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돌목장 목가적 경관과 용천수 연못에 장엄한 일출까지 품은 오름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27) 정물오름

 제주 서쪽의 숨은 명소, 정물오름…자연과 스토리텔링이 어우러진 공간

최근 금오름이 유명세를 타면서, 인근에 위치한 정물오름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방문 후기들을 보면, 정물오름은 규모는 작지만 깊은 인상을 주는 오름으로 평가되고 있다.


▲ 목장에서 바라본 정물오름(사진=김미경)

정물오름은 당오름과 가까이 있어 멀리서 보면 높낮이나 생김새가 비슷해 구분이 쉽지 않다. 이 일대는 행정구역상 한림읍과 동광리가 맞닿아 있어, 초원을 걷다 보면 "여긴 한림, 저긴 동광"이라며 지역 경계를 두고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이 오름은 제주 서쪽 지역 오름 가운데 용천수가 솟는 드문 지형적 특성이 있다. 특히 인근의 이시돌 목장은 관광지 역할뿐 아니라 지역 경제와도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목장 한켠 아치형 주택 ‘테쉬폰’은 과거 목동이 거주하던 공간을 활용한 스토리텔링 요소로, 신선한 유제품과 지역 특산품을 홍보하는 데에도 기여하고 있다.


▲ 동쪽 사면에 꾸지뽕 터널이 있다.(사진=김미경)

또한 이 지역에서는 말을 비롯한 가축들이 광활한 초원을 거닐고 있어,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목가적 풍경을 제공한다. 관광객들에게는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풍경이자, 특별한 체험으로 기억된다.

정물오름과 그 주변은 아직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자연과 문화, 지역 경제가 조화를 이루며 ‘제주의 진짜 일상’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정물오름, 물과 생명의 숨결이 깃든 오름

정물오름은 '정수악'이라고도 불리며, 옛 책에서는 다양한 한자 표기로 등장한다. 물을 뜻하는 井(정), 汀(정), 淨(정), 正(정) 등의 글자에서 이 오름이 물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 봄까지꽃(사진=김미경)

▲ 정물오름 정상에 서면 주변 목장이 눈앞에 펼쳐진다.(사진=김미경)


정물은 오름 북서쪽에 위치한 세 개의 못을 통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이곳에는 용천수가 솟는 '안경샘'과, 분화구에서 흘러내린 물이 고여 형성된 습지가 있다. 안경샘과 수로로 연결된 늪 형태의 습지는 삼나무 조림지와 얽히고설킨 가시덩굴, 잡풀에 가려 쉽게 접근하기는 어렵지만,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중요한 생태공간이다. 제주특산 식물인 가시딸기, 산딸기 종류들은 대부분 줄기와 잎에 가시가 많은 식물이지만 가시딸기는 가시가 매우 드물다고 한다. 처음 서귀포시 천지연폭포 인근에서 발견하였다고 하는데 요즘은 오름 산자락에서도 관찰되고 있다. 안경샘에 연결된 습지에는 돌미나리가 자란다. 자연의 순환과 생명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다.


정물오름 초입에 들어서면 분화구를 감싸는 듯한 지형이 펼쳐지고, 그 안에는 묘지들이 자리 잡고 있다. 공동묘지라 하면 으레 음침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이곳은 삶과 죽음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름을 따라 이어지는 숲길은 특히 인상적이다. 초입의 곰솔 터널, 동쪽 능선의 꾸지뽕나무와 윤노리나무터널, 서쪽 능선의 낙엽활엽수림과 침엽수 혼합림 등 다양한 숲이 이어진다. 동쪽의 완만한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이시돌 목장의 목가적인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정상에서는 한라산뿐 아니라 서쪽 전역을 조망할 수 있다. 특히 해 질 녘 풍경을 감상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늦은 시간까지 이곳을 찾는다.


▲ 5월에, 정물오름에 해돋는 장면(사진=김미경)

한 여름밤에는 어떤 단체에서 클린 활동과 함께 예술인 및 시민들을 위한 힐링 프로그램을 열기도 한다. 오름 정상 부근에는 상산, 찔레, 쥐똥나무 같은 키 작은 나무들이 자라며, 산철쭉 몇 그루가 봄철 붉은 꽃으로 방문객을 맞이한다. 또 오름 남쪽 맞은편에 보이는 도너리오름에서 발원한 서부 곶자왈의 광활한 숲도 시원하게 펼쳐져, 제주 자연의 원시적인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곳은 아직 마을이 인접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공적인 개발이 적어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귀한 공간이다.

정물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 산52-1
표고 466.1미터 자체높이 151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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