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망수, 동언새미, 섯언새미.. '큰논' 이전에 '큰호수'였다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⑪]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11) 하논분화구

 분화구를 둘러싼 바깥둘레가 무려 3.8킬로미터

삼매봉 주변 거대한 화구 내부에 또 따른 화구구와 화구원을 가지고 있다. 이 화구원이 바로 하논이다. 지금 벼를 재배하고 있는 곳을 말한다. 또 다른 화구구는 보름이오름이다. 한번 큰 화산활동으로 분화구가 만들어진 곳에 다시 화산이 분출하여 오름을 만들었으니 이중화산체라고 부른다. 하논은 약 3만 년 전에 만들어진 마르형 화산이라고 한다. 최대 직경 1,150미터, 깊이 90미터로 제주도에서 규모가 가장 큰 분화구다. 분화구를 둘러싼 바깥둘레가 3.8킬로미터에 이른다.


▲ 북쪽 등성마루에서 바라본 하논(사진=김미경)


이런 분화구의 바깥 둘레에 만들어진 여러 개의 봉우리 중 최고봉인 산체가 삼매봉이다. 지역 사람들은 그 둘레의 사방 등성마루를 하논거제라고 한다. 동쪽을 동거제, 서쪽을 섯거제, 북쪽을 웃거제라고 부른다. 하논과 하논거제를 포함한 전체를 말하는 화산체다. ‘거제’라는 말은 요즘엔 쓰이지 않는 말이다. 제주어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다만 ~곳이라고 할 때 쓰이는 경우를 볼 수 있다. 동거제라고 하면 대체로 동쪽 지경 정도의 뜻이다. 이렇게 이해를 하면서 바라본 삼매봉과 넓게 펼쳐지면서 만들어 놓은 분화구의 모습은 더 특별해 보인다.

 쌀쌀한 마음을 녹아내리게 하는 노랗게 물든 단풍

오름들이 물을 어떻게 품었을까라는 상상을 하면서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직접 대면했을 때 만 이해가 되고 그곳에서 살아 숨 쉬고 전해지는 역사 속 사실만이 진실을 말해준다. 언어로 전달되면서 의미의 오류가 생길지라도 그 단서를 기본으로 질문해 보고 해답을 찾아가는 여정은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삼매봉을 만들어 낸 분화구인 하논을 찾은 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 가볍지만은 않다.


▲동언새미에서 바라본 하논(사진=김미경)

하논분화구 방문자센터에서 내려가는 데크에서 만난 천선과나무와 산뽕나무의 노랗게 물든 단풍 모습은 쌀쌀한 마음을 녹아내리게 한다. 안쪽 능선 주변 과수원에는 노랗게 익은 감귤이 농부들의 바쁜 일손이 한창이고 밀감을 따주며 먹어보라는 제주 인심은 그 어디에서 볼 수 없는 풍경일 것이다.

이름에 걸맞게 높은 곳에서 바라본 하논분화구의 모습은 광활하다라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벼를 재배하는 곳이라 수확한 흔적들이 아직은 남아 있다. 이곳도 시간의 흐름에 많은 변화를 느낀다. 분화구 안에 낯선 나무 종류들이 자라고 있는 모습이다. 경제수종으로 키우고 있는 낙엽수들의 단풍 든 모습에 사뭇 좋다기보단 걱정이 먼저 앞선다.


아픈 기억으로 사라져간 하논마을, 이제는 소통의 길이 열리고...

이곳 하논은 약 500년 전부터 벼농사를 일구며 살아온 사람들의 역사가 담겨 있다. 분화구 바닥 북측에서 용천수가 흘러나와 풍부한 수량을 자랑한다. 몰망수라는 용천수는 아직도 그 물이 풍부하여 그 물줄기가 동남쪽으로 터져 천지연까지 흘러 폭포를 이루고 있다. 격자 모양으로 난 인공수로를 따라 논으로 유입되어 벼농사를 짓기 위한 수원으로 이용되었다고 한다. 그 주변에는 동언새미와 봉림사 안의 섯언새미가 더불어 그 수량을 더하기도. 현재 깨끗한 용천수를 이용하여 재배한 미나리를 수확하는 모습도 만날 수 있다. 삶의 터전이었던 하논마을은 아픈 기억으로 사라졌지만, 사람들은 기억을 소환하려고 올레길과 순례길 등을 통해 소통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다.

맑은 날, 분화구 안에서 하얗게 눈이 쌓인 한라산의 또렷한 산벌른내 모습과 능선에서는 서귀포 앞 바닷가와 섶섬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매력에 빠질 것이다. 봄이면 밝은 보랏빛의 자운영꽃밭 또한, 여름엔 초록빛으로 물든 벼이삭과 가을엔 벼들이 익어 고개를 숙인 황금 들판을 볼 수 있다.


▲ 하논은 분화구 안에서 샘이 솟는다. 오래 전부터 사람들은 이 물을 이용해 벼농사를 지었다. 왼쪽 위 : 몰망수 물줄기가 천지연 쪽으로 빠지는 길/ 오른쪽 위 : 몰망수에서 바라본 보롬이오름/ 오른쪽 아래 : 한라산 방향을 가리키는 수로/ 외쪽 아래 : 몰망수 물을 이용해 미나리를 키우는 밭(사진 = 김미경)  

500년 동안의 벼농사, 그전엔 샘물로 가득한 호수

이제는 농부들의 바쁜 걸음은 어디 가고 탐방객들, 순례객들만이 이리 기웃 저리 기웃하며 느릿느릿 걸어가고 있다. 그들은 뭐가 그리 재미난 지 서로 바라보고 웃으며 걸어간다. 이곳에 농사를 지은 지 500여 년이라니, 그 전에 어떤 모습이었을까? 이렇게 풍부하게 솟아나는 샘물은 어디로 흘렀을까. 전문가들의 추정에 따르면 넓은 호수였을 거라고 한다. ‘하논 호수!’ 하논이란 역사책에 대답(大沓)이라고 기록되어 있다면서 큰 논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큰 논이라는 뜻으로 한논이라 부르다가 이제는 하논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풀이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명쾌하지 않다는 느낌도 지울 수 없다.


▲ 간간이 보이는 민가 옆으로도 물이 흐른다.(사진=김미경)

그렇다면 논농사를 짓기 전에는 무엇이라고 했다는 것인가. 하논의 ‘논’이란 제주도 지명 곳곳에 남아 있는 ‘노루’와 관련이 깊다는 설명이 있다. 노루란 짐승 노루라는 뜻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고대어로 호수를 뜻한다고 한다. 지금도 몽골인 만주어에서는 호수를 ‘노르’라 한다. 아마 고대 이곳 사람들은 실생활에서도 ‘한놀’로도 발음했을 것이다. 그러니 하논은 ‘큰 호수’라는 뜻이 된다. ‘한 노르’라는 발음을 하논으로 받아들이고, 논이라는 어휘에 익숙한 기록자가 대답(大畓)이라 한자 표기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곳에 와보면 하논이 큰 호수라는 뜻으로 불렸을 것이란 설명에 실감이 간다. 정말 넓은 분화구다.



하논분화구
최대 직경 1,150미터, 깊이 90미터 둘레 3,800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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