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배 ‘신조선’이라 보도하는 신문, 도민은 목숨 걸었다

[아카이브 군대환 ③] 여객선으로서는 최악이던 제2군대환


일제강점기 제주도민을 오사카로 실어날았던 군대환(君代丸)이 취항한 지 100년을 맞았다. 제주자치도는 7일부터 오는 11월 3일까지 제주대학교 박물관 3층 전시실에서 군대환 취항 100주년 기념하는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군대환과 함경환, 교룡환, 목목환 등 제주도민을 일본으로 싣고 나르던 여객선과 관련한 사진과 신문기사 등이 전시됐다.

이번 전시가 가진 의미가 큰 반면, 아쉬움도 적지 않다. 전시가 군대환에만 집중됐기도 했고, 군대환을 이은 제2군대환 등에 대한 자료도 기대만큼 자세하지 않다. 이번 기사에서는 군대환을 잇는 제2군대환에 대한 자료를 찾아 기사로 보충했다.
-기자 주

▲ 이번 전시회에 공개된 제2군대환의 사진

군대환이 고산 해안에 좌초된 지 1년이 지나자, 1926년에는 제2군대환이 제주-오사카 노선에 취항했다.

아마사키기선(尾崎汽船)은 1925년 소련 정부로부터 군함 만쥴(Mandjur)호를 구입했다. 이 배는 제정 러시아 시대인 1886년에 건조된 것으로, 구입 당시에 이미 선령이 40년에 이르렀다. 선체 무게가 1000톤 정도로 당시에는 대형선박에 속했다. 회사는 이 배를 개조하고 1926년 6월부터 제주-목포-오사카를 오가는 노선에 투입했다.


▲ 매일신보 2026년 6월 16일 기사.  제2군대환의 취항 소식을 전했다.


매일신보는 1926년 6월 16일자 ‘제2군대환 신항로 개시와 제주도민의 환영’이라는 기사에서 관련 내용을 전하고 있다.

기사는 미기기선이 군대환을 취항한 이래 도민에게 편리를 제공하고 환영을 받았지만, 1925년에 항해도중 구우면 고산리에 조난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전했다. 그리고 도민의 장래를 위해 제2군대환을 신조하고 이달부터 오사카-제주-목포 구간을 월 4회 운행해 장래에 큰 발전을 예기한다고 전했다. 제2군대환에 대해서는 1500톤, 속력 13노트, 승객 정원은 1000명이라고 덧붙였다.

기사가 선령 40년 된 노후선을 신조선인 것처럼 보도한 데서, 대형 선사를 홍보하려는 기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승객정원도 기사는 1000명이라고 했지만, 이번 전시회에 기록된 346명과 차이가 크다.

제2군대환은 두 가지 경로를 운항했다. 매달 6일과 26일에는 오사카를 출발해 시모노세키-부산·완도·목포·산지·애월·한림·고산·모슬포·서귀포·표선·성산포·김녕·조천을 거쳐 성산포로 입항했다. 그리고 성산포에서는 오사카로 직행했다. 그리고 매달 16일에는 오사카를 출항해 시모노세키를 거쳐 성산포로 직행했다.




제2군대환은 군함을 개조한 것이라 일반적인 여객선과는 구조적 차이가 크다. 군함은 파도와의 저항을 줄이기 위해 뱃머리가 뾰족하고 배의 폭이 좁은 특징이 있다. 결과적으로 속력과 복원력을 높여, 전투에 최대한 유리하게 하는 게 구조의 핵심이다.

그런데 여객선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군함과 정반대다. 무엇보다 승객을 많이 태우고, 배가 좌우 회전을 줄여 항해 도중에 승객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목표를 충족하기 위해서 선체 폭이 최대한 넓어야 한다.

제2군대환은 군함을 개조한 배였기 때문에, 통로나 객실은 매우 좁았을 것이다. 게다가 선령 40년이 넘은 시기에 여객선으로 투입됐기에 환경은 매우 열악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제2군대환에 승선하려는 승객 10여 명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발생했다. 매일신보는 1929년 2월 25일 ‘제주해안에 참극, 승객 10명대 익사’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며칠 전 발생한 참사를 전했다.


▲ 매일신보 1929년 2월 25일 기사. 표선해안에서 발생한 참사를 전했다.


기사에 따르면, 21일 오전 7시에 제주도 동중면 표선리 해안에 정박한 군대환에 탑승하고자 승객 10명이 종선을 타고 군대환을 향해 나아가던 중 폭풍으로 종선이 전복되어 탑승자 10명이 행방불명됐다.

기사는 배 이름을 ‘군대환’이라고 했지만, 당시는 군대환을 대신해 제2군대환이 운항하던 시기다. 도민이나 언론은 군대환과 제2군대환을 구분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사가 당시 사고를 폭풍우 때문이라고 했지만, 폭풍우 상황에서 작은 종선이 왜 떴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제2군대환은 제주-오사카 오선에 투입된 이후 20년 가까이 제주-오사카 노선을 부지런히 오갔다. 수많은 제주인은 지옥 같은 가난에서 벗어날 꿈을 꾸면서, 위험을 무릅쓰고 낡은 연락선에 몸을 실었다.

제2군대환은 태평양전쟁 막바지인 1945년 6월 1일, 미국의 오사카 대공습 때 폭격기에 격침됐다. 제2군대환이 침몰한 사건과 더불어, 제주도민의 운명도 격랑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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