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쁜 숨 내쉰 뒤 마주하는 붉은 속살, 이건 너무 특별해!!

[김미경의 생태문화 탐사, 오름 올라 ②]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들(2)

 격렬한 폭발과 용암을 쏟아내는 화산활동의 현장

람사르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물영아리오름’과 서영아리라고도 부르고 있는 ‘영아리오름’은 다른 오름임을 명심하자.


▲ 영아리숲(사진=김미경)

또 다른 특별함을 만날 수 있는 오름, 바로 영아리오름이다. 400여 제주의 '오름'은 독립화산체다. 과거에는 기생화산이라고 설명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저 깊은 맨틀 내 제각각 만들어진 마그마방에서 지표면을 뚫고 분출한 별개의 화산이라고 한다. 이 화산체가 무려 400여 개라니 과연 제주도는 오름의 왕국이다. 대부분 화산쇄설물인 송이로 되어있다. 하지만 이 오름은 습지 주변으로 바윗덩어리들이 블록처럼 떨어져 내린 모습이다. 지질학에서는 아아용암이라고 한다.


중산간에서 깊숙이 들어가 자리 잡은 이곳 분화구, 왜 물이 고였나? 옛사람들은 물이 고여 있으면 이용하는데 목적을 뒀겠지만 지금은 ‘왜’라는 질문을 한다. 용암이 식을 때 부서지지 않고 판형으로 남아있게 된다면 물이 새지 않는 바닥이 된다. 이를 ‘파호이호이용암’이라 부른다. 예전에는 동백동산에만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탐사를 하다 보면 제주 서부지역 중산간 곳곳에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나도송이풀(왼쪽)과 개구리미나리(오른쪽)(사진=김미경)

▲ 도둑놈의갈구리(왼쪽)와 씨눈난초(오른쪽)(사진=김미경)

용암이 분출하다가 종처럼 굳어져 만들어진 산방산, 수월봉 같이 물을 만나 퇴적물로 쌓여 만들어 낸 수성화산체의 오름들도 있다. 이곳은 또 다른 형태다. 천천히 흘러내리며 굳어진 용암 위로 습지를 형성한 모습과 강렬하게 쏟아내는 용암이 빠르게 식어 만들어 낸 돌무더기들이 당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화산은 화산활동 당시 격렬한 폭발과 서서히 용암을 쏟아내는 화산활동이 동시적으로 혹은 순차적으로 일어났을 것이다. 이런 화산은 제주도에서 흔치 않다.


 새빨간 바위, 화산분출물의 응결로 만들어져

가파른 바위를 힘겹게 오르면 어디 이런 데가 있었나 싶게 평평하여 마치 노래라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길을 만난다. 제주조릿대가 돌무더기를 무너지지 않게 보호하기라도 하듯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키 높이 억새와 키 작은 나무들이 능선을 감싸 안는다. 높은 곳에서 마주하는 바람이 나무의 높이를 조절했을까. 멀리 바라보기에 거침이 없다. 서쪽을 휘휘 굽이돌아 남쪽방향으로 틀면서 만들어 낸 용암 위에 온대와 난대식물의 크고 작은 활엽수와 침엽수들이 종에 따라 연하고 진한 구분선을 만들어 낸다.


▲ 영아리오름을 오르다 만난 돌과 바위. 바위와 나무가 서로 어우러져 숲을 이룬다. 정상부에 쌍둥이바위(오른쪽 위)가 있고, 붉은 스코리아가 드러난다.(사진=김미경)

정상엔 특별함이 있다. 두 시간 정도의 발걸음을 딱! 멈추게 한다. 유명한 쌍둥이바위가 들어온다. 조금 밑으로는 그보다 더 큰 바위도 있다. 붉은 바위라니. 듣도 보도 못한 바위 색이라고나 할까. 바닥은 붉은 스코리아(송이라고도 하는 화산쇄설물이다)다. 오름의 속살이다. 이 바위들은 이런 화산분출물이 굳어 만들어졌다. 지질학적으로는 화산쇄설물퇴적암이라 한다. 송이의 흔적은 화산이 터졌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증거다.

멀리 한라산 정상 남벽의 깎아내린 모습은 바로 눈앞이듯 가깝다. 자연이 펼쳐 놓은 풍광을 바라보며 무수히 지난 시간들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조금은 더 천천히 변하길 바래본다.

 산이 갖는 의미, 현대인과 고대인의 차이

산은 언제부터 불리었는가, 누가 불렀을까, 그들에게 산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한라산은 왜 특별했을까, 고대인들과 현대인들에게 무엇 때문에 왜 다르게 변화해 왔을까?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모든 것이 흐른다.”라고 말한 것처럼 세상 모든 것은 흐르면서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알면서도 가끔 그걸 잊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갖는다. 세상은 너무 빠르고 너무 많은 변화를 달리기에.


▲ 영아리오름(사진=김미경)

오르고자 하는 오름을 알고자 함은 멀리서 바라보아야 그 오름을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어쩌면 옛사람들은 멀리서 바라보는 오름을 이야기하면서 오름의 이름을 불렀기에 수많은 오름 중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경우가 생기는 게 아닐까. 옆 오름보다 높거나 낮거나 뾰족하거나 편편하거나 물이 있는지 없는지 바위가 있는지 없는지 등등 다른 곳에서 어떻게 불리는지는 걱정하지 않았을 듯, 서로 소통할 수만 있으면 된 것일지도 모른다.

가까이에서 바라본 영아리오름은 60-70년대 조림으로 조성된 삼나무 편백나무 곰솔 등의 침엽수림으로 경계선을 만든다. 굽이돌아 만들어 낸 천연습지에 살고 있는 식생뿐만 아니라 계절마다 찾아오는 철새들의 보금자리와 먹이를 제공한다. 주변 돌 의지 낭 의지하면서 자라고 있는 나무들의 모습을 보면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현대인처럼 복잡한 생각들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세상사 잠시 잊을 수 있는 곳, 오름을 올라 보자.


▲ 영아리오름 정상에 있는 나무 안내판(사진=김미경)

두메 깊숙한 곳에 들어앉아 오름나그네를 기다리며 쉴 곳을 마련하기라도 하듯 마른 섬에 물을 품은 오름, 서부 중산간 위치한 ‘영아리오름’이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신비로운 풍광뿐만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살아가고 있는 생태계를 마주할 때면 오래오래 보전되어 후손들에게도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 절로 든다.

영아리오름, 안덕면 상천 산24번지
표고 693m, 자체높이 93m



김미경
오름해설사, 숲해설가 등으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다. 오름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모임 사단법인 오름인제주와 한라산생태문화연구소 사무국장으로도 열심이다. 한림북카페 책한모금을 운영하면서 오랫동안 개인 블로그를 통해 200여 편의 생태문화 관련 글과 사진을 게재해 왔다. 본 기획을 통해 수많은 독자와 소통하고 공감하는 마당을 만들어 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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