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이 박힌 인생, 하얀 꽃으로 환생했나

[주말엔 꽃] 부추 꽃

9월 중순까지 가마솥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날씨는 계절을 잃고 헤맨다. 까뮈가 에세이 ‘수수께끼’의 첫 문장에 남긴 대로 ‘하늘 꼭대기에서 쏟아진 햇살의 물결이 우리 주변의 들판에서 격렬하게 튀어 오른다.’ 차를 운전하는데 너무 무더워 창문을 열기도 무섭고, 차를 세워도 내릴 엄두가 나지 않는다. 특히 정오를 갓 넘긴 오후에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마을길을 운전하는데, 도로변 돌담 아래 하얗게 피어난 꽃을 보고 차를 멈췄다. 안개꽃처럼 하얀 꽃이 무더기로 피었는데, 마치 눈송이가 내려앉은 것 같다. 누가 왜 이 갓길에 부추를 심었을까? 차를 세울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자세히 보니 부추가 꽃대를 올리고 하얀 꽃을 피웠다. 봄에는 향긋한 줄기로 입맛을 돋구었는데, 무더운 날엔 꽃을 선물하니 여간 고맙지 않다.


▲ 부추가 꽃대를 올리고 하얗게 꽃을 피웠다.(사진=장태욱)

부추는 동부아시아가 원산인 다년생 식물로, 일본·중국·한국·인도·네팔·태국·필리핀에서 재배되고 있다. 요리가 발달한 중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필수 식재료로 활용됐고 오랫동안 초본 약제로 이용되어 왔다.

부추에 대한 추억은 스무 살 무렵 부산에서 돼지국밥을 처음 먹던 날에 있다. 부산 중구에 부산데파트가 있다. 부산에서 최초로 지어진 주상복합건물인데, 1980년대 그 주변에 ‘밀양국밥’이 있었다.

부산데파트 앞에서 버스를 타면 학교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는데, 버스를 타기 전에 국밥 한 그릇으로 배를 채우면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밥 위에 부추를 듬뿍 얹으면 돼지 냄새도, 국물의 느끼한 맛도 감쪽같이 사라졌다. 거기에 새우젓 조금 얹으면 소울 푸드 완성이었다. 그걸로 배 채우면 1주일 후 외출 때까지 견딜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도 얻었다.


▲ 꽃대 끝에 꽃망울이 맺혔다.(사진=장태욱)

한방에서는 부추에 다양한 효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장염이나 설사에 좋고, 흉통을 없애고 심혈관질환을 예방하는 효능이 있다고 한다. 게다가 남성에도 좋다고 하니, 부추를 마당에 심어놓고 날마다 먹을 수밖에.

부추는 다년생 채소다. 씨앗을 심으면 1년 이내에 발아하고, 뿌리에서 1포기당 5〜10개 잎줄기가 나온다. 부추의 수확은 줄기의 일부를 잘라내는 것이다. 잎 길이가 23∼25cm 정도가 되면 줄기를 자르는데, 지면에서 3∼4cm 위 부위를 자르면 좋다. 그러면 잘린 부위에서 다시 줄기가 자란다.

‘부추를 봄에 먹으면 향기롭지만 여름에 먹으면 냄새가 난다’고 했다. 봄이 제철인데, 여름에는 질겨져서 먹기에 불편하다. 한여름에 줄기에서 꽃대가 오르고, 꽃대 끝에서 낙하산 모양으로 꽃대가 갈라진 후 하얀 꽃을 피운다. 꽃대는 8∼9월에 오르는 게 일반적인데, 최근에는 6월부터 추대현상이 발생한다.

추대 꽃에 꽃망울이 맺히고, 하나둘 꽃잎을 펼친다. 꽃잎은 6장인데, 그 안에 암술 1개와 수술 6개씩 나온다. 꽃밥은 노란색으로 흰색 꽃잎과 대비를 이룬다.

흰 재, 저 흰 재 부추밭에 뿌려야지/ 흰 부추꽃이 피어나면 목숨이 환해질까/ 흰 부추꽃 그 환한 환생
-박남준의 ‘흰 부추꽃으로’ 3연


시인은 사는 게 서투르고 고달프다. 서툰 몸으로 산에서 나무를 잘라오고, 옹이 박힌 나무는 불길에 잘도 탄다. 나무가 타고 남은 재를 부추밭에 뿌리면 옹이 박힌 나무처럼 고단한 삶은 하얀 꽃을 피울 것이다. 다음 생은 부추꽃처럼 화사하게 태어날 수 있기를 염원한다.

하늘 꼭대기에서 쏟아진 햇살의 물결을 받고, 부추 꽃이 하얗게 꽃을 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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