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서 사위를 사랑했던 마음, 무덤가에 새하얀 꽃으로 피었다

[주말엔 꽃] 사위질빵 꽃

아버지의 고종사촌 동생, 그러니까 내겐 내종숙인 아저씨가 지난 주말에 별세했다. 성인이 된 후 교직에 복무했고, 몇 해 전에 중학교 교장을 끝으로 교직생활을 마무리했다. 슬하에 1녀 2남을 두었는데, 작년에 마지막 혼사까지 치렀다. 인생 여정에서 여러 문턱을 잘 넘어 가벼워진 마음으로 즐거움을 누릴 여건이 됐는데, 황망하게 세상과 이별했다. 참으로 허망한 게 인생이다.


▲ 새하얀 사위질빵 꽃이 환하게 피었다.(사진=장태욱)

‘큰일’을 치러보지 않은 젊은 상주들이 상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이 들었는데, 그것도 기우다. 지금은 상조회사가 모든 절차를 설명하고 끌어주기 때문에, 상주들은 몸가짐을 바르게 하고 조객에게 예만 잘 갖추면 된다.

장례식장에서 상주들 가운데 망인의 사위가 특별히 눈에 들어왔다. 상주로서 표정이 사뭇 진중하고, 조객들이 오고 갈 때마다 예를 갖춰서 인사했다.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친척들 사이에도 사위를 잘 뒀다는 평이다.

발인을 하고 시신을 화장해 유골을 선산에 묻고 돌아오려는데 무덤 근처에서 하얀 사위질빵을 만났다. 쌀알 만 한 꽃망울이 그대로 있는 것도 있고, 터져서 암술과 수술을 활짝 펼쳐 놓은 것들도 있다. 잠깐 내린 비를 맞은 탓에 물기를 머금고 환하게 빛을 낸다. 꽃망울도 하얀데, 펼쳐놓은 꽃은 꽃잎(사실은 꽃받침)과 암술, 수술이 더 하얗다. 순백을 운명으로 타고난 꽃이어서, 보고 있으니 심란했던 마음이 더러 씻기는 듯 했다.


▲ 장례를 마무리하는 과정(사진=장태욱)

사위질빵은 해발 50미터 이상 산기슭과 계곡에서 자생한다. 햇빛을 좋아하여 주변 식물 혹은 지형을 타고 오르는 성질이 있다. 다른 식물 틈으로 가까스로 얼굴을 내밀고 7~8월에 줄기에서 기다란 꽃대를 낸다. 그리고 꽃대마다 여러 송이의 작은 흰 꽃망울이 맺힌다.

꽃망울에서 꽃잎처럼 보이는 것은 꽃받침 4개를 십자가 모양으로 펼치고, 가운데서 암술과 수술을 낸다. 처음엔 암술과 수술이 서로 뭉쳐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꽃이 그렇듯 암술과 수술이 다른 방향을 향한다. 수술은 펼쳐놓은 우산의 살처럼 가운데에서 밖으로 향하고, 암술은 여러 개가 한 다발로 뭉쳐 위를 향한다.


▲ 사위질빵은 줄기 끝에 가느란 꽃대를 낸다. 그리고 꽃대마다 꽃망울이 맺히고, 꽃을 피운다.(사진=장태욱) 

꽃에는 수과(瘦果)라 불리는 열매가 남는다. 수과의 껍질은 말라서 나무껍질처럼 단단하게 되고 껍질과 종자가 달라붙어 있어, 겉으로는 종자처럼 보인다. 수과마다 암술대가 붙어 있고, 암술대에는 깃털 모양의 하얀 털이 달린다. 하얀 털로 인해 바람에 잘 날리는데, 수과 하나하나가 날아가서 종자를 퍼뜨린다.

‘사위질빵’이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된 배경도 흥미롭다. ‘사위’와 ‘질빵’을 합해서 만든 이름인데, 사위를 사랑하는 장인·장모의 사랑이 담겨 있다.

질빵은 멜빵과도 통하는 말이다. 물건을 질 때 어깨와 겨드랑이 사이에 매는 밧줄이나 끈을 뜻한다. 그러니까 사위질빵은 사위가 물건을 질 때 어깨에 메는 질빵이란 의미다.


지금은 공장에서 생산된 노끈을 주로 사용하지만, 과거에는 노끈이 없었다. 물건을 지고 갈려면 칙 넝쿨이나, 다래 넝쿨, 으름 넝쿨을 여러 겹 꼬아서 질빵을 만들었다. 제주도에선 신설란도 사용했다. 질빵이 든든할수록 무거운 짐을 지게 마련. 사위를 사랑한 장인·장모는 사위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이 여리여리한 식물의 줄기로 질빵을 만들었으니, 조그만 무거워도 질빵이 끊어질 판이다.

무덤가에 사위질빵이 환하게 핀 것을 보니 돌아가신 내종숙께서 사위를 무척이나 사랑했는가 보다. 내 눈에도 사랑을 받을 만한 사위처럼 보여서 더 확신이 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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