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되돌려 노란 꽃, 가을을 부른다

[주말엔 꽃] 마타니 꽃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 삼촌 무덤에 벌초했다. 헛헛한 마음이 사그라지지 않는데, 노란 마타니 꽃을 보면서 마음에 생기를 되찾았다.

제주도사람들은 처서가 지난 벌초를 시작해 음력 8월이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한다. 너무 일찍 시작하면 무덥기도 하고, 무덤에 다시 풀이 자랄 수 있다. 너무 늦으면 가을농사로 분주해질 수 있고, 추석 준비와도 시간이 겹친다. 8월 31일 아침, 삼촌 무덤에 혼자 벌초를 했다.


▲ 마타니 꽃이 노랗게 피었다.(사진=장태욱)

아버지의 이복동생인데, 할아버지가 혼외로 낳은 아들이다.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후, 삼촌은 고아원에 맡겨졌다고 한다. 이후 집안 어른들은 고아원에서 생활하는 핏줄을 집으로 데려왔다. 마땅히 거둘 사람이 없어서 할머니(내겐 증조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리고 청년기에 결혼도 안 한 상황에서 불의의 일로 세상을 떠났다. 집안 어른들은 마을 공동묘지에 삼촌의 묘를 썼다. 결혼을 한 했으니 자식도 없었고, 세월이 흐르자 삼촌 무덤에 풀을 깎는 것은 나의 몫이 되었다. 집안에서 도와주는 손이 있을 때도 있고, 혼자 풀을 깎을 때도 있다.

고달프거나 귀찮거나 그런 건 없다. 어려서 가련하게 자랐고 불우하게 살다가 생을 마감했느니, 위로가 필요한 인생이다. 돌아가신 삼촌을 위해 풀을 깎는 일이라도 넘아 있으니, 오히려 다행 아니겠나?


▲ 자세히 보면 작은 꽃 여러 개가 뭉쳐있다. 작은 꽃몽오리가 꽃잎을 펼쳐 암술과 수술을 낸다.(사진=장태욱)

예초기를 돌려 무덤에 풀을 깎고 돌아오려는데, 마타리 꽃이 무덤가에서 환하게 웃는다. 띠풀로 덮인 공동묘지는 자세히 보니 닭의장풀, 등골나물, 잔대, 엉겅퀴가 꽃잔치를 펼쳤다. 그리고 그런 키 작은 꽃들 위로 마타리가 노란 꽃을 우뚝 세웠다. 해마다 이 묘지에서 어김없이 만나는 꽃인데, 올해는 무더위 끝에 만나 터라 더욱 반갑다.

마타리는 우리나라와 일본, 타이완, 중국, 시베리아 동부 산이나 들에서 자란다.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는데, 키 60~150㎝ 정도가 될 때까지 자란다. 8월 초순부터 가지나 원줄이의 끝에 노란 꽃을 피운다. 꽃은 덩어리로 뭉쳐 있는데, 자세히 보니 좁쌀처럼 작은 꽃 몽우리가 많이 뭉쳐 있다가 꽃잎을 펼친다. 작은 꽃마다 3~4mm의 꽃잎 5장을 펴는데, 가운데에 4개의 수술과 1개 암술을 낸다. 9~10월이면 타원 모양의 열매를 만든다.


▲ 티 없이 맑은 하늘 아래 노란 꽃이 웃는다.(사진=장태욱)

마타리라는 이름의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풀이 자라는 모습이 훤칠해 말의 다리를 닮았다는 데서 ‘말의 다리’가 마(馬)다리로, 다시 마라티로 변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털이 많은 터리풀을 닮아 ‘터리’ 또는 ‘타리’가 붙었고, 줄기를 맛있게 먹은 데서 마타리가 됐다는 의견도 있다.

마타리에는 마이다스 왕에 관한 전설이 내려온다. 옛날 소아시아 ‘프리기아’라는 나라에 마이다스 왕이 살았는데, 그는 디오니소스를 숭배했다. 디오니소스는 마이다스의 충성심에 반해 원하는 소원이 있으면 들어주겠다고 했다. 이에 마이다스는 자신의 손이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다.



디오니소스는 이게 결코 좋은 소원이 아니라며, 생각을 다시 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황금을 너무 사랑한 마이다스는 자신의 소원을 관철했고,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황금이 되는 능력을 얻었다. 그런데 어느 날 사랑하는 딸이 마이다스에 달려와 안겼는데, 딸을 쓰담는 순간 황금으로 변하고 말았다. 마이다스는 후회하며 디오니소스에게 황금을 딸로 되돌려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디오니소느는 욕심을 경계하라는 교훈을 주기 위해 딸이 마타리로 태어나게 했다. 그러니까 마이다스의 딸이 황금으로 변했다가, 이 노란 꽃으로 혼생한 것이다.

마이다스의 딸은 이 꽃으로라도 환생했는데, 어려서 세상을 뜬 삼촌 인생은 되돌릴 방법이 없다. 내가 일그러진 가족사를 안타깝게 여기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마라티 꽃이 노랗게 핀 건 가을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다. 이리저리 반가운 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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