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 제주도민 실어나른 군대환은 폐선 직전 노후선박

[아카이브 군대환 ①] 1923년 출항한 군대환, 2년 운항 후 좌초 사고


일제강점기 제주도민을 오사카로 실어날았던 군대환(君代丸)이 취항한 지 100년을 맞았다. 제주자치도는 7일부터 오는 11월 3일까지 제주대학교 박물관 3층 전시실에서 군대환 취항 100주년 기념하는 특별전시를 하고 있다.

군대환과 함경환, 교룡환, 목목환 등 제주도민을 일본으로 싣고 나르던 여객선과 관련한 사진과 신문기사 등이 전시됐다. 또, 이지유 작가의 영상, 조지현 사진작가의 ‘이카이노-일본속 작은 제주’, 김기삼 사진작가의 ‘일본에 뿌리내린 제주인 이야기’ 등 재일조선인의 삶을 담은 많은 작품도 전시됐다.

언급한 여객선은 단지 근대적 이동수단에 그치지 않는다. 특히 군대환의 취항은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제주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형성되고 규모가 성장하는 직접적 계기가 됐다. 재일 제주인들은 일본에서 차별, 취약한 거주환경 등과 싸우며 고향의 고유한 문화를 지켰다. 그리고 고향이 근대화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면서 제주도의 발전에 이바지했다.

제주자치도의 특별전시 내용을 기반으로 일제강점기 제주도와 일본을 연결하는 정기여객선의 변화 과정을 정리했다. -편집자 주


일제가 한반도에 진출할 무렵, 조선인들의 일본 진출도 시작됐다. 1903년에 제주도 해녀가 일본에 진출했고, 1911년 일본의 방직회사가 노동자를 모집하기 위해 제주도를 방문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은 유럽에 군수물자를 공급하며 특수를 누렸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일본 공업은 가파르게 성장했다. 일본 공장에서 일손이 모자라 조선인을 받아들이기 시작해 1922년에 일본에 진출한 제주도민은 3500명에 이르렀다.

일본으로 진출하려는 제주도민 수가 증가하자 일본의 아마사키기선은 1923년 3월, 군대환(君が代丸 기미가요마루)을 도입해 제주-오사카 정기항로 운항을 시작했다. 군대환은 1891년 네덜란드에서 건조된 여객화물선 스와르데크룬(Swaerdecroon)호를 개조한 것으로, 제주-오사카 취항 당시에 선령이 32년에 이르렀다. 선원들의 언어를 빌리면 폐선을 해도 아깝지 않을 ‘똥배’에 속했다. 제주인들은 그런 ‘똥배’에 몸을 싣고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몰렸다.


▲ 제주도 서부해안에 좌초된 군대환(사진=하라구치 토오루 제공)


▲ 군대환의 좌초를 알린 매일신보의 기사

여객수요가 증가하자 일본인들이 설립한 조선우선(朝鮮郵船)은 1924녀, 함경환(咸鏡丸, 500톤급)을 도입해 역시 제주-오사카 노선 운항했다. 함경환은 산지항을 출발해 조천·김녕·성산포·표선·서귀포·대포·모슬포·고산·한림·애월 제주도 해상을 일주하며 승객을 태운 후, 여수·삼천포·통영·마산·진해·부산 등을 거쳐 일본으로 향했는데, 시모노세키에 기항한 후 오사카에 도착했다.

1925년 9월에는 군대환이 제주도 서부 해안에 좌초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매일신보 기사에 따르면, 군대환은 오사카를 출항해 목포로 향하던 도중 1925년 9월 6일 오후 10시, 폭풍우를 만나 제주도 서부 해안으로 피했는데 맹렬한 폭풍우로 해안으로 떠밀렸다. 그 결과 선체 바닥이 크게 훼손되고 화물은 전부 침수됐는데,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무사했다. 그리고 선체는 어쩔 도리가 없어 그대로 내버려두기로 했다.

언론은 당시 좌초 원인을 폭풍우 때문이라고 했지만, 30년 넘은 선령을 참작하면, 배의 감항성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맹렬한 폭풍우를 만나 사고를 겪었지만, 승객과 승무원은 모두 무사했다는 대목도 보도 내용을 의심하게 한다.


▲ 1925년 조선인 거주구역 이카이노(사진=김기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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