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좋아하세요?

[제주 사는 키라씨 : 제주에서 7년을 살아보니 ①]

유난히 좋아하는 영화가 있습니다. 30대 여자가 자신의 인생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가 바로 그것. 주인공 리즈(줄리아 로버츠)가 이탈리아에서 만난 친구들과 식사하면서 자신의 도시를 상징하는 주제어를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들은 스톡홀름을 ‘순응’, 뉴욕을 ‘열망’ 그리고 로마를 ‘섹스’라고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제주’는 어떤 단어로 표현될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제주’라는 단어만으로도 위안을 얻는 것 같습니다. 제주로 여행을 간다거나, 제주에 산다고 하면 부러워하니 말입니다. 남들에게는 로망이고, 휴식인 이 ‘제주’라는 단어에 저는 그리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제게 제주는 물가 비싼 관광지 중 하나였거든요. 바람도 많이 불고, 습하고, 관광객만 가득한 곳. 그래서 저는 제주에 여행 가는 사람이 부럽지도 않았었고, 제주에 사는 사람들조차 제 관심 밖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어떻게 하면 나이 들어 외국에 가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제주’는 저와 전혀 상관없고, 앞으로도 상관없을 단어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제주에 살고 있습니다. 꼬박 6년을 채우고, 일곱 번째 제주의 겨울을 맞이한, 제주살이 7년 차 이주민이 되었습니다. 세상 모든 일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계획하는 대로 항상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을테니까요.


▲ 2017년 처음 이주했을 때 찍어둔 신흥리 사진입니다.

2017년 봄, 제주 사는 지인이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내가 대신 집을 지켜줄까?” 하고 농담처럼 뱉은 단 한마디로 제주살이가 시작되었습니다. 과연 이 조용하고 불편한 것투성이인 시골에 적응하며 살 수 있을까? 그것도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에서 혼자, 일주일만 머물러 보자 했던 것이, 3개월이 되고, 1년이 되고, 6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제가 사는 서귀포 남원은 제주 사람들조차도 시골이라 무시하는(?) 작은 마을입니다. 제주도 남쪽에서 살짝 동쪽에 위치한 한라산이 가장 멋지게 보이는 곳(물론 내 생각입니다). 아침 새소리 모닝콜로 눈을 뜨고, 창을 열면 귤밭이 가득이고, 집마다 돌담 앞에 트럭이 하나씩 서 있는 천상 농부들이 사는 동네 말입니다. 다들 이른 아침부터 귤밭에 일하러 가느라 낮에는 동네에 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곳. 밤 9시가 넘으면 불이 꺼져 밤이 유난히 더 깊어지는 동네. 어린아이나 젊은이들보다 나이 드신 어른들을 마주치기 쉬운 동네. 도로 위에 ‘노인보호구역’이라는 글씨가 또렷이 보이는 동네. 그래서 일흔 살이 넘은 할머니와도 친구가 될 수 있는 동네.

주머니에 비닐봉지 하나 넣고, 어슬렁어슬렁 동네 산책을 나서봅니다. 오늘은 마을 안쪽으로 산책할까, 아니면 바닷가 산책을 해볼까? 참, 비닐봉지는 왜 가져왔냐고요? 시골에서 산책할 때 비닐봉지는 필수이거든요. 봄에는 쑥, 초여름에는 산딸기를 담아야 하니까요. 너무나 평화로워 사람이 살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기만 했던 동네가 변하고 있습니다. 작년에는 도로 확장공사를 하더니, 올해는 동네 주변에 타운하우스들이 들어섰습니다. 제가 처음 이 동네에 왔을 때 마을 어귀에 있던 커다란 방풍낭(바람을 막기 위해 심은 나무를 뜻하는 제주어)들은 이미 잘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작은 마을 안 소공원 역시 도로 확장공사로 사라져버렸습니다. 짧은 시간에 마을이 쉬 변하는 모습에 아쉬움도 커져만 갑니다. 이제 저에게 제주는 더 이상 관광지 제주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제주는 자연이고 사람이며 삶이고 꿈이고 희망입니다.


▲ 2017년 신흥리 바다의 풍경입니다. 

누군가 그러더군요. 제주인들은 자연에 맞서서 사는 사람들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들이라고. 돌담 틈 사이 바람에도 길을 내어주던 사람들이라고. 저는 이런 제주가 참 좋습니다. 1년 내내 푸른 귤나무를 볼 수 있어 좋고, 언제든 달려가 소리 지를 수 있는 바다가 있어서 좋고, 밤이면 반짝반짝 북두칠성을 볼 수 있어 좋고, 부지런하게 몸을 움직이는 제주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서 좋습니다. 저는 제주에 머물게 된 것을 제 삶의 가장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주에 살면서 자연과 함께, 사람과 함께 살아가며 저는 진짜 삶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제주는, 혼자 밥 먹고 술 먹고 영화 보고 혼자 여행가는 게 익숙했던 제게, 지독하게 개인적이며 제 주변 사람들에게 고마워할 줄 몰랐던 제게, 남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곳 ‘제주’에서 7년 동안 동네 삼춘들과 살면서 알게 되고, 배우게 된 것들을 이 지면을 통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제가 제주에 살지 않았으면, 절대 알지 못했을 것들을….


글쓴이 키라
2017년 봄부터 2023년 11월 현재 제주 서귀포 남원읍에서 제주 관광객과 현지인 사이, 그 경계에 이주민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음식이야기 책방 <키라네 책부엌> 책방 사장으로, 문화도시 서귀포 책방데이 프로젝트 매니저로,
귤 따는 계절에는 동네 삼촌들과 귤 따는 이웃으로 살아갑니다.

11월부터 매주 수요일 <제주사는 키라씨: 제주에서 7년을 살아보니> 연재를 시작합니다. 이 글은 책 <키라네 책부엌>에서 발췌한 내용이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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