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같은 풍경과 쏟아지는 별빛, 청장열차 21시간의 선물

[2024 티베트 여행기 ⑦] 라싸에서 시짱까지 청장열차 21시간

8월 9일, 티베트를 떠나는 날이다. 이른 아침을 먹고 호텔을 떠나 기차역으로 향했다. 티베트 고원을 가로지르는 청장열차를 타고 시닝까지 간 후, 고속열차로 환승해서 서안으로 돌아가는 일정이다. 칭하이성(靑海省)의 시닝과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의 라싸를 연결하는 철도는 칭하이성의 칭, 시짱의 짱을 각기 가져와 칭짱열차(청장열차)라 불린다.

하늘 아래 가장 높은 4500m 고원을 가로지르는 이 열차는 라싸에서 시닝까지 약 21시간 걸린다. 14량으로 이뤄진 청장열차는 나취, 안두어, 퉈퉈허, 거얼무 등의 역에 정차한다. 철도의 총 길이는 1956km이고 최대 해발고도는 5072m라 한다. 1958년 착공한 이 열차는 2006년에 개통되었다.


▲ 청장열차는 21시간 동안 라싸에서 시닝까지 1956km 구간을 달린다. 왼쪽 위 : 청장열차 노선도/ 오른쪽 위 : 청장열차 4인실 침대칸/ 오른쪽 아래 : 청장열차 도시락/ 왼쪽 아래 : 청장열차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사진=유효숙)  

오전 9시25분, 청장열차가 라싸를 출발했다. 2층 침대가 있는 4인실 침대칸으로 배정받았다. 친구와 나처럼 함께 온 여자 분 두 분이 룸메이트가 되었다. 조금 더 젊었던 친구와 내가 2층 침대를 쓰기로 했는데 사다리를 타고 2층에 오르려면 곡예를 해야 했다. 룸메이트로 배정받은 분들과도 며칠 함께 다녀서 조금은 친숙해져 서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간식을 나눠먹었다.

어제 삼겹살을 먹은 한국식당에서 주문한 김밥 도시락으로 점심을 함께 먹었다. 혼자 오신 분, 인솔자 등이 도시락을 들고 우리 칸으로 와서 빼곡히 앉아 김밥을 함께 먹었다. 열차에는 량마다 온수가 나오는 식수대가 있고, 칸마다 포트가 준비되어 있어서 식사 후 차나 커피도 끓여서 마실 수 있었다. 친구와 나는 한국에서 원두커피를 가져왔는데 우리 칸에 인스턴트커피가 아닌 원두커피가 있다는 소문이 돌자 일행 여러 분이 커피를 얻으러 와서 기꺼이 나누어 드렸다. 간식을 파는 수레가 여러 대 지나가는데 야크 밀크로 만든 사탕이 인기였다.


▲ 청장열차 창밖에 티베트의 초원이 드넓게 펼쳐졌다.(사진=유효숙)

차량마다 앞뒤로 세면대, 화장실이 있었는데 우리 칸 근처의 화장실은 다행히도 양변기였고 여행 내내 깨끗이 유지되는 걸 보니 청소를 자주 하는 것 같았다. 휴지는 제공되지 않는다 하여 한국에서부터 두루마리 휴지와 세수할 수건을 들고 왔다. 제주에 왔던 제자가 여행할 때 쓰시라며 선물한 1회용 베개 커버를 4장 챙겨와 친구와 룸메이트들에게도 한 장씩 나눠드렸다. 모두들 꼭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좋아하시고, 너무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고 칭찬하는 덕담들을 해 주셨다. 베개와 이불이 제공되는 침대칸이지만 매번 손님이 바뀔 때마다 세탁하지는 못 할 터이니 조금은 꺼림칙했는데, 일회용 베개 커버를 베개 위에 얹으니 상큼하게 누울 수 있었다.

침대칸에는 산소를 공급하는 장치가 있어서 버튼을 누르면 산소가 공급되었다. 5072m의 탕구라 역을 지날 때는 고도가 높아지니 산소 공급 버튼을 몇 번 눌렀는데 그 때 마다 앳된 역무원이 나타나서 “괜찮으세요? 아프신 데는 없으세요?” 하고 묻고 갔다.


▲ 바다처럼 드넓은 춰나호의 풍경은 정장열차가 주는 선물이다.(사진=유효숙)

청장열차의 묘미는 창밖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풍경을 감상하는 것이었다. 야크 떼를 방목하는 드넓은 초원, 거대한 산맥들, 바다처럼 펼쳐진 호수가 지나가는 모습은 입을 떡 벌릴 만큼 장관이었다. 지나가는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칠 세라 모두들 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창 밖 풍경을 감상했다. 각자 창밖을 멍 때리며 보고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가져온 책을 읽기도, 낮잠을 자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했다. 오후 3시경 세계에서 제일 높은 담수호라는 해발 4594m의 춰나호 역을 지나니 그림 같은 호수의 풍경이 펼쳐진다.

기차 안에서 먹을 컵라면 등을 가져오라 했는데 친구와 나는 현지식을 사 먹어 보자고 했었다. 나는 달랑 도시락 김 4팩, 친구는 직접 만든 반찬을 가져왔는데 막상 저녁 먹을 시간에 열어보니 냉장고가 없는 라싸 호텔에서 며칠을 보낸 반찬들이 변해서 먹을 수 없었다. 같은 칸 룸메이트가 되신 분 중 한 분이 컵라면 4개를 가져오셔서 우리에게도 하나씩 나눠주셨다. 지나가는 수레에서 현지 도시락을 사 먹기로 했다. 점심 도시락으로 받은 김밥도 많이 남아서 도시락은 하나만 사기로 했다. 야채와 고기반찬 등으로 구성된 도시락은 40위안이었는데 다들 입에 맞지 않아 해서 컵라면을 맛있게 먹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차창 밖 석양이 아름다웠다. 저녁 10시에 소등을 한다 해서 모두 세수를 하고 침대에 누웠다. 뒤척거리는데 인솔자가 문을 두드리며 창밖의 별을 보라 소리친다. 2층 침대에서 내려와 소등한 채 창밖을 보니 컴컴한 밤하늘에 별이 쏟아질 듯 많았다. 모두들 “아!” 하는 경탄의 소리를 지른 후, 말을 잊은 채 조용히 별이 가득한 창밖의 하늘만을 한참 쳐다보았다.


▲ 새벽에 시닝역에 도착했다. 왼쪽이 시닝역이고 오른쪽은 우리가 타고 온 열차다.(사진=유효숙)

밤새 잠은 안 와 뒤척뒤척 부스럭 거렸더니 아래 칸에서 주무신 분이 나 때문에 제대로 못 주무신 모양이었다. 자는 둥 마는 둥 어느새 기차에서 21시간을 보내고, 8월 10일 아침 6시6분 시닝 역에 도착했다. 역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하고 서안 행 고속열차로 갈아타서 3시간 50분 탑승 후 12시가 넘어 서안 북 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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