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어 좇아 헐떡이며 올랐는데, 마침내 신령스러운 속살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⑤]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5) 설오름

 희미한 길, 그러나 희열을 주는 길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계절, 사람들은 낯선 곳을 찾아 나선다. 일상생활에서 벗어나 뭔가 회복해 보고자 움직인다. 왜 오름을 오를까. 많은 사람이 오르고 내려온다. 그리곤 sns에 글들을 남긴다. 지칠 만도 한데 사람들은 오히려 힐링했다고 좋아한다. 이유 없는 발걸음일지라도 오르는 경험을 한 순간 만족감과 올랐다는 통쾌함을 느낀다. 그 경험치가 자연을 찾는 특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 멀리서 바라본 설오름 전경(사진=김미경)

유명한 곳,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곳, 자연 상태로 남아 있는 곳 등을 선택지로 찾게 된다. 설오름은 유명하지도 않고 탐방로도 정비되어 있지 않다. 편리한 길 안내도 탐방로 입구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는다. 탐방로 안내판 설치가 되어있는 곳으로 오르면 큰 낭패를 겪게 된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길, 발길이 닿아 자연스레 난 길, 이 희미한 길을 따라갈 수밖에 없는 설오름의 탐방은 쉽지 않다. 하지만 낯선 경험에서 새로운 희열을 맞보게 된다. 몇 번의 발걸음으로 찾아낸 길, 표선배수지를 기억하면 된다. 동쪽으로 돌아가면 급경사지만 편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멀리서 가까이서, 가을 색은 짙어지고

설오름에도 가을은 오고 있었다. 짙은 침엽수림과의 구분선은 가을 퇴색 잎들이 말해준다.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확연하게 드러내 보인다. 굼부리 안에서 재배되고 있는 채소들의 파릇파릇한 초록색은 오름 식생의 특징을 더 도드라지게 한다. 오름 안으로 들어가면 침엽수림의 벌목으로 벌어져 빛이 들어온 사이사이, 잡목들과 가시덤불들이 저마다 겨울 준비를 하고 있다.


▲ 새로 씨앗을 준비하는 생명들. 왼쪽 위에서 시계방향으로 둥글레-백량금-큰도둑놈의갈고리-사스레피(사진=김미경)


어디서 날아왔는지 낙엽수들은 오름 언저리에 터줏대감처럼 경사진 오름 비탈길의 훼손을 막아주고 있다. 덤불들은 기다란 줄기만 드러낸다. 나무만 의지한 채 이파리들은 볼품없이 퇴색되어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풀들은 반짝 말라 지나가는 나그네를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갈고리 같은 털을 이용하여 옷에 달라붙어 새로운 세상으로 이동한다.

 정상에서의 만남, 지역 토박이와의 대화

일제 강점기에 많은 조림을 했다는 상수리나무, 제주시 외도동 탐라 유적은 2~4세 경 유적이라 한다. 여기서 상수리나무 계통의 목탄이 발굴되었다. 이 목탄이 떡갈나무인지, 졸참나무인지 아니면 신갈나무인지, 그도 저도 아닌 또 다른 참나무 종류인지 분명히 밝혀지진 않았다.


▲ 침엽수(삼나무)와 낙엽활엽수(상수리나무) 군락의 경계(사진=김미경)

만약 이 목탄이 상수리나무에서 나온 것이라면 이 나무는 제주 고유종일 것이다. 숨소리는 거칠어지고 발걸음도 더뎌진다. 하늘이 조금 열린 사이로 드러난 갑선이오름은 더 반갑기만 하다. 정상에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있다. 이곳을 10여 년 넘게 지켜온 분을 만나 주변 이야기를 듣는 것은 행운일 것이다. 인적이 드문 이곳에서 만남은 더욱 반갑기만 하다. 주변 조망이 좋아 설치해 놓은 곳임에도 주변 식생들의 성장으로 시야가 가려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한다. 정상부는 북쪽 능선 따라 이동하면 삼각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록산, 따라비오름 등 동쪽 오름들과 저 멀리 성산일출봉까지 조망이 가능하다.

다른 오름에는 없는 모노레일이 가파른 비탈에 설치되어 있다. 급경사를 따라 설치된 레일을 따라가다 보면 정상 가까이에 커다란 돌무더기를 볼 수 있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느껴진다. 무엇에 쓰이는 것일까 궁금증이 풀린다. 가시리마을 주민의 무사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치르는 유교식 마을제인 포제를 위한 제단이다. 한밤중에 포제단까지 제물을 나르는 어려움에 2007년 이 레일을 설치했다고 한다.


▲ 포제단과 그 주변.  포제단은 포신에게 유교식 제를 드리는 제단이다. 외쪽은 포제단 가는 길이고, 오른쪽 아래가 포제단이다.(사진=김미경)


바위와 절벽 그리고 물까지, 없는 게 없는 오름

무언가에 의지 하고픈 맘이 더 컸을까 오름 꼭대기까지 힘들게 올라 조상들은 무슨 연유로 이곳에 제사를 지냈을까. 남쪽 봉우리에는 커다란 바위들이 모여 암벽을 이룬 모습이다. 돌틈 사이사이 힘겹다기보다는 모여들어 서로 의지하며 살고 있는 동백나무와 천선과나무 군락, 그곳의 웅장함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 주고 있다. 옛사람들에게도 이곳이 신령스럽고 그들의 맘을 헤아려 줄 것 같았을까.

또한 오름의 기슭에는 두 개의 물웅덩이가 있다. 수도가 보급되기 전, 이곳의 물은 마을 주민들의 식수용, 포제를 지내는 제주를 마련할 때 꼭 이 물을 사용하였다고 하니 아주 귀하디귀한 존재였을 것이다.


▲ 설오름이 품은 샘. 이 샘이 있어 생활용수를 구하고 이곳에서 포제를 올린다.(사진=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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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은 만주어에서 샘을 뜻한다는 고어, 물이 있을 것이라는 가정 하에 찾은 오름, 잡목들과 침엽수림, 활엽수림 등이 혼재하여 그 속의 모습을 확인하지 못하였을 때의 실망감보다 재 탐방하여 물을 발견하였을 때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물론 탐방하다보면 물을 만날 수도 있다.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또 다른 의미부여 이다.

낯설음과 동시에 설익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오름, 작은 오름임에도 그 웅장함과 신성한 공간임을 확인하게 된다. 조금은 천천히 변화되기만을 바라는 오르미의 맘을 전하고 싶다.


설오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1607-4
표고 238미터 자체높이 98미터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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