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영원한 ‘육지것’, 그래도 이웃 장례식 조문 갔더니..

[제주 사는 키라씨 : 제주에서 7년을 살아보니 ④] 난 텃세가 뭔지 모릅니다

제주 사람은 배려심이 깊은데
제주사람에게서 텃세를 느꼈다면, 자신을 돌아봐야
인사도 하고 이웃 경조사 돌아보니 난 삼춘의 자랑거리

▲ 이웃 삼춘이 건네고 간 호박. 삼춘들의 배려가 있어 내 제주살이가 훨씬 풍요롭다.(사진= 키라) 

얼마 전, 동네 이웃 K아저씨 귤밭 일을 도와드리러 갔습니다. K아저씨 지인분이 밭에 오셨는데, 제주 토박이 아저씨는 낯선 여자가 밭에 있는 게 이상한 건지 누구냐고 물어봅니다. 아직도 육지에서 온 티가 나나봅니다. 그리고 두 제주 아저씨는 얼마 전 유튜브에 올라왔다는 제주 텃세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육지 사람들이 제주에 와서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게 제주 사람들 텃세가 심하기 때문이라고 했답니다.


그러면서 K아저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나는 대학 다니면서 서울에서 25년을 살았어. 서울에 사는 동안 나는 제주 사람이 아니라 서울 사람이 사는 것처럼 그들처럼 살려고 노력했고 그렇게 살았다. 그래서 제주 사투리가 아닌 표준어를 쓰며 그들의 문화에 맞춰 살았다. 육지 사람들도 제주에 와서 살기로 했으면 제주 사람처럼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 제주 사투리도 배워보고, 제주 문화도 배우면서 살아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입니다. 제주 사투리 배우려고 노력이라도 해본 육지 사람들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습니다.


▲ 내가 남원리에서 귤을 따고 있을 때, 이웃이 커피를 내려 가져왔다. 이웃의 배려는 제주살이의 원동력이다.(사진=키라)

책방에 오시는 손님들 중 제게 제주살이에 관해 물어보는 손님들이 꽤 많습니다. 그 중 가장 많은 질문 중 하나는 제주 텃세가 그렇게 심하다면서요. 살만해요? 라고 묻곤 합니다. “제가 지금 제주살이 7년차인데요. 아직 그런 거 단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어요.”라고 하면, 다들 정말이냐며 놀라십니다.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제가 어릴 때부터 나고 자란 마을입니다. 어느 날 타지에서 모르는 사람이 이사 왔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 집 앞이라는 이유로 삐딱하게 차를 세워놓으면서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니기 불편해졌어요. 그러면 저라도 이 타지에서 온 사람이 참 싫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제주 친구들과 제주 서쪽 나들이를 간 적이 있습니다. 나름 유명한 카페에 갔는데 그 카페 건너편 도로에 ‘OO카페 손님 주차금지’라는 팻말이 빨간색 글씨로 커다랗게 세워져 있었습니다. 예전에 제가 관광객 입장으로 그 팻말을 봤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겁니다.

“이 동네 사람들 참 야박하다. 카페 손님 차 좀 세우는 게 뭐 어때서? 세우도록 내버려두지 뭐 이렇게까지 한담?”라며, 제주 현지 동네 사람들 흉을 봤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제주에 살고 있고 그래도 조금은 제주 사람을 안다고 생각하니 시선도 관점도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그런 팻말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저 카페 주인 동네 사람들과 사이가 안 좋구나. 카페 주인 인성이 의심스럽다.”라고.

제주에 살다 보면 알게 되는 사실들이 있습니다. 제주 사람들이 정이 많고 콩 한쪽이라도 나눠먹으려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동네 사람들 불편하게 했다면 죄송하다고 양해를 구하면 얼마든지 괜찮다고 오히려 길을 내어줄 사람들이 제주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에서 살았던 것처럼 ‘우리 집 앞인데 뭘? 여긴 내 땅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데’라는 심보라면 제주살이가 힘들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동네 삼춘이 마당의 잔디를 깎아주셨다. 누가 제주도분들이 배타적이라고 말하나?(사진=키라)


텃세는 제주 사람들이 만드는 게 아니라 육지 사람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주 현지인과 가족처럼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을 행사에 다 참여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제주에서는 특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당한 거리가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어디나 다 똑같을 겁니다. “키라는 동네 사람들과 잘 지내나 봐요?”, “혹시 동네에서 무슨 일을 맡아하시는 건가요?” 라고 묻는데, 저는 딱 제가 해야 할 기본 도리만 할뿐입니다. 우리 앞집 삼춘 얼굴 보면 인사하고요, 육지에서 엄마가 보내준 음식이 있으면 앞집 삼춘네 맛보라고 가져다드리고요, 앞집 삼춘네도 “귤은 주변에서 많이 얻어먹을 테니 호박 줄게”라며 호박을 놓고 가십니다. 앞집 삼촌네 어머님이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장에 갔었는데 저를 보고는 엄청 놀라시는 겁니다. 저는 바로 앞집에 사는 이웃인데 당연히 가야하는 거라 생각해서 간 건데 삼춘은 감동받으셨나 보더라구요. 나중에 앞집 삼촌 친구분들 데리고 오셔서 엄청 자랑을 하셨습니다. 얘가 우리 앞집 사는 육지 아인데, 우리 어멍 영장났을 때 왔다고 말입니다.

발리에 살 때 현지인 시장에 가면 제게 자꾸 바가지를 씌우려고 해서 “나는 관광객이 아니라 여기 사는 사람이라니까”라는 말을 정말 많이 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저는 그저 외국인일 뿐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내가 아무리 여기 사는 사람이라고 말해도 이들에게 나는 영원히 이방인일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제주에 살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육지것이고 앞으로도 육지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쯤은 이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 서운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처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잘 나눠먹고, 잘 도와가며 그들과 함께 오래오래 잘 지내고 싶습니다. 제주에 살기로 했다면 그들의 문화를 알고, 그들의 삶을 이해하면서 바람이 통하는 사이로 살아간다면 제주 생활이 그리 어렵지만은 않지 않을까요?
(물론 어디까지 내 개인적인 의견과 경험이니 다른 제주 이주민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제주에 살게 되면서 매일 아침 명상을 마치고, 주문처럼 외우는 기도가 있습니다.

'이렇게 멋진 자연환경과 따뜻한 공간에서 좋은 사람들과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2023년 11월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제주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 그 경계에 이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 사장으로,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책<키라네 책부엌>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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