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초원은 새들의 천국, 너무도 특별한 그린카펫 오름계단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⑮]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15) 낭끼오름
제2공항 건설로 절반 정도가 잘려 나갈 운명
대부분 오름은 한자 음가로 표기되어 제주어로 알려진 오름은 그리 많지 않다. 이 낭끼오름도 입구에 세워진 안내 간판에는 남거봉이라고 해 놓았다. 낭끼, 어떤 의미를 갖는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다.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단어에 꿰맞추려 한다. 예를 들면 낭은 나무라 하고, 끼는 물이 있는 곳이라고. 그래서 생기는 오류들이 많다는 건 오름 이름에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을 뿐이다. 낭끼오름, 누가 봐도 참 특이한 이름임에 틀림없다.
물을 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찾은 오름, 낭끼오름은 제2공항이 생기면 그 원형을 제대로 볼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다. 공항이 생기면 비행기 이착륙 시 안전 확보를 위하여 주변 4킬로미터 이내 제한 높이를 둔다고 한다. 이에 저촉되는 오름은 은월봉과 대왕산, 대수산봉, 낭끼오름, 후곡악, 유건에오름, 나시리오름, 모구리오름, 통오름, 독자봉이다. 10개 오름 중 유독 낭끼오름은 절반 정도나 높이를 깎아내야 하는 아픔이 생긴다. 사단법인 오름인제주가 2022년도에 ‘제2공항이 생기면 사라질 수 있는 오름’을 기획하여 탐방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사고로 제주2공항 환경영향평가에 대해 깊은 분석과 재검토가 더욱 절실할 때이다.
레드카펫보다 특별한 나무계단 탐방로
오름을 오르기 전에 주변 풍광을 둘러보는 이들은 얼마나 있을까? 낭끼오름은 고려 후기 목장이었던 수산평에 자리 잡은 나지막한 오름이다. 수산평은 고지도와 고문서에 대왕산 좌보미 궁대악 후곡악 일대라는 기록이 있다. 금백조로에서 바라보는 오름의 모습, 남쪽 방향에 있는 수산 한못 물에 비친 오름의 모습은 넓은 평야 덕분에 더 도드라지게 드러나 보이는지도 모른다.
넓은 평야 너머로 보이는 오름 능선 능선을 뒤로 한라산의 눈 덮인 모습은 아련하다. 깎아 놓은 초지의 연갈색 모습과 군데군데 억새 자락과 함께 바로 눈앞의 상록수의 푸르름은 한라산을 더 멀기만 한 존재로 만든다. 붉은 송이가 드러내 놓인 초입을 지나 서서히 오름이 시작되면 상록수와 낙엽수들이 엉기성기 빽빽이 들어선 모습이다. 그리고 곰솔 사이로 나 있는 유선형 나무계단 탐방로, 습기를 머금은 초록이끼로 감싸 안은 계단은 침엽수 사이로 비춰주는 햇살과 함께 그 어느 특별한 레드카펫보다 더 특별하게 보인다. 더불어 곰솔의 솔잎과 커다란 참나무 잎사귀들은 한겨울 토양을 감싸 주며 오르미들의 발걸음도 폭신폭신 가볍게 한다. 자체 높이가 40미터에 불과 하니 걸음은 금세 정상에 다다른다.
철새들도 쉬어가는 드넓은 습지초원
정상에 올라서니 동쪽 성산 일출봉을 비롯한 많은 오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독특한 전망대에서 잠시 쉼을 청해 본다. 정상 봉우리는 억새군락을 정리해 놓은 모습이다. 목장지대라 소와 말을 올렸던 때를 잠시 그려보며 오름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잠시나마 인위적인 계단 없이 발자국으로 만들어 놓은 길 따라 능선을 걸어 내려온다. 한겨울이지만 이곳 역시 초록과 갈색이 뒤섞인 수목들로 주변을 감상하기 힘들다. 여러 번 오르고 내려온 길인데도 새삼 능선 양옆의 모습이 가파르다는 걸 느낀다. 다시금 이곳 오름의 민둥이었을 때 모습을 상상해 본다. 북쪽에서 남동쪽으로 살짝 돌아앉은 모습일 듯하다. 내리막일 듯 하더니 평지를 걷는 듯 한 능선을 마주하며 살짝 새로움에 설레어도 본다.
수산평 넓은 초원에 자리 잡은 낭끼오름과 그 외 주변 오름들은 넓은 습지 초원을 갖고 있다. 특히 낭끼오름을 남동쪽으로 내려와 찾아간 수산 한못과 그 주변 습지는 아주 넓게 차지하고 있다. 철새들도 이곳에 머무르고 간다. 수산 한못은 큰 못이란 뜻이라고 한다. 과거 마소에게 물을 먹이기도 했고 때로는 사람도 이 물을 먹었다고 한다.
낭끼오름이란 습지초원에 있는 오름
입구에 세워진 안내 간판에는 ‘남거봉(낭끼오름)’이라고 표기했다. 이어진 설명은 자세하긴 했으나 그 설명만으로는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남거봉은 낭끼오름이라고 불리고 있으나 사람에 따라 낭곶오름, 또는 낭껏오름, 낭케오름, 남케오름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낭끼’의 낭은 어떤 변두리를 뜻하는 말로 ‘낭끼’는 나무들이 서 있는 변두리의 뜻으로 볼 수 있다.”표기되어 있다. ‘낭’은 그렇다 치더라도 ‘끼’에 대한 설명은 도무지 수긍이 가질 않는다.
표선면 하천리의 옛이름이 냇기(내끼)라고 불렀다는데 오히려 변두리보단 물과 관련이 깊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모 학자는 ‘낭끼’라는 말은 고대어로 물 혹은 습지 초원을 뜻한다고 한다. 이와 같은 말은 북방의 여러 언어에서 조금씩 다르게 사용하는데, 그중에서 몽골어권에서 유사한 발음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몽골어와 공통이라면 고려 시대를 연상하기 쉽지만 이 낭끼오름이라는 말을 가져온 고대인은 그보다도 훨씬 이전에 들어온 사람들이라고. 어쩌면 당시 사람들은 이 오름 주변에 널려있는 못과 습지들이 인상적이었거나 매우 유용했기 때문에 오름 이름에 반영했던 것 아닐까?
낭끼오름
서귀포시 성산읍 수산리 3954
표고 185.1미터 자체높이 40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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