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성벽에 가린 푸른 대지와 맑은 영혼, 벌써 그립다. “따시뗄레!”

[2024 티베트 여행기 ⑧] 에필로그 : 서안에서 서귀포로

8월 10일, 여행 8일차. 청장열차에서 내려 시닝에서 서안 행 고속열차로 갈아타고 3시간 50분을 달리니 점심시간 즈음에 서안 역에 도착했다. 라싸의 선선하던 날씨에 며칠 익숙해져 지내다 서안 역에 내리니 무덥고 습한 날씨가 엄습한다.

점심을 먹고 중국 최대 규모라는 서안 성벽을 관람했다. 명나라 초기에 건설되기 시작했다는 서안 성벽은 방어용 성벽으로 동서로 길게 늘어서 있고, 동서남북에 4개의 성문과 종루도 있었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도 휴가철이기 때문인지 중국인 관광객들이 가득하다. 라싸의 관광지에서 본 것처럼, 서안 성벽에도 화려한 전통의상에 진한 화장을 한 사람들이 사진사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중국에서 인기몰이를 한 사극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따라 시대물의 의상과 화장, 머리장식 등으로 치장하고, 유명 문화재 앞에서 사진을 찍는 것이 유행이라 한다. 진한 화장과 의상으로 사진사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하는 모녀의 모습을 나도 사진에 담았지만, 너무 인위적이고 키치(kitsch)한 모습들이라 아쉬웠다. 꾸미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모녀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더 예뻤을 텐데...


▲ 서안의 중심인 종루. 이곳 주변엔 늘 사람이 북적인다.(사진=유효숙)

걸어서 성벽 가까이에 있는 회족 거리까지 가서 자유 시간을 가졌다. 회족 거리는 여러 음식들을 파는 거리로 유명하다는데, 여름의 열기와 각 가게에서 뿜어내는 다양한 음식 냄새, 엄청난 인파 속에 섞이다 보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친구와 골목골목의 길거리 가게들을 구경하다 만남의 장소였던 에어컨이 나오는 카페로 갔다. 대부분의 일행들이 이미 지친 얼굴로 앉아들 있었다.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와 여행의 마지막 날을 보냈다. 중국에서는 2023년 7월부터 반(反)간첩법의 시행으로 중국내의 군사시설을 촬영하거나, 중국의 국가안보, 이익에 관한 자료를 인터넷에서 검색하거나, 중국 당국에 비판적인 기사를 검색, 저장하는 경우, 중국 내 시위현장을 방문하거나 촬영한 경우, 중국내 종교 활동을 하는 경우에는 출입국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한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티베트에서는 가이드를 동반하지 않고 호텔 근처를 산책하는 것조차 금지되었고, 가이드는 공안의 사진을 찍으면 큰일 난다고 신신당부했다. 여행사에서 나눠 준 티베트 안내 책자의 달라이 라마 사진은 테이프로 가려져 있을 정도였다.


▲ 중국 고대 성곽 주변에는 여행객이 넘치는데, 이런 곳에서 옛날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는 게 유행이다.(사진=유효숙) 

여행 전 중국 데이터 로밍을 했는데, 중국에서 구글뿐 아니라 네이버, 다음 같은 검색 엔진들도 차단당한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고 있었다. 로밍을 했지만 나에게는 언어학습 앱 듀오링고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먹통이었다. 이상하게도 다른 일행들은 라싸에서도 카카오톡이 터져서 단체방을 만들어 공지사항과 사진을 공유하고 있었는데, 나와 룸메이트인 친구는 아예 초대가 안 된다 했고, 우리에게만 이상하게도 카카오톡은 아예 열리지도 않았다. 이는 라싸를 떠나 서안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2011년 인도 여행 중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를 여행했고, 2019년에는 티베트만큼이나 중국 정부가 삼엄한 주의를 기울이는 신장, 위구르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어 ‘설마 출입국관리소에 요주의 인물로 기록이라도 됐나?’ 라는 의심을 잠깐 했지만, 끝끝내 다른 사람들은 되는데 나와 친구는 안 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서안의 회족거리의 두 모습. 회족거리는 과거 아랍인들이 정착해 만들어졌으며, 실크로드의 출발점이다. 시장엔 사람이 붐비고, 뒷골목에선 고단한 라이더들이 숨을 돌리고 있다.(사진=유효숙)


우리가 여행을 한 8월에는 티베트를 여행하기 위해 중국 비자와 티베트 여행허가서가 필요했지만, 2024년 11월 이후 중국을 관광 목적으로 방문하는 한국 국적자의 비자가 면제되었다. 그러나 티베트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티베트 허가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한다.


여행 9일 차인 8월 11일, 호텔에서 느긋한 오전을 보내고 인천공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3시간 남짓한 비행 후 오후 5시경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짐을 찾고 여행을 함께 한 일행들과 인사를 나눈 후, 제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기 위해 김포공항 행 리무진을 타러 가기 위해 서둘렀다. 서울행 버스를 타는 친구가 승강장까지 배웅해 주었다. 무사귀환을 서로서로 축하하며 친구와 헤어져 버스에 올라 멀어지는 친구에게 손을 흔들었다.

김포에서 제주행 국내선을 타고 제주공항에서 거의 마지막 리무진 버스를 타고 깜깜한 밤에야 집에 도착했다. 열흘 동안 혼자 집을 지킨 고양이 달이가 반가워서 꼬리를 바르르 떤다. 달이를 매일매일 보살피러 와 준 서귀포 친구들 덕분에 떠날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장 자크 아노 감독이 1997년 만든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을 보았다. 감독인 장 자크 아노도, 젊은 달라이 라마와 우정을 나누는 독일인 탐험가로 연기한 주연 배우 브레드 피트도, 아직까지도 티베트뿐 아니라 중국 입국이 금지되었다 한다. 티베트 여행 중 지인께서 선물해 주신 고미숙의 <청년 붓다>를 읽었다. 문성 공주가 송첸 캄포 왕에게 시집오면서 불상을 가져와서 중국에서 티베트로 불교가 전래되는 이야기를 티베트에서 가이드에게 설명 들었는데, 가져온 책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왔다.

여행에서 돌아와 박완서 작가가 쓴 티베트, 네팔 여행기 <모독>도 읽었다. 1996년 출판된 <모독>을 읽어보니 지금 보다 여행 인프라가 훨씬 열악했을 테고, 당시의 티베트 여행이 많이 고생스러우셨을 듯하다. 이용한의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길. 티베트, 차마고도를 가다>를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티베트 여행을 꿈꾸며 오래 전 읽었던 강제윤의 <부처가 있어도 부처가 오지 않는 나라>와 후지와라 신야의 <티베트 방랑>을 책장에서 꺼내 다시 뒤적여 보았다.

서귀포로 돌아오자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무지막지한 더위와 습기가 계속되었다. 일기예보에서는 티베트 고기압의 영향으로 더위가 지속된다고 한다. 끝나지 않는 더위에 지치며 일기예보에서 티베트 고기압 이야기를 들을 때 마다, 티베트의 고원과 야크 떼들, 푸르른 호수, 그리고 순한 눈매의 사람들이 떠올랐다.

십 수 년 전 여행했던 티베트인들의 망명지였던 인도 다람살라가 또한 기억에 많이 떠올랐다. 티베트 독립을 위해 분신자살한 청년들의 사진, 이름들이 게재되어 있던 광장의 충격적인 현수막들. 어린 아이들이 천진난만한 얼굴로 공부하던 티베트인들의 학교. 반나절 만에 티베트 풍의 블라우스를 맞춰 주던 선한 얼굴의 티베트 양장점의 재봉사 아주머니, 이른 아침 아기를 업고 길거리에 펼친 돗자리에 가득 쌓인 망고를 팔며 덤으로 여러 개 더 집어주던 젊은 여인의 순한 미소. 그들과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웃음과 몸짓으로 소통했었다. 아마도 다람살라에서 만난 사람들의 기억으로 언젠가는 티베트 본토를 꼭 여행하고 싶다고 바랐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세상을 만나게 하는 여행은 한 뼘이라도 나를 겸허하게 만들고, 성장시킨다고 믿는다.
떠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돌아올 곳이 있음에 감사한다.

“따시뗄레!”

“축복, 행운이 있기를!” 이란 의미의 이 티베트 인사를 정작 티베트인들에게는 건네지 못했다. 여행기 연재를 읽어주신 분들께 이 인사를 보낸다.

유효숙
서울에서 태어나 프랑스에서 연극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몇 년 전 은퇴했다. 지금은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집에서 책을 읽고 번역을 하며 노랑 고양이 달이와 함께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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