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말도 궤기’ 제주어 일력에 담긴 선인의 지혜
(사)제주어보전회 '2024 제주어 일력' 학교 등에 배포
예전엔 집집이 일력이 있었다. 집에 걸어두고 날짜에 맞춰 매일 한 장씩 뜯어내며 날이 가는 것을 확인했다. 일력에 날짜와 요일 말고도 음력날짜와 물때 24절기 등 필요한 정보를 담았으니, 일력이 있어야 절기의 변화에 대비하고 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일력이 다시 주목을 받는다. 스마트폰으로 통해 필요한 정보를 확인하는 시대인데, 젊은이들이 일력을 찾는다. 일종의 복고풍인데, 젊은이들을 위해 일력에 메모지 기능을 더한 것도 있고, 날짜에 맞춰 북두칠성의 위치를 달리 표시하는 일력도 있다.
24일 현문길 선생으로부터 귀한 선물을 받았다. 역시 일력에 특별한 기능을 더한 것인데, 필자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했다. 제목이 ‘2024 오늘의 제주어’ 일력인데, (사)제주어보전회(이사장 양창용)가 도내 학교에 보급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제주어보전회가 지난해 여름부터 절기에 맞게 내용을 선정하고 제주어 문구를 다듬으며 내용을 정리했다. 2,000부를 제작했는데, 예상 밖으로 수요가 많아 필요하다는 곳에 다 전달하지 못할 정도였다고.
일력 2월 24일자를 펴니 오른쪽 상단에 ‘음력 1.15 정월대보름’이라고 적혀 절기를 알 수 있게 했다. 그리고 하단에 제주어로 ‘돌님 나 소원 들어줍서양’이라고 적고, 표준어로 ‘달님 내 소원 들어주세요’라고 번역했다. 정월대보름에 달을 보며 소원을 빌었던 풍습을 담았다.
3월 21일 자(음력 2월 12일)에는 ‘열두물 날에 굴멩이 잡으레 간다’라고 했는데, '굴멩이'는 군소를 뜻하는 제주어다. 육지에선 잘 먹지 않는 군소를 제주도에선 먹었음을 알 수 있다. 3월 25일 자엔 ‘보말도 궤기여’라고 했는데, 고둥을 고기로 여길 만큼 역시 단백질 원이 부족했다. 배고픈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문구들이다.
양창용 이사장께 전화로 제작 과정을 물었다. 양 이사장은 “일력 제작이 이렇게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작업인지 모르고 시작했다. 편집인들이 지낸 해 여름부터 모여서 작업을 하는데, 겨우 연말에야 인쇄할 수 있을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정부가 대부분 민간단체 지원비를 삭감하는 추세라 내년에도 일력을 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근심 섞인 말을 남겼다.
정예실, 현문길, 오경호, 한복선, 김현신, 이금미, 김정숙, 김신자, 이정아, 이혜정 회원이 편집인으로 참여했고, 양전형 시인이 감수했다. 편집인 모두가 제주어에 열정이 뜨겁고 대부분 문인으로도 이름을 알린 인사들이니 내용이 탄탄할 수밖에. 개학해서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일력 한 장씩 보며 제주어를 얘기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흐믓한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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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욱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