠.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마저 방 천장에서 수십 마리의 지네가 떨어지는 꿈을 꿨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아침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니, 이 집에 나보다 먼저 벌레들이 살고 있었는데, 벌레들 입장에서는 내가 침입자일 수도 있지 않을까? 벌레들도 나를 보며 얼마나 놀랬겠어? 그렇다면 벌레들에게 그렇게 얘길 해야겠다. 같은 집에 살게 됐으니 잘 지내보자고. 그런데 난 니들이 무섭거든, 그러니 우리 서로 마주치지는 말자고 말입니다. 그렇게 또 한 지붕 아래 벌레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 초가에 눈이 내리면, 오래된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사진=키라)

이 작은 초가집에 5년을 살았습니다. 아니, 젊은 사람이 어떻게 저런 집에 살 생각을 했냐고 가끔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집이 너무 낡아 보여서 하는 말입니다.) 저는 이 아늑하고 오래된 초가집이 너무 좋았습니다. 여전히 벌레도 많고, 지네도 무섭습니다. 하지만 제게 이 집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초가집에게 매일 말을 하곤 했습니다. 처음 이 집에 이사 왔을 때, 제주 사람들이 제게 “집 주변에 막걸리라도 뿌려!”라고 했습니다. 물론 미신이라는 걸 알고 있지만 저는 그것이야말로 이 집에 대한 감사함의 표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게 바로 제주 사람들이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이 아니었을까요?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2023년 11월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제주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 그 경계에 이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 사장으로,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책 『키라네 책부엌』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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