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렁주렁 등불 같은 열매, 매일 스치는 발길에 살아남을까?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⑩]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10) 삼매봉

  초가지붕의 띠도 땔감도 소풍의 추억까지도

오름은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오름에서 먹을 것을 얻었고 초가지붕을 엮을 띠를 구하기도, 땔감도 구하러 오름을 오르기도 했다. 학생 시절 소풍으로 뛰놀던 이곳은 아주 먼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시간은 참 많은 걸 바꿔 놓았다. 지금은 산책하기 위하여, 저 멀리 풍광을 보기 위하여 그리고 자연을 즐기고자 이곳을 찾는다. 가볍게 오름을 찾는다. 하지만 불편함을 참지 못한다. 그러니 사람들의 편의성에 의해 많이 변화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 삼매봉 등반로(사진=김미경)

외돌개 주차장에서 오름을 오르기를 선택한다. 겨울의 초입, 삼매봉의 모습은 노랗게 물든 산국과 털머위의 꽃송이들로 반긴다. 오름을 오르다 보면 독특한 모습을 만난다. 계단식 모습이다. 이 지역 사람들이 과수원이나 밭으로 이용하려고 일궜던 흔적이다. 동사면은 아직도 과수원을 활용하는 모습이 보인다. 제주가 경작할 수 있는 땅이 그리 녹록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등불처럼 다가서는 아열대식물의 열매송이들”

경사가 급한 데크길은 느긋한 걸음을 만든다. 그 덕분에 제주 남쪽에서 볼 수 있는 귀한 식물들을 마주하게 된다. 짙푸른 덩굴은 어두운 숲속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지만 주렁주렁 달린 빨간 열매송이가 환한 등불처럼 다가선다. 알싸한 맛의 열매는 우리가 알고 있는 후추의 친척인 후추등이다. 아열대식물로 제주도에서도 남쪽 지방인 서귀포지역에서나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식물이기도 하다. 암수가 따로 있어 열매가 모두 달리지는 않는다. 물론 일반의 식용 후추로 쓰이진 않지만 약용식물로 이용된다고 한다.


▲ 겨울이지만 많은 식물이 꽃을 피웠다. 왼쪽 위는 삼매봉 입구/ 오른쪽 위는 산국/ 오른쪽 아래는 맥문아재비 열매/ 왼쪽 아래는 맥무아재비 군락(사진=김미경)

▲ 빨간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후추등(사진=김미경)

기후변화에 빠르게 번식하여 나무들 아래층을 차지하고 있는 맥문아재비, 기다란 잎 사이에 타원형의 열매 모습이 초록색이지만 군락을 이룬 모습에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이것 또한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함이다. 쌀밥처럼 하얗게 꽃이 피어있을 때 다시금 찾을거리를 만든다. 이곳 나무들은 마지막 모습을 노랗게 드러내면서 상록수들의 푸르름 사이에서 막바지 겨울맞이를 하고 있다.

  한라산 정상과 주변 독특한 오름들, 서귀포 시내와 범섬과 문섬

마르 형태인 하논은 외륜에 여러 개의 주봉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 삼매봉은 그중 커다란 산체의 일부분이며 일부의 최고봉일 따름이다. 주봉의 북사면 하단부로 일주도로가 생기면서 하나의 독립화산체로 보이는 오름이다. 분화구 안의 산체를 가로질러 만들어낸 길 때문에 동서 등성마루는 파괴되었다. 길을 만들면서 많은 것을 바꿔 놓았다. 삼매봉은 동녘 자락에 서귀포시 중심가와의 사이에 내를 끼고 있다. 내는 천지연폭포를 만들고 서귀포 새섬까지 흘러간다.


▲ 삼매봉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사진=김미경)

▲ 정상에서 바라본 서귀포시내(사진=김미경)

관광도시 서귀포의 명성에 걸맞게 주변 해안가에는 유명한 경승지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올레 코스로도 되어 있어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올레길 걷는 여행객들과 외국 관광객들을 흔치 않게 만날 수 있다. 그래서일까 삼매봉은 도시공원으로 조성되어 가로등과 부대시설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삼매봉은 봉수가 있었던 데서 유래, 원래는 세미오름

삼매봉은 이름에서 보면 방어 목적으로 봉수대를 설치했던 곳임을 알 수 있다. 주변이 막힘이 없어 바다에서 외적이 들어옴을 확인하여 전달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봉수대의 모습은 흔적조차 사라지고 저 멀리 남극노인성을 바라보는 곳이라는 남성대라고 하는 조망대와 쉴 수 있는 팔각정, 화장실, 체력단련시설들이 그곳을 대신하고 있다.

북쪽으로 한라산 정상과 주변 독특한 오름들의 모습, 서귀포 시내를 조망할 수 있다. 바닷가 쪽으로는 천연기념물인 범섬과 문섬도 마주할 수 있다. 주변 식생을 보니 조만간 이런 조망조차도 힘들어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그리고 오름 정상에 이런 시설들이 꼭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오름의 가치가 어떻게 결정되는가 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 듯하다.

이 오름의 이름 삼매봉은 봉수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원래는 세미양오름, 세미오름, 삼의악이 이 오름의 이름이다. 똑같은 이름이 제주시 아라동 국제대학교 맞은편에도 있다. 샘이 있는 오름이란 뜻이라고 한다. 이걸 한자로 쓴 것이 삼의악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이 삼의악에 다시 오름을 붙여 삼의악오름으로 부르다가 세미양오름으로도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름도 변하는 것 같다.

삼매봉
서귀포시 서홍동 809-1번지 일대
표고 153.6미터 자체높이 106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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