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드래, 서드래? 귤 따기보다 어려운 건 외계어 같은 언어

[제주 사는 키라씨 : 제주에서 7년을 살아보니 ②]

잘나가던 교육기업 퇴사하고 제주행
귤 따러 갔는데, ‘동드레, 서드래’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제주어
처음엔 대화에 낄 수 없었지만, 삼춘들이 하나씩 알려줘

‘제주에서 무엇을 하면서 살까’ 미리 계획하고, 결정하고 오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저란 사람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일단 저지르는 사람이니, 그런 결정을 하고 왔을 리가 없었습니다.


유럽 여행을 떠난 제주 지인의 집을 지키며 제주에 산 지 3개월이 되고 나니, ‘나도 제주에 한 번 살아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하며 살지? 고민하게 됐지요. 물론 제가 육지에서 하던 직업을 해보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일을 할 거면 그냥 육지에서 살지 이곳 제주까지 와서 똑같은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 가위로 귤을 따는 키라의 손. 귤은 따는 일보다 어려운 건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제주어였다.(사진=키라)

저는 육지에서 특목고 입시를 했던 화학강사 출신의 학원 경영자였습니다. 드라마 <스카이캐슬>처럼 대한민국 사교육 최전선에 있었던 사람이었죠. 제주는 같은 대한민국이지만 언어가 다르고 문화도 다른 한국 속 외국 같은 곳이었습니다. 일단 이곳에서 봄여름가을겨울을 겪어보자. 1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한번 살펴보고 여기서 무엇을 하며 살지 결정하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쯤 저는 집주인 삼춘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혹시 귤 따러 가실 때 귤 따기 자리 생기면 저 좀 끼워주세요”라고. 사실 저는 귤 따기 멤버에 들어가기엔 최악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죠. 귤 따기 초보에다 제주에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젊은 ‘육짓것’이었거든요. 그런데 주인 삼춘이 저를 예쁘게 봐주셨는지 저를 딸처럼 데리고 귤을 따러 다니셨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도시락을 싸고, 귤가방을 챙깁니다. 귤가방 안에는 귤가위, 마스크, 귤모자, 장갑, 팔토시, 앞치마, 혹시 모를 비옷까지 들어있습니다. 새벽 6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서 위미 우체국 앞으로 갑니다. 잠시 후 반장 이모의 귤트럭이 도착하면 제주 삼춘들과 함께 트럭에 껴 타고 귤밭으로 향합니다. 하루가 시작될 때쯤이면 두 명이 짝을 지어 귤을 따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귤밭에는 귤을 따는 사람, 따놓은 귤을 나르는 사람, 귤을 선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속해있던 귤 따는 팀은 제주 토박이 할머니들로만 구성된 최정예 멤버들이었습니다. 평생 귤 농사를 지어왔던 귤 따기 전문가들. 아마 귤 따기 대회가 있다면 세계 최고가 아닐까 싶은 진정한 귤 따기 전문가들입니다. 그런 귤 따기 전문가들 사이에 어느 날 육지에서 온 젊은 여자아이가 나타난 거죠. 삼춘들은 신기해하면서 약간 경계하는 듯했습니다.


이름을 부르는 게 아니라, “양~(저기)!”이라고 하셨는데, 그 당시 제 귀에는 “야!”로 들렸습니다. 나 이름 있는데, 왜 자꾸 야라고 부르는 거지? 그래서 어떤 날은 목구멍까지 “저 이름 있는데요”라고 말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제주 삼춘들 눈에 제가 꽤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어느 날부터 제 이름을 불러주셨고, 삼춘들은 이것저것 챙겨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집에 가는 길에 내려다 드리면, 다음날 직접 캔 돌미역을 빨아 먹기 좋게 주시고, 또 어떤 분은 오일장에 가서 작업 바지를 제 것까지 사서 몰래 챙겨다 주시고, 직접 기른 콩이며, 밑반찬까지 챙겨주셨습니다.


▲ 바구진에 담긴 귤을 주인 삼춘이 콘테이너에 옮겨 담는 장면. 귤을 수확하는 현장은 키라가 제주어를 익히는 학습장이 됐다.(사진=키라)


귤 따는 건 생각보다 그리 힘들진 않았구요(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귤가위로 꼭지를 귤의 별 모양이 있는 곳까지 바짝 자르면 됩니다. 꼭지가 나와 있으면 다른 귤에 찔려 상처가 되어 썩게 되니까요. 그리고 제가 손이 꽤 빠른 편이라서 삼춘들과 함께 귤 따는 데 피해를 주진 않을 정도는 됐습니다. 하지만 귤 따는 것보다 힘든 게 있었으니 그건 ‘언어’였습니다. 외계어 같았던 제주어. 특히 함께 귤을 땄던 제주 삼춘들은 제주 토박이들로 제주어의 끝판왕이었다고나 할까요? 처음에 저는 꿔다놓은 보릿자루마냥 귤만 땄습니다. 알아들을 수 없으니 삼춘들과의 대화에 낄 수가 없었어요. 누군가는 제게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하는데 이어폰 끼고 팟캐스트를 듣는 게 나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말 못하는 외국인 노동자의 심정을 알게 되었죠. 하지만 여기서 삼춘들과 어울리려면 그들의 언어를 알아야 했어요. 그래서 삼춘들이 얘기할 때 들리는 단어가 있으면 삼춘들에게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고랐어~’가 뭐예요?
‘동드래, 서드래’ 그건 뭐예요?
‘영장’은 뭔데요?


삼춘들은 손녀딸에게 말을 가르치듯 제주어를 하나씩 알려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귤 따러 다닌 1년 동안, 삼춘들 덕분에 제주어를 빨리 배울 수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어느 정도 알아들어 통역은 가능한 데 말하는 건 여전히 어색합니다. 리스닝은 되는데, 스피킹이 안 되는 상황이랄까요? 한국에 오래 산 외국인이 하는 한국말이 여전히 어색한 상태 말이예요.

사람들은 제가 제주에서 1년 동안 귤 따러 다녔다고 하면 대단하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제가 1년이나 귤 따러 다닐지는 몰랐지만, 대체 뭐가 대단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살고 싶은 곳에서 이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제가 택한 하나의 방법일 뿐이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한 건 언어였으니까요. 제가 몇 년 전 발리 우붓에서 살았을 때 제가 그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겉돌았던 이유가 ‘언어’ 때문이었다는 것을 제주에 살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어가 아닌 그들의 언어를 배웠어야 했고, 그들의 음식, 그들의 문화를 배워야 했었습니다. 그랬다면, 지금 제주에서의 삶처럼 발리에서의 삶 역시 훨씬 풍요로웠을 텐데 말입니다.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2023년 11월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제주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 그 경계에 이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 사장으로,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이 글은 책<키라네 책부엌>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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